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기현 전 울산시장 비서실장인 박모씨의 비위 첩보를 청와대에 처음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 과거 교통건설국장 재직 당시에는 박씨가 했던 지역업체 참여 독려와 같은 행위가 적법하고 장려할 만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 전 시장 측근을 겨냥했던 울산경찰의 수사는, 경찰이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약 3개월 앞둔 3월 16일 시청 비서실을 전격 압수 수색한 일을 계기로 '경찰의 선거개입' 의혹을 샀습니다.
당시 경찰은 박씨가 2017년 울산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 특정 레미콘업체 선정을 강요했다는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잡고 수사를 벌였습니다.
경찰은 박씨가 친분이 있던 레미콘업체 대표의 청탁으로 아파트 시공사 소장을 불러 특정 업체 물량을 사용하라고 강요했고, 결국 해당 건설 시공사가 외압에 따라 레미콘 납품선을 기존 경주 업체에서 울산의 특정 업체로 변경했다고 봤습니다.
박씨는 지역업체 참여를 권장하는 '울산시 지역건설산업발전에 관한 조례'에 근거한 행정지도였을 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해당 조례가 이미 공정거래위원회가 폐지·개선하도록 권고한 차별적 규제이므로, 범죄 성립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경찰은 박씨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는데 검찰이 "범죄 소명 근거와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기소 처분하면서, 이 사건은 검경 마찰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울산경찰은 2017년 12월 말 경찰청에서 하달받은 첩보를 토대로 박씨와 관련한 수사를 본격화했는데, 해당 첩보는 송철호 울산시장의 최측근인 송 부시장이 최초 청와대 측에 전달했다는 것이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입니다.
송 부시장은 박씨의 행위에 위법성이 있다는 식으로 첩보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짙습니다.
그런데 정작 송 부시장은 과거 교통건설국장 재직 당시 박씨가 근거로 내세운 '지역건설산업발전에 관한 조례'의 실효성이 상당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시 말해, 해당 조례의 효과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송 부시장이 정작 청와대에 첩보를 건넬 때는 전혀 다른 내용을 전했을 가능성이 농후한 것입니다.
울산지검이 박씨를 혐의없음 처분하면서 작성한 '불기소 이유서'에 보면, 송 부시장의 과거 발언이 나옵니다.
2012년 4월 30일 열린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에서는 지역산업발전에 관한 조례 개정과 관련한 내용이 다뤄졌습니다.
당시 교통건설국장이었던 송 부시장은 회의에서 "아파트 등 민간공사를 할 때 건축 인허가 부서에서 이 조례를 근거로 실질적으로 강한 행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조례가 상당히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한 시의원은 "이 조례를 지키지 않을 경우 '입찰 참여를 제한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기재하는 등 강제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며 강제 조항 필요성을 언급했고, 상임위원장은 "조례 이행 업체는 행정관청에서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이행하지 않는 업체는 권장·권고하고 시정하는 내용을 집행부에서 할 수 있도록 하자"며 해당 안건을 의결했습니다.
울산시 건축 관련 행정업무를 총괄 관리하는 위치에 있던 송 부시장 자신도 당시 해당 조례의 효과를 인정했던 셈입니다.
이후로도 이 조례에 근거해 울산시장이 '시공사에 지역업체 참여를 권장·독려하고, 지역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행정조치에 대해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실제로 2016년에는 울산시가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100여 곳의 시공업체에 '지역업체 하도급 참여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송 부시장은 박씨가 레미콘업체 변경과 관련해 외압을 행사했다는 식의 첩보를 청와대 측에 전달했고, 이후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익명의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의 제보 내용을 보강하는 취지의 진술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박씨는 이달 초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저를 포함해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던 공무원들도 특정 퇴직 공무원의 악의적 진술이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들었다"면서 "경찰과 검찰의 수사, 법원 재판,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하면 송 부시장이 권력형 선거부정 사건의 하수인이거나 공모자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박씨의 직권남용 혐의를 판단하면서 모두 '지역건설산업발전에 관한 조례'와 이 조례를 대상으로 공정위가 발표한 권고안을 근거로 내세웠습니다. 다만 그 해석은 180도 달리했습니다.
먼저 경찰은 공정위가 2015년 5월 '역외지역 차별 경쟁 제한적 조례 개선 권고안'을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내 관련 조례 폐지나 개선을 권고한 만큼, 울산시의 해당 조례 역시 차별적 규제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또 조례 내용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도 없으므로, 레미콘 납품을 강요한 박씨 행위에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에 검찰은 공정위의 권고안은 말 그대로 권고일 뿐이어서 조례의 효력이 바뀌거나 없어지지 않으며, 권고 내용도 '조례를 유지하되 3년 주기로 타당성을 검토하라'는 수준이므로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법리 판단에 영향을 줄 정도가 아니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권고안을 냈던 공정위는 어떻게 판단할까요.
2017년 당시 울산시의 행정지도로 레미콘 납품 계약이 갑자기 끊겼다며 피해를 호소한 경주의 한 업체는 해당 사건을 청와대에 진정했습니다.
청와대는 진정을 공정위에 이첩했고, 공정위는 해당 업체에 진정에 대한 답변서를 보냈습니다. 연합뉴스는 당시 업체에 보냈다는 답변서 확인을 요청했지만, 공정위는 답변서 공개는 곤란하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공정위 관계자는 "울산뿐 아니라 일부 자치단체가 자치법규인 조례를 통해 지역 내 건설자재를 우선 구매하라고 규정하고 있고, 이 부분에 대해 원론적 입장에서 '조례에 경쟁 제한적 요소가 있는 만큼, 앞으로 자치법규 개선 작업을 할 때 참고하겠다"는 정도의 답변을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조례 등 자치법규가 경쟁 제한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하면 공정위가 의견을 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 의견을 참고하겠다는 정도의 의미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설명으로만 보면 공정위가 보냈다는 권고안만으로 관련 조례가 효력을 잃는다고 보기 어렵고, 그 조례를 근거로 행정지도를 한 행위를 두고 위법성이 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실제로 송철호 시장도 올해 5월 대형건설사 260곳과 대기업 공장 12곳에 지역건설업체 하도급 참여 확대를 요청하는 서한문을 발송하면서 "시는 '지역건설산업 발전에 관한 조례' 마련 등 다양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지만 한계가 있어 안타깝다"면서 "대형 공사나 공장 증설에 지역건설 근로자, 생산 자재, 장비를 우선 채용·사용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경찰의 법 해석을 적용하면 송 시장의 서한문 발송 역시 차별적 규제에 근거한 불법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