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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재홍·김성훈,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뜨거운 열정 [2019년 그 사람]
입력 2019-12-24 13:43  | 수정 2019-12-24 14:41
정재홍-김성훈은 2019년 비운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살아생전 열정은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사진=MK스포츠DB, KBL 제공
매경닷컴 MK스포츠 김성범 기자
2019년 한국 스포츠는 다사다난했다. 영광과 좌절, 환희와 아쉬움, 비상과 추락이 극명하게 갈린 한 해이기도 했다.
2019년 스포츠계에 닥친 여러 사건·사고에는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 있다. 이제 저물어 가는 2019년에 사건·사건의 중심에 섰던 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20년에도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 또는 좌절을 딛기 위해, 비상을 위해,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각자 살고 있을 것이다. 화제의 인물들을 되돌아보고, 그 후를 조명해봤다. <편집자 주>
9월 3일과 11월 23일, 스포츠계에 믿기 싫은 소식이 전해졌다. 농구선수 정재홍과 야구선수 김성훈이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스포츠계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비운의 사고였다. 손목 수술을 위해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했던 정재홍은 심정지를 일으켰다. 심폐소생술에도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새 시즌을 준비하던 김성훈은 광주의 한 건물에서 떨어졌다.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정재홍과 김성훈은 누구보다 열심히 땀 흘리던 청춘이었다. 그 노력을 알기에 갑작스러운 이별 소식은 팬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정재홍은 2008년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로 대구 오리온스(고양 오리온)에 입단해 9시즌을 활약했다. 특급 선수는 아니었지만, 강한 근성으로 팬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코트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던 선수였다.

긍정적인 에너지는 팀과 농구계에 전파되기도 했다. 정재홍은 2015년 여름 자비로 미국을 건너 스킬 트레이닝을 받고 돌아올 정도로 자기계발에 욕심이 많았다.
당시 생소했던 스킬 트레이닝은 정재홍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2016년부터는 매년 자신의 이름을 건 농구 캠프를 열어 일반인에게 재능기부를 했다. 지난 4월에는 재능기부 경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정재홍의 열정과 팬 서비스는 모든 농구인에게 귀감이 됐다.
김성훈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김민호(50) KIA 타이거즈 코치의 아들로 먼저 이름이 알려졌다. 야구인 2세로서 그는 아버지만큼 훌륭한 아들이 되고자 노력했다.
2017년 프로에 입문한 김성훈은 2018년 27⅔이닝 평균자책점 3.58로 한화 이글스의 미래로 거듭났다. 2019년 시즌 전에는 포크볼과 커브를 장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성훈을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정말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라고 입을 모았다.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고 싶었던, 더 나아가 아버지의 자랑이 되고 싶었던 선수였다.
세상은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가던 이들의 열정을 잊지 않았다.
정재홍의 마지막 소속팀이었던 서울 SK는 10월 26일 서울 삼성과 2019-20시즌 프로농구 홈 개막전에 정재홍을 추모하는 행사를 열었다.
‘No.30 With J.H라는 대형 현수막을 홈구장 한쪽에 설치했다.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 걸어놓는다. 13번째 선수 정재홍과 시즌을 치르겠다는 의미다.
한화 팬은 자발적으로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장외무대에 김성훈의 추모 공간을 마련했다. 김성훈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절친한 이정후(21·키움 히어로즈)를 비롯해 수많은 야구인이 시상식에서 김성훈을 애도하고 추모했다.
입단 동기인 박상원(25)은 등번호를 58번에서 김성훈의 등번호 61번으로 교체했다. 김성훈을 위해 열심히 다하겠다는 진심을 담았다.
예기치 않은 작별이었다. 정재홍과 김성훈은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생전의 긍정적인 열정은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mungbean2@maekyung.com[ⓒ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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