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뱅킹 시대 ◆
은행 간 장벽을 허무는 오픈뱅킹의 시범운영이 약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구체적인 구현 방식에 대해서는 각 은행 담당 부서에 함구령이 떨어져 있을 만큼 비밀리에 준비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오픈뱅킹 서비스가 고객과 핀테크 친화 역량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긴장감이 팽배해 있다. 그만큼 고객은 더 편하고 질 높은 은행·핀테크 앱을 골라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0개 은행의 시범운영으로 시작되는 '한국식 오픈뱅킹'에서 고객들이 당장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한 은행 앱에서 타행 계좌를 조회·송금할 수 있다는 점이다. 30일부터 자신이 원하는 은행 앱에 관련 메뉴가 새로 생기고, 여기에 자신의 타행 계좌번호를 직접 입력해 등록하면 된다. 여러 은행 앱을 옮겨 다닐 필요 없이 하나의 앱에서 간편하게 통합 자산 조회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향후엔 일일이 계좌를 입력할 필요 없이 개인의 계좌 보유 현황을 일괄 조회하고, 그중 본인이 원하는 계좌를 선택해 등록할 수 있는 더 간편화된 방안도 도입한다. 앞서 2017년 금융결제원이 선보인 계좌 정보 통합관리 서비스 '어카운트인포'와 연계하는 방식이다.
유성준 금융결제원 오픈뱅킹 팀장은 "기존 플랫폼은 고객이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은행별로 정보를 긁어 오는 '스크래핑' 방식이었다면 오픈뱅킹은 간단한 인증으로 모든 은행 정보를 불러올 수 있는 API를 활용한 안정적인 방식"이라며 "다음달 중에는 한눈에 계좌를 조회하는 방식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범운영이 끝나는 12월 중순부터는 시중은행뿐 아니라 핀테크 업체까지 참여하는 오픈뱅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13일 현재 은행을 포함해 총 146개 업체가 오픈뱅킹 사전 이용 신청을 접수시켰다. 토스(비바리퍼블리카) 뱅크샐러드(레이니스트) 네이버페이 핀크 롯데멤버스 등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 업체에 대해선 각각 2~4주에 걸친 보안관리체계 점검 등이 진행되고 있다.
오픈뱅킹이 추구하는 금융혁신은 단순히 계좌 조회를 간편화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궁극적인 목표는 핀테크를 활용해 신용카드 위주의 공고한 지급결제 시장을 계좌 기반으로 유연화하고 은행이 독점하고 있던 고객의 금융 데이터 분석을 활성화해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늘리는 이른바 '마이데이터' 산업을 도입하는 것 등이다.
당초 지난 2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도 이러한 방향을 명확히 했다. 지금도 토스·카카오페이 등 핀테크 플랫폼에서는 고객의 은행·증권·카드 가입 정보를 가져와 통합자산조회 서비스를 제공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핀테크 업체가 일일이 개별 금융사와 제휴를 맺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라 새로운 핀테크 업체 등장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거론됐다. 또 API가 공개되지 않아 스크래핑 방식을 적용하다 보니 해킹에 취약했고, 서비스 수준도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핀테크 회사들은 송금·결제 건당 400~500원에 달하는 펌뱅킹 이용료를 금융사에 지불해 왔다. 지난해 이들 업체가 송금으로만 지불한 펌뱅킹 이용료는 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플랫폼은 공격적으로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비용 지불을 감수하고서라도 무료 간편송금과 결제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가치 1조원을 넘긴 토스가 창업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비용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그러나 오픈뱅킹이 시행되면 핀테크 사업자가 기존 은행 망에 지불했던 이용료가 기존의 10분의 1 수준인 건당 40~50원으로 낮아진다. 비용 부담이 줄어들 경우 핀테크 업체들은 보다 공격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여력이 커지게 된다.
다만 실제 도입 후 고객들에게 어느 정도 편의성을 가져다줄지, 업계 혁신을 얼마나 이끌어낼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란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2018년 1월 오픈뱅킹 정책을 실시한 영국의 경우 도입 1년이 넘도록 인지도와 활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인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초 영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명 중 1명만 오픈뱅킹에 대해 들어봤다고 응답했고, 구체적인 내용을 아는 사람은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 특히 개인정보가 여러 업체에 공유된다는 데 대한 프라이버시 문제, 경쟁사 간 차별화되지 않은 서비스 등이 한계로 꼽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금융혁신과 관계자는 "영국의 오픈뱅킹은 9개 은행이 참여해 타행 계좌 조회와 근처 타행 지점 검색, ATM 연동 등의 수준에 머물렀다"며 "한국식 오픈뱅킹은 자금 이체라는 핵심적 기능을 도입한다는 부분이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시중은행 중에선 오히려 오픈뱅킹 정책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전했다.
■ <용어 설명>
▷ 오픈API : 핀테크 기업이 금융서비스를 편리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은행의 금융 기능과 콘텐츠를 표준화된 형태로 제공하는 기반 기술. API는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의 약어다.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은행 간 장벽을 허무는 오픈뱅킹의 시범운영이 약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구체적인 구현 방식에 대해서는 각 은행 담당 부서에 함구령이 떨어져 있을 만큼 비밀리에 준비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오픈뱅킹 서비스가 고객과 핀테크 친화 역량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긴장감이 팽배해 있다. 그만큼 고객은 더 편하고 질 높은 은행·핀테크 앱을 골라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0개 은행의 시범운영으로 시작되는 '한국식 오픈뱅킹'에서 고객들이 당장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한 은행 앱에서 타행 계좌를 조회·송금할 수 있다는 점이다. 30일부터 자신이 원하는 은행 앱에 관련 메뉴가 새로 생기고, 여기에 자신의 타행 계좌번호를 직접 입력해 등록하면 된다. 여러 은행 앱을 옮겨 다닐 필요 없이 하나의 앱에서 간편하게 통합 자산 조회가 가능해진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향후엔 일일이 계좌를 입력할 필요 없이 개인의 계좌 보유 현황을 일괄 조회하고, 그중 본인이 원하는 계좌를 선택해 등록할 수 있는 더 간편화된 방안도 도입한다. 앞서 2017년 금융결제원이 선보인 계좌 정보 통합관리 서비스 '어카운트인포'와 연계하는 방식이다.
유성준 금융결제원 오픈뱅킹 팀장은 "기존 플랫폼은 고객이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은행별로 정보를 긁어 오는 '스크래핑' 방식이었다면 오픈뱅킹은 간단한 인증으로 모든 은행 정보를 불러올 수 있는 API를 활용한 안정적인 방식"이라며 "다음달 중에는 한눈에 계좌를 조회하는 방식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범운영이 끝나는 12월 중순부터는 시중은행뿐 아니라 핀테크 업체까지 참여하는 오픈뱅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13일 현재 은행을 포함해 총 146개 업체가 오픈뱅킹 사전 이용 신청을 접수시켰다. 토스(비바리퍼블리카) 뱅크샐러드(레이니스트) 네이버페이 핀크 롯데멤버스 등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 업체에 대해선 각각 2~4주에 걸친 보안관리체계 점검 등이 진행되고 있다.
오픈뱅킹이 추구하는 금융혁신은 단순히 계좌 조회를 간편화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궁극적인 목표는 핀테크를 활용해 신용카드 위주의 공고한 지급결제 시장을 계좌 기반으로 유연화하고 은행이 독점하고 있던 고객의 금융 데이터 분석을 활성화해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늘리는 이른바 '마이데이터' 산업을 도입하는 것 등이다.
당초 지난 2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도 이러한 방향을 명확히 했다. 지금도 토스·카카오페이 등 핀테크 플랫폼에서는 고객의 은행·증권·카드 가입 정보를 가져와 통합자산조회 서비스를 제공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핀테크 업체가 일일이 개별 금융사와 제휴를 맺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라 새로운 핀테크 업체 등장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거론됐다. 또 API가 공개되지 않아 스크래핑 방식을 적용하다 보니 해킹에 취약했고, 서비스 수준도 제한적이었다.
게다가 핀테크 회사들은 송금·결제 건당 400~500원에 달하는 펌뱅킹 이용료를 금융사에 지불해 왔다. 지난해 이들 업체가 송금으로만 지불한 펌뱅킹 이용료는 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플랫폼은 공격적으로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비용 지불을 감수하고서라도 무료 간편송금과 결제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가치 1조원을 넘긴 토스가 창업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비용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그러나 오픈뱅킹이 시행되면 핀테크 사업자가 기존 은행 망에 지불했던 이용료가 기존의 10분의 1 수준인 건당 40~50원으로 낮아진다. 비용 부담이 줄어들 경우 핀테크 업체들은 보다 공격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여력이 커지게 된다.
다만 실제 도입 후 고객들에게 어느 정도 편의성을 가져다줄지, 업계 혁신을 얼마나 이끌어낼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란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2018년 1월 오픈뱅킹 정책을 실시한 영국의 경우 도입 1년이 넘도록 인지도와 활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인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초 영국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명 중 1명만 오픈뱅킹에 대해 들어봤다고 응답했고, 구체적인 내용을 아는 사람은 5명 중 1명에 불과했다. 특히 개인정보가 여러 업체에 공유된다는 데 대한 프라이버시 문제, 경쟁사 간 차별화되지 않은 서비스 등이 한계로 꼽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금융혁신과 관계자는 "영국의 오픈뱅킹은 9개 은행이 참여해 타행 계좌 조회와 근처 타행 지점 검색, ATM 연동 등의 수준에 머물렀다"며 "한국식 오픈뱅킹은 자금 이체라는 핵심적 기능을 도입한다는 부분이 차별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시중은행 중에선 오히려 오픈뱅킹 정책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도 감지된다"고 전했다.
■ <용어 설명>
▷ 오픈API : 핀테크 기업이 금융서비스를 편리하게 개발할 수 있도록 은행의 금융 기능과 콘텐츠를 표준화된 형태로 제공하는 기반 기술. API는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의 약어다.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