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190만년 전 3미터 크기 유인원은 오랑우탄의 친척이었다
입력 2019-11-18 09:01  | 수정 2019-11-18 09:52

190만년 전 지구상에 서식한 초거대 유인원 기간토피테쿠스 블락키의 화석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통해 이들이 현생 오랑우탄과 가장 가까운 친척 관계였다는 사실이 세계 최초로 밝혀졌다. 이처럼 오래된 거대 유인원 화석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드문 일인 데다 200만년가량 된 고대 유인원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학계에서는 기존 40만년 전 유인원 DNA에서 최대 200만년전 DNA까지로 분석 범위를 대폭 넓힌 것에 대해 고무적이라고 평가한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고생물학자 프리도 웰커 연구팀은 "중국 남부 대륙의 추이펑 동굴에서 기간토피테쿠스 블락키의 어금니 치아와 턱뼈 등을 여러 점 발견했다"면서 "이들의 어금니 등에 있는 단백질로 유전자 정보를 최초로 분석해 오랑우탄과 가장 가까운 친척관계였음을 확인했다"고 최근 네이쳐지에 밝혔다. 기간토피테쿠스 블락키는 약 258년 전부터 1만 년 전까지 지질 시대를 일컫는 플라이스토세(홍적세) 기간에 동남아시아 우거진 숲 속에서 서식한 고대 유인원이다. 멸종 시기는 약 30만년 전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팀에 따르면 따뜻하고 습한 아열대 지역에서 이처럼 오래된 유인원 유전자 분석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열대 지역에서는 건조 지대에 비해 유전 물질이 훨씬 빠르게 붕괴하기 때문이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화석에서 추출한 유전자들이 최대 1만년 전 것까지만 확인 가능한 것도 이 같은 한계 때문이었다. 실제로 유전자 추출의 가장 최적화된 환경으로 꼽히는 춥고 건조한 지역에서도 100만년 이상된 화석에서는 DNA 추출이 어렵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지금까지 추출된 가장 오래된 유인원 DNA는 40만년 전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한계는 질량 분석법(mass spectrometry)이라는 연구 기법으로 치아 법랑질을 분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었다. 법랑질이란 치아를 구성하는 치관 중 최상단에 위치한 조직이다. 하얀 빛깔의 무기질과 미네랄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팀은 우선 기간토피테쿠스 블락키의 3cm 크기 부서진 어금니 안에 있는 법랑질에서 여섯 종류의 단백질을 추출했다. 이들을 펩타이드(짧은 아미노산 사슬)로 분해해 질량을 분석하고 화학성분을 알아내 유전자 정보를 최종 확인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간토피테쿠스 블락키 화석의 다섯 종류 단백질이 현생 침팬지와 보노보노 원숭이, 고릴라와 오랑우탄, 인간에게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다시 분해해 유전 정보를 분석한 결과 현생 오랑우탄에 가장 가까운 종이라는 결과까지 도출해낼 수 있었다. 이 분석법은 지난 9월 네이처지에 발표된 논문인 코뿔소 가계도 분석에서도 적용된 바 있다. 조지아 공화국에서 발견된 175만년 된 코뿔소의 치아 법랑질을 성공적으로 추출해 고대 코뿔소의 유전적 정보를 읽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기간토피케쿠스 블락키는 생존 당시 체중이 200~300kg 정도이며, 성별은 수컷보다 체구가 작은 암컷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몸집이 거대해 나무 위에서 주로 생활하는 오랑우탄과 달리 지상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으리라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코끼리처럼 대지 위를 느리게 활보하며 나무 위 과일과 야채 등을 따먹었으리라는 것이다. 연구팀에 소속된 중국 산동대학교 고생물학자 웨이 왕 교수는 "우거진 숲 속을 누비며 과일 위주의 단 음식을 통해 생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간토피테쿠스 블락키의 일부 화석이 지구상에 처음 발견된 것은 1935년 중국 남부 지역에서였다. 하지만 화석 자체가 워낙 희귀했던 데다 이들에 대한 유전자 분석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완전한 형태까지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사한 여타 유인원들과 골격 수준에서만 분석하는 데 그쳐야 했던 이유다. 연구팀 소속인 코펜하겐대 지구연구소 고단백질체학 전문가 엔리코 카펠리니 교수는 "기존에는 기간토피테쿠스와 유사한 유인원들의 골격과 화석 모양을 서로 비교해보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며 "기간토피테쿠스 블락키와 오랑우탄과의 친연성을 밝혀냄으로써 이들의 전반적 모습과 200만년 전 고대 유인원과 현생 인류와의 진화적 관계까지 풀 수 있는 길이 새롭게 열렸다"고 의의를 부여했다.
학계에서는 기간토피테쿠스 블락키와 다른 유인원들의 진화적 맥락을 보더 정밀하게 분석하려면 또다른 고대 유인원들의 유전적 정보까지 비교·분석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1200만년 전에서 600만년까지 더 거슬러 올라가 당대 유인원들의 유전자들도 추가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오와대학교 고생물학자인 러셀 치오촌 교수는 "이 거대 유인원의 잠재적 조상이 누구인지가 밝혀져야 고대 유인원들의 정확한 기원과 계보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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