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12월 02일(10:30) '레이더M'에 보도 된 기사입니다]
현대자동차의 신용도가 사흘 사이 'AAA(부정적)'에서 'AA+(긍정적)'로 일제히 하향 조정됐다. 한국신용평가가 지난주 월요일(25일) 등급 하락을 주도한 데 이어 한국기업평가(27일)와 NICE신용평가(28일)와 까지 동참했다. 채권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크레딧 이벤트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쟁점들에 주목하고 있다.
◆ 금융계열사 비용부담↑…수요예측엔 외려 호재?
현대차 신용등급 조정은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 등 금융계열사에 즉각 영향을 미쳤다. 국내 신용평가사 세 곳은 현대차 신용도를 조정하며 현대카드 등급을 AA+(부정적)'에서 AA0(안정적)'으로 낮췄다. 같은 시점 현대캐피탈도 AA+(부정적)'에서 'AA0(안정적)'으로 조정됐다.
중장기적으로는 수익성에도 직간접적인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등급 하락으로 두 회사의 시장금리(개별 민평금리) 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수신 기능을 자체적으로 갖고 있지 않은 여신전문금융사다. 회사채 수요예측 대신 '일괄신고제도'를 활용해 자금을 수시로 조달하는 이유다. 지난 3분기 기준 현대카드의 회사채 발행 잔액은 8조원, 현대캐피탈의 잔액은 23조원에 달한다.
현대차그룹 담당 기업금융전담역(RM)은 "자체적으로 돈을 굴려 수익성을 창출하는 금융계열사들의 타격이 가장 클 수 밖에 없다"며 "특히 기업공개(IPO)를 준비중인 현대카드는 이를 통해 수익성이 저하될 수 있어 내부적으로 비용 절감을 고민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대기아차의 공모 회사채 발행 시 수요예측엔 오히려 호재라는 관측이 많다. 등급 조정의 불확실성이 해소돼서다. 통상적으로 연기금, 공제회, 보험사 등 내로라하는 기관투자가들은 발행사의 등급 전망(아웃룩)에 '부정적'이 붙어있을 경우 청약에 소극적인 편이다. 추후 등급이 하락할 가능성 자체를 위험으로 간주한다는 얘기다.
한 기관투자가는 "등급 조정이 끝나 '부정적'이란 신호가 없어졌기 때문에 청약을 꺼릴만한 이유가 없어졌다"며 "현대기아차가 등급 하락으로 높아진 시장금리를 어느정도 감수하고 채권을 찍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 민간 기업에게 AAA는 난공불락?
현대차는 신용평가 업계에서 상징적인 존재였다. 순수 민간기업으로는 유일하게 'AAA급' 지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12년 말 AAA0 신용도를 받은 뒤 약 7년 여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현대차의 등급 하락으로 SK텔레콤과 KT만이 AAA 신용도를 지닌 사기업으로 남게 됐다. 두 회사 모두 이동통신 공공기관이 민영화되면서 설립된 곳이다. 2014년까지 AAA급 신용등급을 지켰던 포스코 역시 포항제철의 민영화로 출범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민간 기업이 AAA 신용등급을 유지하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부채자본시장(DCM) 관계자는 "7년 전 현대차가 AAA 평정을 받았을 당시에도, 변동성이 큰 산업에 최고 등급을 주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있었다"며 "공기업을 배경으로 출발한 기업이 아닌 한 초우량 신용도를 장기간 유지하는 게 어렵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AAA급으로 평가받을만한 유일한 순수 민간기업"이라며 "하지만 삼성전자는 2001년 10월 이후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았으며 3년 전 9조원 규모의 전자 장비 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할 때도 시장성 조달에 나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간 기업들이 AAA 신용도를 획득하는 일은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국내 신용평가사 3사, 이슈 선점 경쟁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 어젠다를 놓고 각축전을 벌인 점도 관전 포인트다. 이번 등급 조정을 주도한 것은 한국신용평가였다. 하지만 지난해 현대차 아웃룩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꾼 것은 한국기업평가였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선 현대기아차의 신용도 하락이 사실상 시간문제였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신용평가사들 사이에서 눈치싸움이 그만큼 치열했다는 얘기다.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한국신용평가가 6000억원 가량의 세타II GDI엔진 일회성 비용을 근거로 내세워 예상보다 빠른 타이밍에 등급을 낮췄다"며 "2019년 결산 이후 등급을 낮출 줄 알았는 데 생각보다 빠르게 대응한 것"으로 분석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한국기업평가가 등급 평정과 평가 방식 등 전반적인 의사결정을 주도해온 게 사실"이라며 "여기에 한국신용평가와 NICE신용평가가 조금씩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데칼코마니 식' 평정 방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한 회사가 선제적으로 등급을 조정하면 후발 주자들도 그에 맞춰 신용도를 뒤늦게 바꾸는 데 급급하다는 것. 국내 신용평가 업계에서 등급 스플릿(Spilt·발행사에 대한 유효 신용등급을 상이하게 평정한 것)이 드문 이유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의 현대차 신용도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무디스는 현대차 신용등급을 Baa1'로 평정하며 '부정적'이란 아웃룩을 달아뒀다. 반면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등급(BBB+)에 '안정적'이란 아웃룩을 붙여뒀다. 무디스는 품질비용 투자가 현금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했지만, S&P는 품질비용 부담을 실적 개선으로 상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무디스가 현대기아차 아웃룩을 조정한 건 지난해 11월 초였다. 국내 최대 기업을 둘러싼 등급 스플릿이 1년 넘게 이어져온 것이다.
다른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등급 스플릿이 빈번히 발생하는 게 오히려 시장 생태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며 "이런 점에서 국내 신용평가 시장에는 보다 많은 '미꾸라지'가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우석 기자]
[ⓒ 매일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