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이 약 6개월에 걸친 월드투어로 한국 팝의 새 역사를 썼다. 전 세계 100만명 관객 동원 등 숫자로서의 상징 뿐만 아니라, 외국 가수 중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 공연을 여는 등의 한국 문화 첨병으로서의 의미도 새겼다.
방탄소년단은 29일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투어 '러브유어셀프: 스피크 유어셀프 파이널' 콘서트를 열었다. 지난 5월 미국 LA 로즈볼 스타디움에서 시작한 첫 스타디움 투어 이후 6개월간의 대장정도 막을 내렸다. 이번 투어 콘서트장을 찾은 관람객은 총 102만명. 지난 8월부터 시작한 러브유어셀프 공연까지 합하면 205만명이라는 전무후무한 숫자다.
이날 콘서트장 인근은 마지막 공연을 축하해주려는 '아미(방탄 공식 팬클럽)'의 '성지순례'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하철 역부터 콘서트장까지 BTS 멤버 사진,영상 행사장으로 가득했다. 일부 팬들은 흘러나오는 BTS 노래에 몸을 맡겼고, 히잡을 쓴 몇몇 팬들은 한국 문화가 궁금했는지 '한국 아미'들에게 질문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팬들은 잠실운동장을 "This is BTS's Town(여기가 방탄소년단의 도시예요)"이라고 부르며 축제를 즐길 정도였다. 영국에서 이번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로즈씨는 "한국 출신인 방탄소년단의 서울 공연이니 만큼, 일부러 휴가를 내서 한국을 방문했다"고 웃었다.
북미·유럽·중동·동남아시아·중국·일본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팬들이 BTS라는 연결고리 하나로 뭉친 모습은 "어느나라 출신이든, 피부색이 어떻든, 성적 정체성이 무엇이든, 당신의 얘기를 하세요"라는 방탄소년단의 철학을 연상하게 했다.
BTS 월드투어는 '기록소년단'이라고 불릴 정도로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지난 6월 전설적인 록 밴드 '퀸'이 공연한 영국 웸블리 공연장을 이틀간 전석 매진시키며 12만 관객을 동원했다. 팝의 성지를 K팝 밴드가 점령했다는 현지 기사도 쏟아졌다. 문화 '불모지' 중동에서도 BTS 열풍은 이어졌다. 이달 초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외국 가수 최초로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아랍 국가 중에서도 보수적인 사우디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히잡과 니캅을 착용한 여성들이 BTS에 환호하는 모습은 사우디 문화개방의 새로운 상징으로 남았다.
이날 공연은 마지막 공연인 만큼 평소보다 뜨거운 공연과 팬들의 화답으로 이어졌다. 예정된 공연시간을 15분 앞두고. 강렬한 사운드로 전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은 음악 '마이크 드롭(MIC DROP)'이 올려퍼졌다. 공식 응원봉'아미밤'이 잠실 주경기장을 메우며 일대 장관을 이뤘다.
방탄소년단이 29일 서울 공연을 끝으로 월드투어 러브유어셀프: 스픽유어셀프의 6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전 세계 102만명의 관중이 BTS의 세계에 흠뻑 빠졌다. 지난해 8월부터 시작된 러브유어셀프 공연까지 포함하면 총 205만명에 달하는 전무후무한 숫자다. [사진 제공 = 빅히트]
축제에는 술이 빠질 수 없는 법. BTS 공연에서도 그리스 신화의 술의 신에서 영감을 따 온 곡 '디오니소스'로 첫 무대를 시작했다. 음악이 울리고, 수십개의 불기둥이 솟아 오르자, 그 열기가 100m 이상 떨어진 프레스석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멤버들은 마치 신화의 주인공처럼 제단의 의자에 앉아 열정적인 무대를 뽐냈다. BTS 멤버들은 강렬한 군무로 팬들의 혼을 빼았았다.정국이 솔로곡 `유포리아` 무대에서 공중을 날며 열창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빅히트]
BTS의 콘서트의 '백미'는 재능 넘치는 멤버들의 독무대다. 이날 제이홉은 빨간 정장을 입고 솔로곡 '저스트 댄스'로 무대를 채웠다. 이어진 무대에서 정국의 솔로곡 '유포리아'가 울려퍼지자, 4만 3000개의 빨간 아미밤이 보라색으로 물드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정국은 이 무대에서 전매특허인 '공중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팬들이 칼박자로 각 멤버의 이름을 연호하자, 프레스석의 의자가 흔들렸다. 왜 아미가 지구상 가장 강력한 팬덤인지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옆 좌석 기자가 의자를 흔드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았으나, 주변 기자 모두가 '근엄한' 표정으로 공연을 '주시'하고 있었다).지민, RM, 진, 슈가, 뷔도 각자의 매력을 담은 솔로곡으로 아미의 열광을 받았다.파이널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는 지민. 누구보다 고운 춤선으로 아미의 넋을 놓게 했다. [사진 제공 = 빅히트]
뷔의 솔로곡 싱귤래리티.우울하고, 아련하며, 애틋한 느낌의 목소리와 안무로 귀를 사로잡는다. [사진 제공 = 빅히트]
BTS의 공연은 마치 다양한 아티스트의 쇼를 한번에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지민의 솔로곡 세렌디피티에서는 아름다운 춤선의 현대 무용가를 보는 느낌이었는데, 뷔의 솔로곡 '싱귤래리티'는 우울에 빠진 오페라의 유령을 보는 느낌을 자아낸다. 특히 '뷔'의 옆에서 댄서들이 하얀마스크를 이용한 안무를 출 때에는 아련한 감정이 일었다. 엔딩은 국내 단독 공연 최초로 드론 라이트쇼가 함께한 '소우주(Mikrokosmos)'가 장식했다. 소우주는 우주 전체를 '대우주'로 볼 때 인간 하나하나를 '소우주'로 보는 형이상학적 개념에서 따왔다. BTS와 아미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를 담은 노래다.보랏빛을 띈 300여개의 드론이 대우주부터 시작해 태양계를 이루고 있는 행성들을 지나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함께 있는 소우주인 공연장 상공에 도착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BTS는 "방탄이란 은하수에 아미란 별들을 심다"는 플랜카드를 들고, 관객들과 단체 기념촬영을 했다.
3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에서 멤버들의 '아미사랑'은 계속됐다. 공연 중간중간에 "사랑합니다 아미"라고 외치는가 하면, 공연장 디스플레이에는 "따랑해"라는 애교 섞인 글자로 팬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뷔는 "같이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요"라고 했고, 제이홉은 "우리가 지금껏 해온 성과는 다 여러분 덕"이라며 공을 돌렸다. 공연 중간 토크타임에는 미국에서 화제를 모은 제이홉의 솔로곡 '치킨 누들 수프' 댄스를 다른 멤버들이 앙증맞게 따라하자, 아미들은 공연 때만큼이나 환호성을 보냈다.
BTS 콘서트를 완성하는 건 역시 그들의 존재이유인 '아미'였다. 추운 날씨에도 3시간 내내 아미밤을 흔들고, 노래에 걸맞는 구호를 외쳤다. 공연 중간 휴식시간에도 '파도타기'를 이어 간 것도, 멤버들 이름을 연호하며 공연장 분위기를 돋운 것도 아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연 말미에는 멤버들은 감정이 벅차 울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리더 RM은 "월드투어 다시 너무 하고 싶을 거 같아요"울먹였고, 슈가는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이다"고 했다. 정국은 "벌써 다음 콘서트가 어떻게 될지 기다려진다"고 했다.
"우리가 함께해온 시간들 고마워요". BTS는 공연내내 '지구상 가장 강력한 팬덤' 아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스스로를 사랑하세요'라고 말하는 아티스트와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해준 BTS에 감사한다'라고 말하는 아미.
서로를 닮은 아티스트와 팬덤이 만들어낼 2020년의 신화는 어떤 모습일까.
29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방탄소년단 월드투어 파이널 공연에서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이 공연장 밖에서 BTS를 응원하고 있다.
P.S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밖에는 수천명의 '아미'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표를 구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BTS의 마지막 콘서트를 가까운 곳에서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잠실운동장을 찾은 것이다. 일본·중국·미국·유럽 등 국적도 다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칼바람'이 부는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아미밤을 흔들며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BTS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은하수에서 반짝이는 별들처럼.[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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