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35년 증권맨의 화려한 변신…김범수의 `혁신 도우미`로
입력 2019-12-08 17:26  | 수정 2019-12-08 21:37
한신증권에서 동원증권,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성장을 이끈 김주원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은 증권맨으로서 35년간의 삶에 대해 "나는 청지기였다"고 말했다. 훌륭한 리더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해왔다는 얘기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과 김남구 한국투자금융 부회장의 청지기에 이어 그는 세 번째 청지기 역할을 앞두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의 비전을 현실화하는 것을 돕기 위해 내년 1월부터 카카오 부회장직을 맡게 됐다.
―어떻게 카카오로 가게 됐는가.
▷지난 7월 24일 카카오가 금융위원회에서 카카오뱅크 한도 초과 보유주주 승인을 받은 날이다. 그때 김범수 의장이 김남구 부회장에게 나를 카카오그룹으로 데려가고 싶다고 요청했나 보다. 거절해도 계속 요청하니 김남구 부회장이 '아버님(김재철 회장)께 말씀드려 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김재철 회장 핑계를 대고 거절하려고 그런 거다.
―김재철 회장이 반대했는가.

▷김 회장께서 "당연히 보내줘야지"라고 하셨단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을 예로 들면서 아끼는 사람을 보내는 것은 우리의 영토를 넓히는 일이라고 하셨나 보다.
김주원 부회장은 김재철 회장과 김남구 부회장의 '선동열'이었다. 위기를 해결하거나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도전이 있을 때마다 그를 등판시켰다.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위기를 겪던 동원창투를 재생시키는 일을 그에게 맡겼고 동원증권과 한국투신의 합병 후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그에게 맡겼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맡겨진 역할을 해냈다. 카카오와의 인연도 그런 이유로 시작됐다.
―입사할 때 김재철 회장에게 "제가 먼저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는데 그 약속은 지킨 셈이다.
▷그렇다. 입사할 때 김 회장이 "저렇게 유능한 친구는 다른 곳으로 이직할 가능성이 있으니 아예 뽑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당시 인사담당 상무였던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에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약속하고 35년간 이곳을 지켰다. 김재철 회장이 나의 이직을 허락했으니 약속을 지킨 것이다.
―카카오뱅크에는 어떻게 합류했나.
▷2015년 어느 날 김남구 부회장이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받고 카카오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면서 그 일을 내게 맡겼다. 지난 3년간 한국투자금융 부회장과 카카오뱅크 이사회 의장 역할을 함께해왔다.
―보수적인 금융권 일과 혁신적인 벤처기업 일을 겸하는 게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적응했는가.
▷첫 출근 날부터 충격이었다. 여의도 증권사에는 넓은 사무실도 있고 비서도 있는데 카카오뱅크에 출근하니 따로 사무실도 없었다. 김범수 의장을 만나서 '의장님'이라고 부르니 '브라이언(Brian)'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나에게도 영어 이름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이(Jay)'란 이름을 만들었다. 다음날 일찍 출근했더니 20대 인턴 직원이 "제이, 일찍 나오시네요"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석 달 정도 지나니 그런 것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워졌다. 지금은 양복을 입는 것도 불편하고, 운동화와 후드티가 편하다.
―정보기술(IT) 문화와 금융문화를 융합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IT의 뷰와 금융의 뷰는 여러 가지로 다르다. 카카오뱅크 애플리케이션(앱)을 보는 관점도 IT 쪽은 테크놀로지 중심이고 금융 쪽은 안전성 중심이다. IT 출신은 자신을 혁신가로 인식하고 금융 출신은 촉진자로 인식한다. 보상도 IT 쪽은 스톡옵션을 선호하고 금융 쪽은 현금 보상을 선호한다.
―IT와 금융이 구체적으로 맞붙은 적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가장 먼저 프로그램 내재화 논란이 있었다. 금융 쪽에서 온 사람들은 필요한 프로그램은 외부에 외주를 주는 것이 시간과 돈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IT 쪽에서 온 개발자들은 이걸 외부에서 가져오면 우리가 왜 필요하냐고 주장했다. 그래서 내가 강남에서 김범수 의장이랑 만나서 투트랙으로 가는 것으로 방향을 결정했다. 회계시스템 같은 은행 코어프로그램은 외주화를 하고 다른 것은 자체 개발을 하는 투트랙으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큰 흐름이 정해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금융 쪽에서 온 사람들은 카카오뱅크 앱을 PC 버전과 모바일 버전으로 함께 만들자고 했고 IT 쪽에서는 '모바일 온리(Mobile Only)'를 주장했다. 중간에서 '모바일 온리'를 '모바일 퍼스트(First)'로 타협을 봤다. 모바일을 중심에 놓되 모바일에서 안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보조적으로 PC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런 난관을 예상했는지 지난해 신년하례 때 김재철 회장이 뜻깊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어떤 이야기였나.
▷화학의 원소 주기율표에서 나트륨(Na)과 염소(Cl)는 양 끝에 있는데, 이렇게 멀리 떨어진 원소가 결합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결합하면 매우 안정적이고 떨어지지 않는 성질을 가진다. 그러니 소금(NaCl)처럼 한번 결합이 잘되면 어느 조직보다 강한 응집력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뱅크는 그래서 소금이 됐는가.
▷아직 소금까지는 아니지만 리더들은 비전을 공유했다. 카카오뱅크 공동체 구성원에게 '우리가 왜 모였는지, 상대방이 없으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우리가 새로운 인터넷은행을 만들려고 모였는데 금융 중심으로만 IT를 보면 우리는 겨우 시중은행의 IT부서밖에 안 된다. 또 IT 중심으로만 금융을 보면 핀테크 기업일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신·충·헌'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뢰―충돌―헌신'의 약자인데, 일단 동료를 인정하고 신뢰하고 이 바탕에서 충돌한 뒤 결정하고, 그 결정된 안에 대해서는 내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헌신하라는 얘기다.
김주원 부회장은 증권맨으로서의 삶을 18홀 골프에 빗댄 인생계획서를 갖고 있다. 사원 시절―차장·부장 시절―임원 시절로 나뉜 계획서에서 카카오뱅크 의장으로서 역할은 17번홀에 해당한다. 김주원 부회장은 18번홀은 한국투자금융지주에서 직장생활을 마치는 것이었다. 그는 "18홀로 게임을 마치려고 했는데 김범수 의장이 '9홀 더 치자'고 해서 게임을 계속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에게는 어떤 역할이 맡겨질 예정인가.
▷제일 중요한 것은 김범수 의장을 보좌하는 일이다. 강력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카카오는 계속 금융 쪽을 확장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고 증권사도 인수했으며 벤처캐피털도 2개나 갖고 있다. 카카오가 가지고 있는 '연결의 가치'를 금융을 통해 확대해 나가는 일에 기여하고 싶다.
▶▶ 김주원 부회장은…
△1958년 충북 청주 △청주상업고 △성균관대 경영학과 △고려대 경영학 석사 △1985년 동원증권 △2001년 동원창업투자 대표이사 사장 △2006년 한국투자파트너스 사장 △2008년 한국투자운용지주 대표이사 사장 △2011년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 △2016년 카카오뱅크 이사회 의장 △2019년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2020년(예정) 카카오 부회장
[김기철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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