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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디지털 혁신 앞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입력 2019-10-15 17:25  | 수정 2019-10-16 06:40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최근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조만간 도 입할 `데이터 사이언스` 엔진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 대담 = 김대영 경제부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보수적인 문화의 금융권에서는 '독특한'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정장보다는 청바지에 노타이 차림이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혁신'을 보여준다. 현대카드가 업계 최초로 카드 옆면에 색을 넣고 카드 등급에 따라 다른 색을 입혔다. 가로가 아닌 세로 모양 카드도 선보였다. 럭셔리 '문화 마케팅'에도 적극적이다. 2007년부터 시작한 '현대카드 슈퍼 콘서트'는 폴 매카트니 등 세계적인 가수들의 공연으로 유명하다. 정 부회장의 '혁신'에 힘입어 현대카드는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다. 올해 5월 18년간 삼성카드 제휴사인 코스트코와 10년 독점 제휴계약을 맺었다.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한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PLCC)' 덕분이다. 최근에는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최근 서울 여의도 현대카드 본사에서 만난 정 부회장은 "내년 '데이터 사이언스'를 도입해 새로운 판을 짜겠다"고 밝혔다. 이를 기반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에 진출해 '글로벌 2.0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공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현대카드의 전략은.

▷현대카드가 넘어서야 할 문턱은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이 문턱을 넘느냐다. 현대카드는 내년에 비즈니스를 구동하는 주요 엔진을 다 바꾼다. 이는 '말'에서 '내연기관'으로 바뀌는 것과 같다. AI나 머신러닝 등 표현을 쓰는데, 결국은 '데이터 사이언스'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데이터 큐레이션'이다. 데이터는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이를 어떻게 조직하고 정리할지가 더 중요하다.
―데이터 큐레이션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카드 데이터는 빅데이터라고 하기엔 너무 적다. 그래서 우리는 데이터 큐레이션에 집중한다. 데이터 큐레이션 기술을 적용하면 종전 알고리즘으로 6개월 걸렸던 일을 단 3초 만에 끝낸다. 2만개 자동차 부품(데이터)을 조립한다고 가정해보자. 설계도가 있으면 조립할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런데 데이터 큐레이션은 어디에든 맞출 수 있는 만능 부품과 비슷하다. 올해 말부터 새로운 엔진을 시범 가동한 뒤 내년부터 새 엔진을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데이터 큐레이션의 혜택은.
▷우선 PLCC를 할 때 유리하다. 현대카드는 3초 만에 지역·성별·나이 등 고객사가 원하는 대로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마케팅을 수행하는 판이 바뀌는 것이다. 판이 바뀔 때는 'how to do(어떻게 할지)'도 중요하다. 재미있는 광고를 통해 판을 바꾼 것과 데이터 사이언스를 적용해 판을 바꾼 것은 전혀 다르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적용하면 큰 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하는 데 지난 5년간 3000억원 이상 쏟아부었다.
―해외 진출 계획은.
▷그동안의 해외 진출이 1단계였다면, 지금 2단계로 가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2.0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글로벌 1.0은 선진 시장, 자동차(현대자동차그룹) 비즈니스를 따라갔다. 미국 브라질 영국 등 자동차가 많이 팔리는 곳이나 선진국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진출할 동남아는 자동차를 따라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와 카드사가 동시에 들어간다.
―글로벌 2.0은 1.0과 어떻게 다른가.
▷유럽에는 항상 현대캐피탈만 갔다. 그런데 동남아 파트너들은 우선 신용카드를 원한다.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이 먼저 가고 현대캐피탈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 4개국에 우선 진출하고, 필리핀과 미얀마가 그다음 목표다. 현대카드는 단독 진출이 아니라 동남아 현지 기업과 손잡고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동남아 시장의 미래 전망은.
▷동남아 국가에는 알리페이 등 지불 결제 시장이 있다. 5년 전만 해도 알리페이가 신용카드를 대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지불 결제 뒤에 신용공여가 없기 때문이다. 알리페이가 50만원씩 소액을 빌려줄 순 있지만 거액을 빌려주진 못한다. 중국에서도 신용카드사가 따로 생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동남아도 신용공여 없는 애플리케이션(앱) 위주로 발달했는데, 이제 카드로 눈길을 돌리는 것 같다.
―동남아에서 현대카드가 꾀하는 차별화 포인트는.
▷어느 파트너든 현대카드의 마케팅, PLCC, 데이터 사이언스에 매력을 느낀다. 동남아도 물류시장이 독점적이거나 굉장히 크기 때문에 PLCC를 전개하기 좋다. 동남아에서는 한국보다 모바일을 많이 쓰기 때문에 데이터 연계도 쉬울 것이다.
―유럽에서의 사업 계획은.
▷조만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로 현대캐피탈이 진출할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잘 안 되는 단기 자동차 렌트 상품을 실험하고 싶다. 요즘 구독경제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떠오르고 있어 이를 실험할 장소가 필요하다.
■ "독극물·술·주스 관리법 다르듯…개인정보도 등급제 필요"
정태영 부회장은 그 누구보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오랜 기간 연구해왔다. 한국의 데이터 활성화를 이른바 '개망신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이 막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 부회장은 "단순히 규제를 푸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등급별로 나눠 다르게 접근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의 데이터 규제에 대한 생각은.
▷금융회사가 무조건 법이나 규제를 풀어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개인정보 강화와 완화, 이 이분법적 사고 방향이 잘못됐다는 점이다.
―그럼 데이터 정책 방향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개인정보를 2~3등급으로 나눠야 한다. 예를 들어 한 금융사가 해킹을 당해 개인정보 100만개를 유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안에는 미가공 데이터도 있고 익명 정보도 있다. 정보마다 다르게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절대 마시면 안 되는 독극물과 마시면 몸에 안 좋은 술, 마셔도 되는 주스를 동일한 냉장고에서 동일하게 규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인정보 등급제가) 귀찮은 일이라 하기 싫다고 하면 개인정보나 산업 둘 중 하나가 무너질 것이다.
아무리 잘 만든 비행기라도 추락할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데이터는 언제라도 해킹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사고가 나기 전 회사가 최선을 다했는지다. 데이터 해킹을 어떻게 막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교통사고는 발생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사고를 줄일지를 고민하자는 취지다. 개인정보를 강화하되 좀 더 정교하게 하자는 것이다.
―클라우드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클라우드를 안 할 수 없다. 좋은 알고리즘이 있어도 클라우드에 안 올리면 데이터를 쓸 수 없다. 데이터를 클라우드에 올리면 위험하니까 하지 말자는 것은 한국 금융회사들은 3류 금융사가 되라는 의미와 마찬가지다. 클라우드는 하나의 국가 안에서만 엮이는 게 아니라 전 세계가 다 엮여 있다.
―금융사의 미래는 어떨까.
▷금융 분야의 국경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금융을 고도화하려면 정부가 국경 없는 경쟁에도 준비해야 한다. 국경 없는 금융을 위해 제일 먼저 풀어줘야 하는 것은 '규제 철폐'가 아닌 '획일화'다.
한국은 규제가 상당히 획일적이다. 그래서 은행들도 다 비슷하고, 카드사들도 비슷하다. 회사가 모두 비슷비슷하니까 총자산순이익률(ROA)도 낮고, 소비자 혜택도 줄어든다. 예를 들어 한 회사가 람보르기니 차를 만들면 다른 차는 아반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모두가 쏘나타만 만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 금융사가 외국 진출이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태영 부회장은…
△1960년 서울 출생 △서울대 불문학 △MIT 경영학 석사 △현대종합상사 이사 △현대정공 이사·상무 △현대모비스 전무 △기아자동차 전무 △현대카드 부사장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사장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부회장
[정리 = 이새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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