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한여름의 축제` 아르헨 포퓰리즘 정권 첫 발…새 대통령 "저소득 지원·성장 먼저한 후에 빚 갚을 것"
입력 2019-12-11 11:57  | 수정 2019-12-11 14:30

'포퓰리즘 정권의 귀환' 지난 1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새 대통령 취임일,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소재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 풍경./출처=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트위터
10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새 대통령 취임식에 환영 인파가 행사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왼쪽)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부통령(오른쪽)이 시민들에게 화답하고 있다./출처=페르난데스 대통령 트위터
'국가 부도 위기'에 내몰린 남미 2위 경제대국 아르헨티나에서 10일(현지시간)부로 포퓰리즘 정권이 새 임기를 시작했다. 지난 10월 27일 대선에서 승리한 전직 총리 출신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60)은 이날 취임식에서 전임 정부의 국제통화기금(IMF)식 긴축 정책에 대해 사망 선고를 내린 후, '부의 재분배를 통한 경제 성장'이라는 새 출발을 선언했다.
4년 만의 좌파 포퓰리즘 정권 귀환은 예고된 소식이지만 10일 부에노스 아이레스(BSAS) 증시에서 메르발 지수는 전날 대비 4.81%급락했다. 외환시장에서는 달러당 페소가 59.74페소로 보합세였다. 다만 최근 중앙은행은 준비금을 써가면서 환 방어에 나서고 있다.

페르난데스 새 대통령은 이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부통령(66)과 손잡고 취임식에 나와 "우리가 돌아왔다"고 선포한 후 "실의에 빠진 아르헨티나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새 정권을 환영하는 시민들이 대통령궁 카사로사다가 자리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광장 '플라자 데 마요' 인근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더운 여름에도 불구하고 인근에선 아르헨티나 전통 소세지 샌드위치인 '초리판'(choripan) 가판대가 서는 등 거리 곳곳이 축제 열기에 휩싸였다고 인포바에와 라디오10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새 대통령은 이날 취임 일성에서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임 정권을 비판하고 IMF 압박에 나섰다. 그는 "나라가 성장하지 못하면 채무를 갚을 수 없다. 성장이 우선"이라면서 "IMF와 외국인 채권자들과 건설적인 협력관계를 모색할 것이며 우리 정부는 부채를 상환할 의지는 있으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부채 재협상 신경전에 돌입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새 대통령(왼쪽)과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총재(오른쪽)./출처=AFP사진 갈무리
이어 "지금 우리나라 경제 상황은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상태"라면서 "상처받고 무릎 꿇은 나약한 국가를 넘겨 받았다"면서 전임 정권에 책임을 돌렸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지금 금리 수준이 지나치게 높다"면서 "서민들의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저금리 대출 시스템을 도입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해 IMF의 조건부 구제금융에 따라 마크리 전 대통령이 시행한 재정 긴축은 정부 채무 증가속도를 줄인 대신 연간 50% 소비자 물가 상승률과 실업, 페소화 추락 등 경제위기를 심화시켜 생활고를 가져온 주범으로 꼽혀왔다.
아르헨티나는 현재 총 2800억 달러(약 334조 1800억원)에 달하는 정부 부채를 두고 있으며, IMF와 부채 협상을 벌이고 있다.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자 마크리 전 대통령은 정부 외채 2800억 달러 중 1010억 달러 상환을 미루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바 있는데 이는 페르난데스 새 정권도 "2년 안에는 1010억 달러 채무를 갚지 못할 것"이라면서 마찬가지 입장을 내왔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긴축은 일단 접고 대규모 경기 부양에 나선다고 선언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가 "아르헨티나 새 정권이 일단 긴축정책 등으로 정부 부채 비율을 낮춰야 협상이 가능하다"고 밝힌 입장과 온도차가 분명한 셈이다.

한편 이날 10일 새 대통령 취임식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특사로 보낸 아르켄 이미르바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 마리오 압도 베니테스 파라과이 대통령, 타바레 바스케스 우루과이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좌파 정권'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던 이웃 나라'극우 정치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일찌감치 불참을 선언해 부통령을 대신 참석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실용주의 노선으로 분류되지만 대선 당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임기·2007년 12월~2015년 12월)을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받아들인 후 '좌파 포퓰리즘 정권'으로 통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의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임기·2003년 5월~2007년 12월) 시절 총리를 지냈다. 키르치네르 부부 정권은 아르헨티나 특유의 포퓰리즘 '페로니스모'(후안·에바 페론 정권 시절) 후계자 격인 '키르치네리스모'를 탄생시킨 바 있다.
아르헨티나가 브라질과 더불어 남미를 대표하는 자원부국·농업국가라는 점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은 페르난데스 정권의 경제 라인에 눈길을 모으고 있다.
IMF와의 협상을 담당하고 있는 경제부 장관은 37세의 마르틴 구스만으로 IMF식 긴축개혁 비판자이며,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가까운 제자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크리스티나 부통령이 전임 대통령이던 시절 '대통령의 경제 멘토'역할을 한 바 있다.
중앙은행 총재로는 '네스토르·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 부부 대통령 시절 부총재(임기 2004~2015년)를 지낸 미겔 앙헬 페세(57)가 임명됐다. 페세 총재는 이전 정권에서 중앙은행이 연74.8%까지 끌어올린 기준금리를 다시 낮추고 경기부양에 나서는 한편 외환 방어를 이어갈 전망이다. 다만 중앙은행은 '포퓰리즘의 여왕'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 시절 페소화 가치 폭락을 막기 위해 개인과 기업의 달러 매입을 제한해 암시장만 양산하면서 외환 시장 왜곡을 초래했다는 혹평을 받은 바 있다.
연간 55%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 중인 가운데 통계청장은 마르코 라바그나(45) 전직 의원이 맡았다. 라바그나 청장은 포퓰리즘 계열로 네스토르 정권시절 로베르토 라바그나 경제부 장관의 아들이다. 통계청은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 시절 살인적 물가를 감추기 위해 통계 조작을 일삼았다는 의혹 탓에 2016년 마크리 정부 당시 물가 산정 체계를 바꿨는데 이번에 다시 바뀔 지 여부에 눈길이 모인다.
글로벌 기업들의 개발투자 관심이 몰리는 에너지 분야에서는 전문가 출신 세르히오 란지아니(59) 장관이 지휘봉을 잡아 앞으로 몇 달 동안은 가스·전기요금을 동결할 것이라고 라나시온 등 현지 언론이 전했다. '해외 투자 유치를 통한 공격적 개발·수출' 기조를 천명했던 마크리 전 정부와 달리 새 정권에서는 '국내 수요·자국 중소기업 우선' 정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중 무역갈등'과 관련깊은 농업 분야에서는 루이스 바스테라(61) 의원이 농업부 장관직을 맡아 '농산물 수입 대미 의존도'를 줄이려는 중국 등으로 농산물 수출을 늘리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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