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北 편들기 나선 중러…美 대북정책 흔들기
입력 2019-12-17 16:25 

미국이 북한의 완강한 비핵화 협상 거부로 곤경에 처한 가운데 북한 문제에 대한 유엔 차원의 공조까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국제 공조에 균열이 커지면 북한은 더욱 강경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국과 러시아가 16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에 회람한 결의안은 북한이 그간 미국에 요구해온 제재 해제 중 일부를 수용하자는 제안이다. 당장 석유나 석탄 금수를 풀자는 것은 아니지만 수산물과 섬유제품의 수출을 허용해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다시 트는 지렛대로 삼자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 선행조치없이 제재 해제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까지 '북한 편들기'에 나선 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만약 수산물과 섬유제품 금수를 해제해줄 경우 북한은 차단된 외화벌이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 북한은 유엔 제재가 이뤄지기 전까지 수산물 수출로 연간 2억9500만달러를 거둬들였다는 통계가 있다. 또 코트라(KOTRA)에 따르면 섬유는 석탄 등 광물자원에 이어 2016년 기준으로 2위 수출품이며 연간 수출 규모는 7억5200만 달러에 달했다. 섬유 수출의 80%는 중국을 상대로 이뤄졌다. 수산물과 섬유 수출은 각각 2017년 8월과 9월에 유엔 제재결의에 의해 금지됐다.
북한 노동자 송환 문제가 포함된 것에도 러시아와 중국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한때 5만명 이상의 노동자를 해외에 파견했고 상당수가 러시아와 중국에서 일했다. 이들은 연간 12억~23억 달러의 외화 수입을 거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은 2017년 12월 22일 채택한 제재결의 2397호를 통해 회원국들에게 북한 노동자를 2년 내에 송환할 의무를 지웠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최근 방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22일까지 북한 노동자를 모두 송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남북간 철도·도로 협력사업의 경우 지난해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뒤 같은해 12월 착공식까지 열었으나 이후 개점휴업 상태다. 유엔 제재로 인해 원자재나 장비 반입이 힘든데다 남북관계까지 경색된 탓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 결의안 초안을 통해 6자 회담의 재개를 제안한 점도 주목된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초안에 미국과 북한 뿐 아니라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포함하는 다자 협의체를 재가동해 평화적이고 포괄적인 해결책을 촉진하자는 내용이 담겼다고 보도했다. 이는 미국이 전담해온 북한 비핵화 협상 리더십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과거 6자 회담 체제는 실패한 모델이라는 판단 하에 양자협상 틀을 고수해왔다.
일단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의 반대로 결의안 통과는 불가능해 보인다. 영국과 프랑스도 제재해제에 대해선 반대 입장이 분명하다. 미 국무부는 이날 논평을 통해 "북한은 대량살상무기(WMD)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들을 계속해서 유지하며 향상시키고 있다"며 "제재 완화는 시기상조"라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1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긴급 회의까지 소집해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북 공조를 요청했던 미국으로선 난처한 입장이 됐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뉴욕에서 안보리 이사국들에게 점심까지 샀다. 하지만 당시 안보리 회의에서 장쥔 유엔주재 중국 대사는 "미북 대화를 뒷받침하기 위해 대북제재 조치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정면으로 주장했다. 바실리 네벤쟈 러시아 대사도 "안보리 차원에서 긍정적 조치가 필요하다"며 '행동 대 행동' 원칙과 상호조치를 강조했다.
안보리 회의 후 닷새 만에 결의안이 전격적으로 회람된 것을 보면 두 나라는 이미 상당기간 사전 조율을 통해 초안을 작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이제 북한과 협상뿐 아니라 유엔 대북제재 공조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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