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단돈 1천원에 `미친 두께감` 물티슈 만든 남자 바이어는 누구
입력 2019-12-17 11:00  | 수정 2019-12-17 16:20

2014년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업계에선 처음으로 1000원짜리 물티슈를 내놨다. 당시만해도 1000원 균일가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치가 낮다보니 품질까지는 솔직히 말해 신경을 쓰지 못했다. 5년이 지난 지금 '품질'을 1순위로 뒀다. 초저가 경쟁시대 100매에 1000원이란 가격은 유지했고 '미친 두께감'을 뿜어냈다. 기존 1000원짜리 제품과 비교해 두께를 40%이상 두툼하게 만들었다. 홈플러스가 선보인 프리미엄 PB상품 '시그니처 물티슈' 얘기다.
이를 기획한 권지혁(35·사진) 홈플러스 바이어는 경쟁사가 700원짜리 물티슈로 주목을 받을 때에도 초조해하지 않았다. 똑똑한 소비자들이 써보면 금방 알 수 있는 품질 측면에서 자신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범용 물티슈이지만 아기들에게 사용하는 베이비용으로도 써도 될만큼 품질을 자신한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꽉 잡고 있는 물티슈 시장에서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PB) 상품으로 보기 드물게 대박을 친 권 바이어를 직접 만나봤다.
"선배들이 다 지원해 주고 가르쳐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인터뷰가 처음인 그는 무척 겸손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권 바이어가 일상용품 팀에 합류한 지는 2년이 채 안 됐다. 하지만 올해로 입사 9년차인 그는 점포 운영기획과 전략기획실에서 근무하며 쌓은 내공이 탄탄했다. 특히 요즘 소비자들에게 '가격과 품질'은 어느 하나라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단가만으로 경쟁하면 일시적인 매출 상승 효과는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재구매는 일어나지 않고 결국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봐요. 소비자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거든요."
권 바이어는 연간 5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물티슈 시장을 눈여겨봤다. 편의점에서 잘 팔리는 도시락 판매 규모와 맞먹는 규모에 성장성을 자랑하는 물티슈 시장이었다. 4가지 타협 불가능한 원칙을 세웠다. ▲1000원 균일가 유지 ▲기존 및 경쟁사 보다 무조건 품질이 높을 것 ▲직거래로 최대 마진을 확보할 것 ▲위생과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 시그니처 물티슈를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그가 마음 먹은 것이었다.
홈플러스는 시그니처 물티슈를 지난 9월 26일 출시한 후 지금까지 280만개를 팔아치웠다. 날개 돋힌 듯 팔린 시그니처 물티슈 덕분에 홈플러스 물티슈 카테고리 매출은 전년대비 20%가 늘었다. 대형마트 업계가 침체된 요즘 두 자릿수 성장률 자체가 놀랍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권 바이어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자신이 세운 원칙과 타협하지 않고 히트 상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우선 품질을 보장하면서 100매에 1000원이란 가격을 맞추려면 제조사와의 직거래를 뚫어야 했다. 중간 유통마진을 줄인 만큼 소비자가를 더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직거래처를 찾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 물티슈는 대부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돼 제조사가 유통 직거래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문전박대 당했다.
그러다가 '물티슈 명가' 제이트로닉스와 어렵게 연이 닿았다. 제이트로닉스는 CGMP(Current Good Manufacturing Practice) 인증 보유 업체로 관련업계에선 알아주는 곳이다. CGMP는 강화된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으로 미국 FDA가 인정하는 의약품 품질관리 기준을 말한다.
권 바이어는 "국내 CGMP 인증 보유 업체 3곳 중 유일하게 물티슈 단일 품목으로 CGMP 인증을 획득한 곳이 바로 제이트로닉스"라며 "이런 업체와 손잡은 것 자체가 행운이다"고 말했다.
공장을 방문한 권 바이어는 물티슈 원단 관리부터 남다른 제이트로닉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물티슈는 원단 관리가 대단히 중요하다"며 "하지만 어떤 업체들은 원단을 차양막도 없고 방풍도 안 되는 외부에 보관하는 곳이 있는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제이트로닉스는 남달랐다. 아예 원단이 땅에 닿지 않도록 공장 2층에 보관해뒀다. 이는 과거 반도체 사업을 한 제이트로닉스 대표의 영향이 컸다. 반도체를 다룰 때 중요시하는 위생과 안전을 제일로 삼아 물티슈 원단도 세심하게 관리했다.

제이트로닉스가 보유한 기술력도 남달랐다. 물티슈 원단에 정제수를 뿌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단 전체에 균일하게 물이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다. 제이트로닉스는 이같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 엑스트라 티슈가 딸려오지 않도록 하는 기술도 있었다. 시그니처 물티슈가 고품질을 담보로 한 히트 상품 반열에 올라선 비결이다.
권 바이어가 시그니처 물티슈를 두고 베이비용으로도 사용 가능하다고 말한 자신감의 근거에는 두 가지가 있다. 7단계 과정을 거친 정제수와 '미친 두께감'이 그러하다.
통상 물티슈는 일반(범용)과 베이비용으로 구분된다. 이 둘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평량(GSM, Gram per Square Metre)이다. 평량이 55~60gsm 이상이고 엠보싱 원단일 경우에는 베이비용으로 구분한다. 반면 평량이 50gsm 미만이고 플레인 원단을 사용하면 범용으로 분류된다.
이 때 1000원짜리 물티슈의 평량은 보통 30~35gsm이다. 그러나 시그니처 물티슈는 50gsm으로 만들었다. 같은 가격 대에서 압도적인 퀄리티일 뿐 아니라 베이비용 물티슈에도 거의 근접한 수준이다.
"소비자들이 단 한번 써보기만 하면 아는 일이잖아요. 내 아이 피부에 닿아도 문제가 없는지, 물티슈 전체에 물이 골고루 스며들었는지, 또 한 장 한 장 물티슈를 뽑아 쓸 때 뽑지 않은 엑스트라 티슈가 나오지 않는지…. 고객이 단 돈 1000원이라도 쓴다면, 우리는 좋은 제품을 제공해야한다는 목표를 갖고 최고의 가성비 제품을 개발하려고 했어요."
시그니처 물티슈의 출시 당시 권 바이어가 연간 판매 목표 수량으로 잡은 것이 1000만개다. 현재의 판매 속도라면 무난하게 달성할 것이라고 그는 예상한다. 권 바이어는 "아침마다 출근을 해서 시그니처 물티슈 리뷰글을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며 "2000개가 넘는 리뷰글을 보면서 얼떨떨할 때도 있지만 더 좋은 상품으로 소비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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