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거인이 팔을 길게 뻗어 맞잡으니 둥그런 원이 생겼다. 그 위에서 다양한 인종 62명이 걸어다닌다. 높이 12m에 달하는 대형 조각상 '평화의 길'은 남북 통일을 위해 세워졌다.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 '오늘의 작가' 전시에서 만난 조각가 유영호(54)는 "통일은 남북한 사람들 어깨에 지워진 숙제다. 팔이 늘어나는 고통이 있어도 남북한을 잇는 평화의 다리를 놓고 싶다는 염원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평화의 길` 아래 서 있는 조각가 유영호. [사진 제공 = 김종영미술관]
현재 남북한 상황을 보면 평화는 요원해보이지만 그의 의지는 강하다. 사람의 두 팔을 길게 뻗어 임진강에 놓을 '인간의 다리' 모형도 제작했다. 강 가운데에서 고개 숙여 인사하는 인체의 어깨길로 사람들이 걸어다닌다. 그 머리에는 전망대가 있다.`인간의 다리`. [사진 제공 = 김종영미술관]
"실제 설치될 다리를 20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이다. 평화를 글로 쓰면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아 '인간의 다리'를 만들었다. 평화는 먼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개개인이 어깨를 내주는 희생을 한다면 언젠가는 남북한을 잇는 다리가 생길 것이라고 본다. 10년내 임진강에 이 다리를 놓고 뉴욕 자유의 여신상처럼 랜드마크가 되기를 바란다."`인간의 다리` 전체 모습. [사진 제공 = 김종영미술관]
2층 전시장에 놓인 '인간의 다리' 아래는 먹물이 흘렀다. 분단 후 북한으로 돌아지 못하는 이북 실향민들의 타들어가는 마음 같았다. 11년 전 세상을 떠난 부친의 고향도 평안북도 박천군이다. 작가는 "고향 땅을 못 밟은 것은 너무나 비인간적이다. 남북한 정부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휴전선 너머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남북한을 형상화한 대형 조각 '연천 옥녀봉 - 장풍 고잔상리 그리팅맨(Greeting man·인사하는 사람)'은 3층 전시장 바닥을 가득 메운다. 8m에 달하는 거대한 등고선이 펼쳐져 있고 양측 봉우리에서는 작가의 대표작인 남자 누드상 '그리팅맨'이 고개를 15도 숙이고 있다. 자존감을 가지면서도 정중하게 인사하는 각도다.
2016년 경기도 연천군 옥류봉에 높이 10m 대형 조각상 '그리팅맨'을 세운 작가는 황해남도 장풍군 고잔상리에도 설치하겠다는 꿈을 이 작품에 담았다.
`연천 옥녀봉 - 장풍 고잔상리 그리팅맨`. [사진 제공 = 김종영미술관]
인사는 모든 인간 관계의 시작이다. 작가는 종교와 인종, 이념 갈등을 허무는 '그리팅맨' 조각상을 2012년 10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2016년 1월 파나마시티 차니스로터리, 2017년 5월 에콰도르 카얌베, 2018년 7월 에콰도르 과야킬, 2018년 10월 미국 뉴저지, 2019년 8월 브라질 상파울루 등 6곳에 기증했다.'그리팅맨' 1개 제작비와 운송비, 설치비를 포함해 1억2000만원 정도 소요된다. 작가는 서울 불광동 59㎡(18평) 아파트에 살면서도 기부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부나 기업의 도움을 받으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자비로 충당했다. 작품을 설치하고 싶은 국가 지역 관청에 제안해서 협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설치까지 최소 2~3년이 걸린다"고 했다.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선언 1주년에는 자비를 털어 제작한 높이 6m '그리팅맨' 2개를 판문점에 세우기도 했다. 원래 하나는 북측 판문각에, 다른 하나는 남측 자유의집에 놓아 서로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연출하려고 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결국 남측 지역에 세워진 두 '그리팅맨' 사이에서 중국 첼리스트 지안 왕이 바흐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공연이 끝난 후 '그리팅맨'을 판문점에 기증하려고 했으나 판문점이 유엔사 관할 구역이고 다른 작가들과의 형평성 이유로 무산돼 철수됐다. 작가는 "언젠가 꿈이 이뤄질 날이 오기를 묵묵히 기다린다"고 말했다.
서울대 조소과와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를 졸업한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 '미러맨(Mirror man)'은 서울 상암동 MBC사옥 앞 광장에 세워져 있다. 이 작품이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 노출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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