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벌 만드는데 1년…비싸도 잘팔리는 옷
입력 2019-11-25 13:33  | 수정 2019-11-25 13:53
페어트레이드코리아 패션 브랜드 '그루'는 100% 수공예로 생산해 매니아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 이세현 인턴기자]

"제품 생산자의 90% 이상이 여성이에요. 이들은 가정에서 육아 등 집안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죠.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소일거리처럼 제품을 만드는데 그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 한국으로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무려 1년이에요. '슬로우 패션'의 끝판왕이죠"
외국인들로 북적이는 서울 경복궁역에서 5분 남짓 걷다 보면 카페가 많은 골목이 나온다. 그 골목 끝에 사회적 기업 '페어트레이드코리아'가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매장 '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매장 안에 있는 니트, 머플러, 화장품 모두 빈곤 국가 여성 생산자들의 손을 거친 100% 수공예 제품으로 공정무역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 때문에 그루는 매니아층을 형성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회사는 패션 전공자가 아닌 환경단체 활동가가 설립했다. 패션을 잘 모르는 그는 어떻게 공정무역 기업가가 됐을까. 지난 21일 그루 매장 앞 한적한 카페에서 이미영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를 만나봤다.
―매장에서 봤던 제품들 모두 특이하던데.
▷우리 제품의 80%는 산업화로 없어진 베틀, 직조, 자수, 페인팅 등 다양한 공예기법을 활용해 네팔, 방글라데시, 인도의 25개 커뮤니티에서 생산해요. 그래서 제품마다 문양과 패턴이 다르죠. 또 수공예 제품이기 때문에 만드는 시간이 꽤 걸려요. 생산자 90%가 여성이어서 대부분 집안 살림으로 바쁘거든요. 시간날 때 소일거리 개념으로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생산 과정을 거쳐 한국에 도착할 때면 1년이 훌쩍 지나있죠. 정말 말 그대로 '슬로우 패션'이에요. 이러한 특징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루만의 특색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가격도 의류의 경우 평균 15만원으로 좀 비싼 편이네요.
▷우리는 공정무역을 통해 제품을 들여오는데 생산자에게 보통 로컬에서 지급하는 임금의 두배를 주고 있어요. 또 생산된 제품 원가에 5~20% 정도 소셜 프리미엄을 지불해요. 이 소셜 프리미엄은 무상교육, 건강보험 등 각 지역에 맞는 사회공헌이 이뤄지게 하죠. 이렇게 개도국 생산자의 경제적 자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계속 추구한 덕분에 지난 2018년 세계공정무역기구에서 발행하는 'WFTO Guarantee System Label'을 취득했어요. 그래서 다른 제품보다 비싸지만 가치소비를 하기 위해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죠. 주로 옷을 오래 소유하는 4,50대가 주 소비층이에요.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제품들은 공정무역으로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교적 높게 형성돼있다. [사진 = 이세현 인턴기자]
―환경운동을 하다가 패션기업을 설립하셨는데.
▷저는 주로 생리대 유해화학 물질 문제 같은 '에코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개도국 빈곤 여성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죠. 그들은 가난해서 환경이 나빠졌고 그래서 더 가난해지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작은 실천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죠. 경제적으로 취약했기 때문에 신용도 자본도 없었어요. 그런데 자본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딱 한가지가 있었죠. 바로 그들의 문화가 다양한 문양과 패턴으로 녹여져있는 '수공예'였어요. 이것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겠다 싶었고 지난 2007년 페어트레이드코리아를 설립하게 됐죠.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제품을 지속가능 패션이라고 하던데.
▷맞아요. 특히 북미나 유럽 소비자들에게 각광받는 분야죠. 단순히 내가 윤리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자체에 녹아들어야 '힙'하다고 생각 하더라고요. 그렇다보니 생활 폐기물을 재활용해 사용하는 '업사이클링' 등을 현대적 디자인과 접목해 제품을 출시하는 패션 브랜드가 증가하고 있어요. 이런 트렌드는 디자인 및 패션 관련 학과 등 대학가에도 퍼지고 있어요. 학생들에게 마냥 대기업의 디자이너로 취직하라고 독려하기 보단 환경을 생각할 수 있는 브랜드 론칭을 고민하라고 권유하죠. 물론 아직까지도 현실과 이상 간 괴리감은 존재하지만 점차 변화를 꾀하고 있는 추세죠.
생산자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택에 담겨 있어 구매를 할 때 제품의 생산과정을 한 번 더 떠올리게 한다. [사진 = 이세현 인턴기자]
―소비자로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뭐가 있을까요.
▷'패스트 패션'이죠. 요즘은 어제와 오늘의 유행이 달라지잖아요. 그래서 너무 많은 옷을 소비하고 빨리 버리는 세상이 됐어요. 10년 전만 하더라도 한번 옷을 구매하면 적어도 8년은 입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이러한 현상은 젊은 세대일수록 심한 것 같아요. 패스트 패션 브랜드는 옷 가격을 낮추기 위해 나일론이나 아크릴 등 단가가 낮은 합성섬유를 사용하는데 이것들은 쉽게 분해되지 않아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죠. 자신이 평소에 옷을 구입할 때 '한 철 입고 버리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면 한번쯤 제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목표가 있다면.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옷을 만드는 건 참 매력있지만 지속가능한 윤리적 패션을 이어가는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최근엔 대안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할 수 있는 제품군을 다양하게 확장하고 있어요. 물론 그 중심엔 공정무역이 있겠죠. 이를 통해 구매자는 윤리적 소비를, 생산자는 경제적 자립을 통한 개도국의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또 지난 2012년부터 국내 사회문제를 패션으로 해결하고 싶어하는 기업들과 '한국윤리적패션네트워크'를 결성했는데 민간이 주도하는 플랫폼인 만큼 온·오프라인을 통해 윤리적 패션의 지속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해요.
[디지털뉴스국 이세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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