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배종옥 "'우아한 가'에서 백에 한번 나올까한 여성캐릭터 연기했죠"
입력 2019-10-18 09:31  | 수정 2019-10-25 10:05


"한제국 같은 캐릭터는 남자 배우가 해오던 영역이었어요. 우리 드라마도 처음엔 남자를 캐스팅하려고 했고요. 거기에 여배우가 들어갔다는 것만으로도 드라마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최근 강남구 청담동에서 만난 연기자 배종옥은 특유의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MBN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수목극 '우아한 가'에서 재벌가의 리스크관리팀 수장을 맡아 카리스마를 뽐냈습니다. 정·재계를 쥐락펴락하면서 짧은 머리와 치켜 올라간 눈꼬리, 날렵한 슈트 핏(fit)이 트레이드마크인 한제국에게 시청자들은 열광했습니다.



배종옥은 "잘해야 본전"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1985년 KBS 특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연기 경력만 30년이 넘었고, 대표작도 하나로 추리기 어려운 베테랑 배우입니다.

"드라마를 30년 넘게 하다 보니까 나 배종옥을 뛰어넘는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 한동안은 작품이 좋으면 시청률이 별로고, 시청률이 높으면 작품이 별로고…. 그런 시간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드라마에선 제가 여성 악역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는 평도 있는 걸 보니, 작품도 괜찮았고 시청률도 좋았던 것 같아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한제국은 국내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여성 캐릭터였습니다. 법조계에서 '유리 천장'의 한계를 깨달은 뒤 비선 실세의 길을 택하고, 권력으로 모든 사람을 주무르고 싶어하는 야망을 주저 없이 표출합니다. 배종옥은 한제국에 대해 깊은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물론 한제국은 '악의 축'이고 그런 인물은 없어져야 하지만, 선악을 떠나 국내 방송 현장에서 내 또래 여배우가 할 만한 이런 역할이란 것 자체가 없어요. 한제국은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사회엔 그런 여성이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 드라마에선 그런 여성을 주인공으로 부각하며 극을 끌고 가는 작품이 없었죠. 한제국은 '이런 캐릭터는 앞으로 할 수 없을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백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여자 캐릭터였습니다. 그걸 제가 할 수 있었다는 게 좋았어요."

캐릭터가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기 때문에 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배종옥은 "남자가 가질 수 없는 부드러움을 가지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줘야 했다"며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밀어붙였는데, 나중에 감독님이 '여성이라 권력을 휘두를 때 더 강렬한 느낌이 있다'고 해줘서 그대로 믿고 갔다"고 했습니다. 그 덕분에 한제국은 남자들로 가득한 세계에서 소리치거나 거친 표현 하나 없이도 당당한 카리스마를 뽐냈습니다.



배종옥은 도시적인 현대 여성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는 한제국처럼 여성이 주체적으로 그려지는 배역을 맡은 최초의 기억을 MBC TV '행복어사전'(1991)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땐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면 남자들이 싫어했다. 맞을 뻔한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김수현 작가의 '목욕탕집 남자들'(1996)에선 부모와 사회에 반기를 드는 당찬 독신주의 여성을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이면서 자아의식이 강한 배역을 많이 해왔어요. 제가 연기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도 많은 여성이 자기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말'을 제가 연기로 대신해주길 바라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여자팬이 많았죠. 내게 사랑을 주면서 이런 걸 대변해주길 원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여성들에게 그런 희망을 준다는 게 뿌듯해요."

그에게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작품을 꼽아달라고 하자 역시나 '하나만 뽑기는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름을 알린 건 '왕룽일가'(1989), 그다음엔 '행복어 사전'으로 도시여성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고요. 그다음엔 '거짓말'(1998)로 노희경 작가와 만났고, '내 남자의 여자'(2007), '천하일색 박정금'(2008)…. '우아한 가'도 제게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예전엔 뭘 해도 '이게 새로울까?' 싶었는데 한제국을 만났잖아요. 앞으로도 어떤 기회로든 새로운 캐릭터가 올 것 같아요."



[MBN 온라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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