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지자체가 추진하는 지역자원시설세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공장을 이전 못하는 시멘트와 석유화학 기업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경기민감 업종으로 미·중무역분쟁과 경기둔화의 직격탄을 그대로 받고 있어 이미 경영이 위태롭다. 여기에 수천억원에 이르는 지역자원시설세까지 부과될 경우 산업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업계는 "경기악화로 그렇지 않아도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는데 공장이 묶인 기업들을 볼모로 잡아 국회와 지자체가 재정을 채우려고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SK에너지 등 정유4사의 올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1조9276억원으로 전년 동기(4조4969억원) 대비 5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침체로 석유제품 수요가 감소한데다 셰일오일 공급 증가로 유가가 하락하면서 재고평가손실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멘트업계는 부동산 규제까지 겹치면서 2017년 6613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2244억원까지 급감했다. 한국시멘트협회는 올해 이 수치가 500억원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것이 지역자원시설세다. 이철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지방세법 개정안은 시멘트생산 1톤당 1000원의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생산량(5209만t)을 기준으로 520억원의 세금이 부과될 경우 내년 시멘트업계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지방세법 개정안은 정유사 생산 제품 리터당 1원의 지방세를 매기는 것을 목표한다. 정유4사에는 연간 석유 생산량(1800억리터) 기준으로 최소 1800억원이 부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와 지자체가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려는 명분은 주민건강이다. 그동안 시멘트와 석유 생산 과정에서 환경이 오염돼 주민이 피해를 봤다는 것이다. 확보된 세수를 통해 지방균형발전과 환경개선 사업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이철규 의원은 의안 원문에서 "시멘트의 생산은 주변 지역에 환경오염, 경관훼손 등 많은 외부불경제를 발생시키고 있음에도 지역자원시설세가 과세되지 않아 과세형평성이 저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중복관세라고 지적한다. 시멘트 원료의 90%를 구성하는 석회석에는 1992년부터 지역자원시설세가 부과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내년부터 '질소산화물 배출부과금 제도(질소산화물 배출 kg당 2130원 부담금)'를 시행하면서 시멘트업계는 매년 400~500억원의 추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지역자원시설세까지 신설될 경우 시멘트를 생산하기까지 '환경 부담금'을 세번이나 내게 되는 것이다. 석유화학업계도 최종제품을 생산하기까지 수천억원의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지역자원시설세는 매출액이 아닌 생산량에 매겨지기 때문에 기업경영을 위태롭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자를 보더라도 여전히 납부해야하는 세금이다. 석유화학과 시멘트 업계의 실적이 급감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회사경영을 한계로 내모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올해도 실적이 안좋고 내년에도 회복이 불투명하다"며 "한해도 아니라 매년 1800억원씩 내면 회사경영이 극도로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적자를 낼 때 지역자원시설세까지 부과되면 시멘트산업은 도산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알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기업이 도산할 경우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일자리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협력사까지 포함한 시멘트업계의 고용인원은 1790명이다. 4인가구로 환산할 경우 7160명이 시멘트산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인 2만9839명에서 비중이 24%에 달한다. 강원도 영월군에서는 4인 가구 기준으로 3940명이 시멘트산업에 속해 있는데, 전체 인구 대비 비중이 10%가 넘는다. 시멘트업계는 전국적으로 6292명, 석유업계는 1만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지역자원시설세에 있어서 여야의 입장은 일치한다. 법안이 연말에 졸속으로 통과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시멘트 법안'은 강원 동해시삼척시에 지역구를 둔 이철규 의원이 발의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법안 통과를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석유 법안'은 충남 보령시서천군 지역구의 김태흠 의원이 발의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이시종 충북지사가 법안 처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 지사와 이 지사는 최근 '시멘트 지역자원시설세 신설을 위한 공동건의문'도 채택한 바 있다.
[박의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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