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제재를 쏟아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압박 속에 '야구 강국' 베네수엘라 야구계가 자국 최대 기업 후원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주세페 팔미사노 베네수엘라 프로야구리그(LVBP) 총재는 미국 워싱턴DC에서 "LVBP는 최대 스폰서인 국영석유사(PDVSA)와 국영 경제사회개발은행(BNDES)의 후원을 받지 않기로 했다"고 20일(현지시간) 밝혔다.
팔미사노 총재와 LVBP위원회가 워싱턴을 찾은 이유는 지난 주말 이틀 간 미국 정부 관계자를 만나 꽉 막히게 생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와 LVBP 관계 복구 방안을 찾기 위해서라고 베네수엘라 엘 나시오날이 20일 전했다. LVBP위원회는 이날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과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선수들을 내왔다"면서 "73년 리그 역사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전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LVBP위원회는 미국 정부 제재 기업의 후원을 받지 않으면 MLB와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지에 대해 미국 재무부에 확인을 요청해둔 상태다. 위원회는 21일에는 뉴욕 MLB본부를 찾아 같은 사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베네수엘라 프로야구리그(LVBP) 문양이 찍힌 야구공. [출처=베네수엘라 엘 나시오날]
지난 8월 MLB는 '미국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전부 포함해 미국에서 뛰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앞으로는 베네수엘라 리그에 참가하지 못한다'고 LVBP에 통보한 적이 있다. LVBP 후원기업들이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OFAC) 제재 대상이라는 이유에서다. OFAC은 미국의 안보·정책·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단체·정부 기관·개인 등을 특별지정제재대상(SDN)에 올리는데, 미국 내 거래 금지·자산 동결 뿐아니라 해외 수익 송금도 금지되는 식이다.쿠바, 도미니카공화국과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는 '야구 강국'이다. 요즘 한창 실력을 날리는 'MLB최단신 타자' 호세 알투베(168cm·휴스턴 애스트로스·29세)선수를 비롯해 '투수 왕' 킹 펠릭스로 불리는 펠릭스 에르난데스(시애틀 매리너스·33세) 등이 대표적인 베네수엘라 출신 MLB선수들이다.
베네수엘라 리그 선수 80%가 미국 리그에서도 활동 중이며, 미국 메이저리그에만 베네수엘라 출신 선수가 68명이라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미국에서도 신참 야구 선수들이 경험쌓기 용으로 베네수엘라 리그에 출전하곤 한다. 베네수엘라 야구 정규 시즌은 10월~이듬 해 2월인데 이 때는 미국 프로야구가 열리지 않는 시기다.
베네수엘라 프로야구 구장. [출처=베네수엘라 카라카스크로니클]
스폰서와 연을 끊게 된 베네수엘라 프로야구는 고육지책을 냈다. 일단 LVBP는 후원금이 줄어든 관계로 경기 일정을 줄이기로 했다. LVBP는 올해 10월 18일 예정이던 정규 리그 시작일은 11월 5일로 연기했다고 엘 나시오날이 전했다. PDVSA와 BNDES 등 미국 제재를 받는 기업들의 후원을 받지 않기로 하면서 올해 LVBP예산은 절반으로 줄었고, 한 팀당 치르는 경기 수는 기존 63경기에서 42경기로 쪼그라든다. 이는 2002~2003년 쿠데타 사태로 12월 경기가 취소된 것을 제외하면 흔치 않은 조치다. 선수들도 더이상 PDVSA와 BNDES 로고가 들어간 유니폼을 입지 않고 경기장 전광판 등에서도 이들 기업 간판이 사라진다.다만 베네수엘라 프로야구의 노력이 트럼프 정부에 통할지, 통하는 경우라도 계속 믿을만한 조치일지는 지켜봐야 한다. 앞서 지난 해 12월 미국 MLB 사무국은 "MLB는 한국·일본과 하는 것처럼 쿠바야구연맹(FCB)과 선수 비공개 경쟁입찰을 하기로 하는 협약을 맺었다"고 밝히면서 쿠바 야구 선수들과 MLB가 정식 계약을 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당시 MLB는 "쿠바와의 협약은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6년 해외자산통제실(OFAC)의 동의·허가를 받아 진행한 사항으로 여전히 유효한 허가"라고 했다.
하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의 치적을 맹비난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뒤엎어 버렸다. 지난 4월 트럼프 정부는 "쿠바야구연맹(FCB)은 쿠바 정부 산하 기관이기 때문에 쿠바 정부를 제재하는 미국의 방침에 따라 MLB와 FCB간 협약을 불법이고 무효"라고 막아섰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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