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경제성 축소 의혹 `월성 1호기` 영구정지안 다시 보류키로
입력 2019-11-22 17:39  | 수정 2019-11-23 09:28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영구 정지안을 심의·의결하기로 한 22일 서울 종로구 원안위 건물 앞에서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반대하는 원자력노동조합연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송경은 기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영구 정지를 결정하기 위한 재심의를 진행했지만 위원들 간의 이견으로 이번에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원안위는 22일 열린 111회 원안위 회의에서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위한 '월성 1호기 운영 변경 허가안'에 대해 논의한 결과 추후에 안건을 재상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엄재식 원안위원장은 "월성 1호기 영구 정지안에 대해서는 안건 보류 등을 모두 포함해 추후 재상정하는 것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경우 위원(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월성 1호기의 운영 허가 기간이 2022년 11월까지 3년 정도 남아 있는 상황인 만큼 혹시라도 향후 재가동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한 검토가 추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찬동 위원(충남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도 "원안위는 안전성을 중심으로 심의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영구 정지 허가에 찬성 의사를 밝힌 진상현 위원(경북대 행정학부 교수)만 표결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서 지난달 11일 109회 원안위 회의에 월성 1호기 영구 정지안이 처음 상정됐을 때도 원안위는 야당 추천 위원들의 반대로 의결을 보류한 바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고의적으로 경제성을 축소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인 만큼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의결을 보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원안위는 법률적 검토를 의뢰한 결과, 한수원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원안위가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의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고 이번에 다시 안건을 상정했다.

그러나 야당 추천 위원 중 한 명인 전 한국형 원전 개발책임자인 이병령 원안위 위원(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원안위 의결의 위법 여부 때문에 보류하자고 했던 게 아니다"라며 "한수원을 둘러싼 국민적 의혹이 있고 국회가 감사를 요청한 상황에서 행정부인 원안위가 또 안건을 상정해 의결한다는 것은 국회를 능멸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위원들은 과거 월성 1호기의 높은 경제성이 여러 차례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정부 들어 돌연 한수원 이사회가 '경제성이 없다'며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린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병령 위원은 "이미 한국전력과 원안위, 국회 예산처 등 독립된 3개 기관이 월성 1호기의 계속 운전이 경제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고 수명 연장을 위해 7000억원을 들여 리뉴얼 작업을 수행했는데 문재인정부 출범 후 정재훈 사장이 취임한 지 두 달 만에 갑자기 '경제성이 없다'며 한수원이 조기 폐쇄를 결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수원은 향후 월성 1호기의 가동률을 54.4%로 산정해 월성 1호기를 계속 운영할 경우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전휘소 한수원 기술총괄 부사장은 "현재와 같은 상태로 계속 월성 1호기를 유지할 경우 인건비와 설비 유지비 등 연간 300억원 정도의 비용 부담이 예상된다"며 "반면 영구 정지를 하면 월성 1호기의 인력을 50% 감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병령 위원은 "월성 1호기는 35년 평균 가동률이 78.3%였고 2015년에는 95.8%에 도달해 세계 최고 가동률을 기록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해 이경우 위원은 "월성 1호기 인력을 해고하는 게 아니라면 인건비는 영구 정지 여부와 관계없이 동일할 것"이라며 "원전은 공공재 성격을 띠고 있는데 한수원이 사업적 수익성만을 앞세워 폐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위원(계명대 의대 교수)도 "과거 가동률 80%를 기준으로 7000억원을 들여 수명을 연장했는데 평균 이용률이 왜 갑자기 이제 와서 떨어졌느냐"고 한수원 측에 질의했다. 하지만 전 부사장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목표 안전 기준이 높아져 과거보다 설비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며 동문서답을 내놨다.
경북 경주시 월성 원자력발전소 전경. <사진 제공=한국수력원자력>
월성 1호기는 1983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전이다. 월성 1호기의 설계 수명은 2012년 끝났지만 한수원이 노후 설비를 교체하는 등 약 7000억원을 투입한 끝에 2015년 원안위로부터 2022년 11월까지 10년 연장 운영 승인을 받으면서 발전을 재개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지난해 6월 돌연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월성 1호기가 경제성이 없다며 조기 폐쇄를 결정하고, 지난 2월 원안위에 영구 정지를 위한 월성 1호기 운영변경허가를 신청했다.
이는 정부가 2017년 10월 발표한 '노후원전 수명연장 불허·신규원전 백지화'를 뼈대로 하는 에너지 전환 로드맵과 뒤 이어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지난해부터 월성 1호기의 설비용량(679㎿·최대 공급가능 전력량) 공급 계획을 뺀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월성 1호기 영구 정지와 관련해 정부가 공식적으로 한수원에 요청한 내용이 있느냐'는 이경우 위원의 질문에 전 부사장은 "당시 정부가 원전을 줄이기로 했으니 사업자로서 조치를 취하라는 공문을 받았다"고 답하면서도 "탈원전에 의해 이런 일(영구 정지)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위원들은 정재훈 한수원 사장의 회의 불출석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했다. 엄 위원장은 "월성 1호기 영구 정지에 대한 한수원의 공식적인 입장을 파악하기 위해 한수원 사장의 출석을 요청했으나 불출석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전 부사장은 "한수원 이사회는 충분한 경제성 검토를 거쳐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결정을 내렸다"며 "향후 번복되거나 보류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원안위는 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맥스터)의 7기 추가 건설을 위한 '월성 1~4호기 운영변경허가안' 역시 의결하지 못하고 추후 재상정하기로 했다.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는 원전 내 습식저장시설(수조)에 보관됐다가 열이 어느 정도 식으면 맥스터와 같은 건식(임시)저장시설로 옮겨 보관한다. 당초 한수원은 맥스터를 14기 지을 계획이었지만 경제성을 이유로 우선 7기만 건설해 2010년부터 활용해 왔다.
현재 월성 원전 내 건식저장시설의 저장률은 올해 6월 기준 96.04%에 도달한 상태다. 건식저장시설은 구조에 따라 캐니스터와 맥스터로 나뉘는데 캐니스터는 이미 포화 상태이고, 92.2%까지 차오른 맥스터 역시 2021년 11월이면 포화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보관 장소가 없으면 원전을 더 이상 돌릴 수 없게 된다. 또 맥스터 추가 건설을 확정짓더라도 건설에 2년의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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