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여자` 아닌 `아티스트`로…당당한 여자 아이돌이 뜬다
입력 2019-12-20 13:39  | 수정 2019-12-20 20:13
신곡 `힙`으로 새로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 마마무. [사진 제공 = RBW]

"코 묻은 티, 삐져나온 팬티, 떡진 머리, 내가 하면 힙(HIP)."
여자 아이돌 '마마무'의 신곡 '힙(Hip)'은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해 온 미(美)의 기준을 거부하는 곡이다. 잘록한 몸맵시가 드러나는 옷 대신, 이물질이 묻은 티셔츠를 입고도 누구보다 당당하다고 소리친다. 가려야 하는 여성의 속옷은 그들에겐 그저 악세서리에 불과하다. '예쁨'을 거부하고 "내가 원하는 모든 건 멋짐"이라고 일갈하는 모습은 그 어느 여성주의 운동가 못지 않다.
여성주의적인 노래로 3년만에 돌아온 림킴(김예림). [사진 제공 = 유니버셜 뮤직]
3년만에 '림킴'으로 돌아온 가수 김예림은 '동양 여성'을 향한 성적 선입관을 깨는 것으로 확장한다. '작고 귀여우며 사랑스러운'의 전형성을 거부하는 림킴은 "남성이 지배하는 돔을 깨뜨릴거야, 난 동양인이면서 대단한 여왕이지(신곡 옐로우 가사 의역)"라고 토해낸다. 더 이상 동·서양 남성의 시선에 자신을 가두지 않겠다는 주체성의 발현이다. 자신을 옐로우(황인)로 호명하고, 동양 무희의 옷으로 연출한 뮤직비디오는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적인 모습을 반복하며 역설적으로 성적 편견을 전복한다. 누구보다 동양적이면서 그 누구보다 강하고 주체적인 모습은 압도적 메시지 그 자체다.
여자 아이돌의 모습이 다양화 하고 있다. '섹시' 아니면 '청순' 일색에서 벗어나, 여성 내면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대중문화 전반에 불어닥친 여성주의 물결이 음악 산업에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는 "사회가 강요해 온 걸그룹의 '정형성'이 차츰 깨지고 있다"고 했다.
이미 마마무는 '당당한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그룹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상해 좀 특이해, 평범한 게 더 싫어, 이런 내 모습 부모님께 감사해(나로 말할 것 같으면 중)"로 자기애를 드러내고, "뻔뻔하게 놀아, 미친듯이 즐겨, 필요없어 Wrong&Right(고고베베 중)"이라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주관성을 예찬한다. 황 평론가는 "여자 아이돌을 기획하는 프로듀서들이 기존에 남자 대중이 좋아할 만한 것으로 콘셉트를 잡는 경향이 최근 들어 변화하고 있다"면서 "마마무는 주체적 여성 아이돌의 표본같은 그룹"이라고 평했다.
(여자)아이들은 신곡 `라이언`으로 자신들의 카리스마를 `사자`로 표현해 여자 아이돌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 [사진 제공 = 큐브]
'(여자)아이들'은 '세상에 없던 여자 아이돌'의 모습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달 3일 신곡 '라이언'으로 돌아온 (여자)아이들은 자신의 품격과 카리스마를 '사자'에 비유해 호평을 받았다. 동물의 왕 자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 인내, 상처를 가사에 담아 청순과 섹시를 넘어선 '멋'의 영역을 개척했다. 동물 가죽을 입은 듯한 여왕의 무대에 대중은 압도됐다. 미국 빌보드 칼럼니스트 제프 벤자민은 "전 세계 K팝은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하지만 (여자)아이들은 최근 발매된 싱글로 자신 있게 발톱을 드러내며 세계로 향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물론 여성 뮤지션들이 '페미니즘'을 대 놓고 표방하진 않는다. 불필요한 성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사회가 강요해 온 '전형적인 여성성'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여성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변되는 대중문화의 여성주의에 대한 관용적인 시선도 이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남성용 정장을 입고 무대를 선보인 AOA. 핫팬츠에 하이힐을 신은 남성 댄서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 제공 = 엠넷]
주체성을 표방하는 여성 아이돌을 향한 대중의 주목도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9월 방영된 엠넷 프로그램 퀸덤에 출연한 'AOA'의 '너나해' 무대에서는 여자 가수들이 헐렁한 수트를 입고, 남자 댄서들이 하이힐에 핫팬츠를 입은 무대로 호평을 이끌어냈다. 여태껏 보지 못한 성(性) 전복에 대중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마무 역시 '힙'으로 음악방송 5관왕을 차지했고,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 (여자)아이들의 '라이언' 유튜브 조회수는 공개 한달만에 2000만을 돌파했다. 신인 여자 아이돌로서는 이례적인 수치다.
2020년에도 당당한 여성아이돌의 전성시대다. 대중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가, 기존 성역할에 대한 의문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여성주의는 작은 트렌드가 아닌 시대의 흐름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대중 문화 주요 팬층에서도 여성에 대한 달라진 생각이 투영되는 만큼 여성의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콘텐츠도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영운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