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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보험사 2000년 전후 8곳 `줄파산`…외형확장 치중하다 `저금리 직격탄`
입력 2019-11-13 17:56  | 수정 2019-11-14 09:17
◆ 백척간두에 선 보험산업(上) / 본격화된 저금리 공포 ◆
한국에서 보험사의 '파산'이라는 단어는 낯설다. 외환위기 이후 2003년 리젠트화재, 2013년 그린손해보험이 파산한 적이 있지만 계약자나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이들이 갖고 있는 계약이 타 보험사로 무리 없이 이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저금리 기간을 거치면서 1997년 닛산생명을 시작으로 2001년 도쿄생명에 이르기까지 8개 보험사가 연이어 파산한 경험이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해외 자산 부실로 야마토생명이 문을 닫았다. 일본 보험계약자들이 값싼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사가 아니라 믿고 맡길 수 있는 보험사를 먼저 찾는 것은 이러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일본 보험사 파산의 핵심 요인은 저금리다. 1990년대 초부터 제로 수준의 단기금리와 연 2% 이하 장기금리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연구실장은 "저금리로 인한 역마진으로 보험사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가운데 닛산생명 파산 이후 부실 보험사에 대한 계약 해지가 늘면서 유동성이 부족해진 보험사들이 잇달아 파산을 경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파산 배경에는 무리한 외형 성장 전략이 거론된다. 저금리로 보험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확정이자를 지급하는 저축성보험 상품을 대거 판매한 것이다. 닛산생명의 경우 한때 생명보험시장 평균 성장률의 5배가 넘는 119.5%의 고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0년에 문을 닫은 다이이치화재도 손해보험사 평균 성장률의 8배가 넘는 12.2%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등 특정 상품 판매 올인을 통해 덩치를 불리는 전략을 취했다.

일본 보험사 파산은 저금리에서 잉태됐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강세로 돌아서자 금리를 인하해 내수경기 활성화를 꾀했다. 저금리로 풍부해진 유동성은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스며들었고 이들은 거품으로 이어졌다. 거품 붕괴 후유증은 컸다. 1989년 3만4059까지 올랐던 닛케이는 1991년 2만4298로 30% 급락했으며 1995년에는 1만7355를 기록하며 반 토막 났다. 부동산 가치 또한 1989년부터 2006년까지 최대 80% 하락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은 이를 담보로 보유한 금융기관의 부실로 연결됐다.
현재 국내 상황은 일본 버블 초창기를 연상시킨다. 저금리 지속으로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실물자산 가격이 급속히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소비세 신설과 금리 인상으로 버블이 붕괴되며 잃어버린 20년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 경제도 한두 번의 악수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나마 일본은 외환위기 이후 해외 자산에 대한 투자수익률이 좋아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저금리 상황이라 대체투자처를 찾기 어렵다. 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국내 보험사들은 다시 일어서기 힘든 셈이다.
저금리로 홍역을 치른 일본의 생존 보험사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기존 보유 계약을 보장성보험으로 전환하고 신계약의 예정이율을 지속적으로 낮춰 저금리에 대응했다. 저축성보험에서도 금리확정형 양로보험이나 연금 판매는 줄이는 대신 변액보험을 늘리는 방식으로 구성도 변화했다.
일본 보험사들의 생존에는 금융당국의 노력도 컸다. 위험률에 대해 충분한 마진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상품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렇게 되면 저금리로 역마진 손실을 겪더라도 안정적인 영업을 통해 부실을 메울 수 있는 체력을 갖게 된다. 이는 보험료 인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통제해 제대로 된 보험상품 운용을 어렵게 만드는 우리 금융당국에 좋은 시사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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