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을 맞아 강추위가 기승을 부린 8일 아침, 스니커즈 커뮤니티와 인스타그램에서 '지드래곤(GD) 스니커즈'가 발매된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졌다. 나이키와 GD가 콜라보레이션(협업)한 '나이키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Para - Noise)'가 그 주인공. 군생활을 마치고 복귀하는 글로벌 스타이자 패션아이콘, 지드래곤이 직접 참여한다는 것 만으로도 발매전 입소문을 탔던 화제의 그 신발이다.
아침9시께 나이키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글은 두눈을 의심하게 했다. 공지 2시간 후인 오전 11시부터 서울 마포구 '홍대 SNKRS' 매장에서 선착순으로 8888장의 응모권을 배부한다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선착순으로 신발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닌 응모권을 말이다. 이날 나눠준 응모권 중 당첨을 통해 판매하는 신발은 총 159족에 불과했다. 당첨확률 1.78%.
게다가, 나이키 티셔츠와 나이키 스니커즈인 '에어포스1' 모델을 착용해야 하는 '드레스코드'까지 갖춰야 응모권을 수령할 수 있다는 조건까지 붙었다. 곧바로 2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평일 오전 11시부터 까다롭게 드레스코드까지 맞춰서 입고 당첨권도 아닌 '응모권'을 받기위해 사람들이 오기는 할까. 그리고 수백장도 아니고 8888장이나 되는 응모권이 하루새 전부 소진될 수 있을까. 저녁9시까지 진행된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이날 홍대 부근에는 에어포스1 슈즈를 신은 스니커즈 매니아 1만여명이 오가는 셈이었다.
기자 역시 취재를 빌미삼아 다행히(?) 집에 있던 흰색 에어포스1와 나이키 후디를 주섬주섬 챙겨입고 황급히 홍대로 향했다. 집에서 현장으로 30분간 차를 운전하는 내내 진짜 사람이 없으면 어쩌지라는 우려를 지우지 못했다. 그런데, 우려는 기우였다. 행사 시작 30분전 도착해 숨을 좀 돌리고 분위기를 살피려는 찰나, 가게앞에 늘어선 긴줄은 족히 수십미터는 넘었다. 이미 100여명의 사람들이 나이키 티셔츠와 에어포스 신발을 신고 위풍당당히 줄을 섰다. 순간 여기가 나이키 매장 앞인지, 지드래곤 콘서트장 앞인지 혼란스러웠다.
길고 긴 대기행렬 [사진 = 추동훈 기자]
파라노이즈는 엄밀히 말하면 지드래곤과 자신의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만든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나이키가 협업해서 출시하는 신발이다. 특히 이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 발매된 모델은 신발 측면 나이키 로고(스우시)가 흰색이 아닌 빨간색으로 색칠돼 '코리안 에디션'이라 불리는 한정판 모델이다. 지드래곤의 생일인 8월 18일에서 착안해 총 818족만 발매되는 '희귀템'이다. 남다른 패션감각으로 글로벌 셀렙으로 자리매김한 지드래곤은 입거나 신기만 해도 해당 의류나 신발이 유행을 타고 품절대란에 휩싸여 왔다. 그런 지드래곤이 참여한 스니커즈인 만큼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관심이 무척 높은 상태였다.이날 가장 먼저 현장에 온 사람은 9시 30분에 도착했다. 첫번째로 도착한 응모자는 "근처에 살고 있어서 공지를 확인하자 마자 뛰어왔다"고 뿌듯함을 내보였다. 11시가 다가오면서 줄을 선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늘어났다. 부동산부 근무당시 견본주택에 들어가기 위한 청약 수요자들의 열기보다도 훨씬 더 후끈했다. 기자보다 한발 늦게 도착한 한 대학생은 "사실 아는 형이 같이 오자고 해서 왔다"며 "이렇게 직접 줄을 서서 신발을 사보려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수줍게 말했다.
11시가 되자 본격적인 응모권 추첨이 시작됐다. 일단 나이키 스태프들은 드레스코드를 점검했다. 나이키 상의를 착용했는지, 에어포스 신발을 신었는지 꼼꼼히 확인에 나섰다. 그중 나이키가 아닌 '조던' 브랜드를 입었거나, 엉뚱한 나이키 신발을 신고와서 추첨을 거부당한 사람들이 심심찮게 나왔다. 일부 스니커즈 매니아들은 "이런 한정판 스니커즈에 대한 인기로 인해 나이키나 오프라인 판매처에서 너무 과도한 드레스코드를 요구한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고등학생은 "그래도 오늘 드레스코드는 굉장히 쉬운 편에 속한다"며 "어떤 경우에는 구하기 힘든 신발을 신고 오라든지, 과할 정도로 많은 조건을 내걸어 불만이 폭주하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무사히 드레스코드 점검을 통과한 뒤엔 신분증 검사도 이뤄졌다. 1인당 1족만 응모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신분증 검사는 필수. 특히 최근 글로벌화된 스니커즈 인기로 인해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발매되는 한정판 스니커즈를 관광하듯 휩쓸어 사가는 경우도 발생하면서 구입조건 역시 나날이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날 응모에 참여한 베트남 여성은 "베트남에선 한국보다도 스니커즈 인기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며 "2~3일은 약과고 10일씩 줄서있는 사람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 역시 지드래곤의 팬으로서 신발을 좋아하고 수집하기 위해서 이번 응모에 도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긴 기다림에 비해 응모 과정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매장안으로 입장하자 한 스태프가 중복응모 방지를 위한 보안스티커를 핸드폰에 부착해줬다. 해당 스티커는 제거하는 순간 접착면에 문구가 표시되기 때문에 1회용 본인확인 스티커로 쓰인다. 이후 개별적으로 부여되는 응모번호와 휴대폰번호, 이름을 적은 응모권을 작성한 뒤 제출용 응모권을 원하는 신발사이즈 통에 집어넣으면 끝.
에어포스1파라노이즈 응모권 [사진 = 추동훈 기자]
본격적인 응모권 배부가 시작되면서 이를 위한 대기줄 역시 뱀꼬리처럼 길게 이어졌다. 자연스레 이들이 신고 있는 각양각색의 에어포스1 모델들도 눈길을 끌었다. 가장 기본적인 흰색 에어포스1부터 시작해, 에어포스1 윈터 고어택스, 오프화이트x나이키 로우, 슈프림 에어포스, 꼼데가르송 콜라보 모델 등 '에어포스1 패션쇼'가 펼쳐졌다. 매장부터 상수역까지의 거리는 400m. 오후를 넘어가며 줄은 상수역까지 가로질러 끝없이 이어지며 장관을 펼쳐냈다.길게 줄지어 기다리는 응모자들 [사진 = 추동훈 기자]
이날 만나본 구매희망자들은 한명도 빠짐없이 '신기 위해' 응모권 추첨에 나섰다고 밝혔다. 무려 연차를 쓰고 현장에 왔다는 한 직장인은 "출근 직전에 올라온 글을 보고 연차를 내고 곧바로 뛰어왔다"며 "꼭 신고 싶었고 예뻐서 눈독을 들였던 신발인 만큼 만약 당첨되면 신을 계획이다"고 밝혔다. 또다른 대학생 송정은 씨 역시 "파주에서 바로 열차를 타고 달려왔다"며 "원래 나이키를 좋아하고 있는데 한정아이템이란 희소성 때문에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현장 취재는 오후께 마무리했지만 각종 스니커즈 커뮤니티 등을 살펴본 결과 이날 늦은 저녁에 8888장의 응모권은 모조리 소진된 것으로 확인했다.컬렉터와 실착러(직접 신발을 신으려는 사람들)들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리셀러(신발을 되팔려는 사람)들의 관심 역시 뜨겁다. 한정판 모델인데다 지드래곤과의 콜라보인만큼 최소 100만원은 넘어갈 것이란 예측도 많이 나왔다. 해당 스니커즈의 공식 판매가는 21만9000원. 이날 응모에 나선 사람들은 적어도 100만원, 많게는 10배 가량 가격이 뛸 것으로 예측했다. 시세는 이러한 관측을 상회했다.
이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판매가 시작된 후 온라인 중고장터 등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리셀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기자가 직접 찾은 가장 높은 판매가는 무려 1000만원. 상식을 뛰어넘는 고가를 제외할 경우 평균 시세는 300만원 전후를 형성했다. 지드래곤이란 글로벌 아티스트의 인지도와, 전세계에서 818족밖에 발매되지 않은 희소성까지 더해지며 상상을 뛰어넘는 시세가 형성된 것이다. 실제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네이버 중고나라에선 330만원에 실거래가 완료된 글이 올라왔고, 200만원 후반대의 가격에 사이즈별로 해당 스니커즈를 모으고 있는 한 매수희망자는 너무 많은 연락이 오는 바람에 이제 더 구매를 할 필요가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번주 로또3등 당첨금이 163만원이니, 지드래곤 스니커즈에 당첨된 사람은 로또 3등에 두번이나 당첨된 셈이다.
330만원에 거래된 스니커즈 [사진 출처 = 네이버 중고나라]
그렇다면 직접 응모에 나섰던 기자는 당첨이 됐을까? 응모권 배부 다음날인 9일, 홍대 SNKRS 페이스북에 당첨자 명단이 떴다. 가운데 이름을 가리고 발표된 해당 명단에서 '추*훈'이라는 이름을 발견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당첨자 명단 [사진 출처 = 홍대SNKRS]
순간 이걸 신어야하나, 리셀을 해야하나, 되팔면 이걸 비상금으로 써야하나, 촬영에 고생한 부원과 나눠가져야 하나, 당첨사실을 숨겨야하나 불과 몇 초 사이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아뿔싸, 당첨자 발사이즈가 265mm가 아닌가. 기자는 280mm에 분명 응모권을 넣었는데 말이다. 황급히 응모권 번호와 대조해보니 정말 우연히도 가운데이름이 *인 동명이인이 당첨된 것이었다. 친한 스니커즈 전문가 지인에게 물어보니 "에이그, 원래 이런 추첨은 니 발사이즈에 맞추는게 아니고 황금발사이즈에 맞추는 거야"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여기서 황금발사이즈란 255mm~275mm로 가장 많은 물량이 풀리는 일반인의 발사이즈를 뜻한다. 실제 275mm는 29족이 풀렸지만 280mm는 6족에 불과했다. 철저히 확률 싸움에서 밀렸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당첨된 추*훈 선생님께 큰 부러움을 표한다. 혹시 사랑이 아빠 추성훈 형님이 당첨자라면, 이 글을 보고 혹시라도 기분좋게 정가에라도 기자에게 넘기지 않을까란 괜한 상상의 나래를 한번 펼쳐보며 아쉬움을 달랜다.*관련 유튜브 영상
[추적자 추기자] 당첨되면 로또3등, GD신발 사려고 연차내고 줄선다고?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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