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판소리에 기타·드럼까지…국악이 고루하다고?
입력 2019-11-22 17:29 
△지난달 열린 2019 월드 뮤직 엑스포에서 '악단광칠'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문화상인 보부 및 악단광칠 제공]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생 내려온다"
유튜브 조회 수 40만을 넘은 '[온스테이지2.0] 이날치 - 범 내려온다' 공연 영상에선 판소리 수궁가의 한 대목인 '범 내려온다'에 감각적인 베이스 기타와 드럼을 더한 생소한 선율이 흘러나온다. 누리꾼들은 "너무 잘 만들어서 공짜로 보는데 죄책감 든다", "이런 게 진짜 케이팝 아닐까"라며 뜨겁게 호응했다.
최근 국악이 대중음악의 인기 장르로 탈바꿈하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가 아닌,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음악을 접목한 새로운 형태로 대중에게 다가간다.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1820~1892)의 이름에서 팀명을 따온 8인조 밴드 '이날치'는 소리꾼 다섯, 베이스기타 둘, 드러머 한 명으로 구성됐다.
밴드는 국내 대표 영화 음악 감독인 장영규를 주축으로 결성됐다. 일명 '조선 아이돌' '씽씽밴드'의 이철희가 드럼을,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 장중엽이 장영규와 함께 베이스 기타를 맡았다. 여기에 소리꾼 박수범, 신유진, 권송희, 이나래, 안이호가 가세했다.

소리꾼 신유진은 "전통 판소리는 길이가 굉장히 길고 박자가 느려 현대인들이 끝까지 감상하기엔 한계가 있다"면서 "그런 한계를 밴드와 함께함으로써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흥을 일으킬 수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여느 현대 음악과는 달리 판소리 안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인기 이유로 꼽았다. 신 씨는 "온스테이지 라이브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 '범 내려온다'의 경우, 어떤 음악 장르에도 '범이 내려온다'는 이야기는 없지 않느냐"며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결성된 악단 '악단광칠'은 황해도 지역의 굿과 민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악단광칠은 외국 악기 없이 가야금, 대금, 피리 같은 한국의 악기만으로 반주하지만, 외래 음악에 익숙해진 사람들도 쉽게 매혹한다. 이들은 지난 23일 유럽 최대의 월드뮤직 마켓 '2019 월드뮤직엑스포'에 참가한 데 이어, 내년 1월 뉴욕에서 열리는 북미 최대 월드뮤직 마켓 '2020 글로벌 페스트'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악단광칠 단원 김현수는 "악단광칠의 음악을 하는 것은 사회적인 요구이자 필연이었다고 본다"며 "국악임과 동시에 현대의 관객들에게 가까운 음악을 들려준다면, 거기에 국악의 대중화와 현대화가 구분되면서도 공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태의 전통 음악은 극장가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다.
국립국악원은 매년 국악 현대화와 대중화를 신조로 타 장르 유명 연출가를 섭외해 극 형식의 작품을 제작한다.
올해엔 함경도 지방의 망묵굿(죽은 사람의 넋을 천도하는 굿) '붉은선비와 영산각시'를 각색한 음악극 '붉은선비'를 선보였다. 고대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심각한 환경문제를 겪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울림을 준다. 국악에 뮤지컬을 접목해 사람들에게 친숙한 음악과 창법이 어우러지도록 했다.
국립국악원 박정경 학예연구원은 "국악이라 해서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제시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지 않느냐"면서 "외래음악을 수용해 우리 음악의 영역을 확대하고 현대인의 감성에 자연스럽게 다가가고자 했다"고 전했다.
[디지털뉴스국 장수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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