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협회가 도마 위에 오른 의료자문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대한정형외과학회와 손을 잡았다. 정형외과 부분에서 가장 많은 의료자문의 다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업계가 자발적으로 의료자문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실제 운영을 어떻게 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1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보협회는 이날 대한정형외과학회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보험사들이 의료자문 결과를 사실상 보험금 감액이나 지급 거부 기준으로 악용해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데 따른 조치다. 좀 더 공정한 의료자문을 해보자는 취지다. 협회는 생보사내 정형외과 분야의 의료자문 수요가 가장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업무적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협약에 따라 생보업계는 의료자문이 필요한 심사건의 일부를 대한정형외과학회에 맡기고 심사결과를 통보 받는다. 이 과정에서 누가 심사를 하는지 등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특정인에 의료자문이 집중되고 있는 실정에서 이에 따른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보험업계는 보험금 분쟁 시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 않고 자료만으로 질병 등의 소견을 확인하는 자문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의료자문제도는 보험업법에는 근거가 없으며 생명보험 표준약관에서 보험금 분쟁 발생 시 보험사와 가입자가 합의한 종합병원(제3자)의 의견을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 약관에 따르면 보험사가 의료자문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 비용은 건당 30만~50만원 수준이다.
이런 점을 보험업계가 보험소비자에게 잘 설명해주지 않아 의료자문제도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보험사가 월급을 주는 특정 자문의에게 의료자문이 맡겨져 운영되다 보니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고 할까.
실제 2017년 한 해 동안 보험금 분쟁으로 보험사(생보+손보)가 의뢰한 의료자문은 7만7900건이었으며 이중 3만8369건에 대해 보험금 지급이 거절됐다. 비율로 따지만 49%, 10명중 5명은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는 의료자문 8만7467건 중 3만1381건(35.9%)에 대해 보험금 지급이 거절됐다.
이번 조치에 따라 의료자문제도가 보험금 지급 거절을 위한 방편이 아닌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또한, 손해보험협회도 이런 생보협회의 움직임에 동참할 것으로 알려져 일단 취지 측면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그래도 우려는 있다. 그간 보험업계가 암 입원비, 즉시연금 등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신뢰를 크게 잃어서다. 생생내기에 그칠 것이란 염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오세헌 보험소비자원 국장은 "의료자문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생명이므로 제3의료기관의 자문이 필요하다"며 "행여 제도 운영 과정에서 보험사 의도에 따라 보험금을 부당하게 거절하거나 삭감해 지급할 목적으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들은 현행 표준약관에 명시된 제3의료기관 자문을 금융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려 올바로 실행하는 것이 먼저"라고 꼬집었다.
[디지털뉴스국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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