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에너지 보조금 폐지 반대 시위 격화…`산유국` 에콰도르 대통령 피난
입력 2019-10-09 15:52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도로 점거 후 진압 경찰과 대치 중인 시위대/출처=AFP
'산유국' 에콰도르 정부가 40년만에 에너지 보조금을 폐지한 여파로 대통령이 '피난'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3일(현지시간) 부로 에너지 보조금이 폐지된 후 시민들 항의가 폭력사태로 번지자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했지만, 에콰도르 유전 일부가 가동을 멈추는 등 혼란은 더 짙어지고 있다.

7일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군인들과 함께 찍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혼란 탓에 정부가 당분간 수도 키토가 아닌 인근 과야킬에서 업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이날 선언했다.
과야킬로 피신간 모레노 대통령은 8일 텔레아마조나스 방송과 인터뷰 하면서 "불만이 있다고 폭력을 쓰면 안 된다. 이런 사람들은 그저 혼란을 일으키고 폭력을 행사하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며,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 같은 외부 세력에게 돈을 받았을 것"이라며 폭력 사태를 비난했다. 이어 그는 "나는 에너지 보조금을 폐지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바꾸지도 않을 것"이라면서 "보조금 폐지만 보지 말고 정책 전반을 봐달라. 정부가 낸 대책은 재정난을 줄이는 대신 빈곤층에게 주택·교육 등 복지 혜택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호소했다.
에콰도르 수도 키토 소재 의회 건물 앞에서 긴축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대 모습/출처=AFP

시위대 일부는 경찰 저지를 뚫고 키토 시내 의회 건물에 진입했고 사법부 공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에콰도르 정부는 지난 3일 이후 시위대 570명이 체포됐고, 경찰 77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상황이 악화되자 국방부는 "오는 13일까지 저녁8시~새벽5시 동안 주요 건물 인근 일반인 통행을 금지한다"고 8일 발표했다.
곳곳에서 항의가 거세지면서 8일 국영석유사 페트로아마조나스(EP)는 "불안정한 상황 탓에 사차·리베르타도르·아우카 유전 일대 생산·수송 작업이 원활하지 않다. 전국 차원에서 하루 원유 생산량이 기존 생산량의 1/3에 해당하는 16만5000배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7일 EP는 에콰도르 원유 생산량의 12%를 담당하는 유전 3곳이 외부 세력에 점거돼 가동을 멈췄다고 밝힌 바 있다. 글로벌 원유 시장에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둔화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와 에콰도르 등 주요 산유국의 생산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유가가 떨어졌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8일 전했다.
수도 키토 시내에는 전국 각지에서 오토바이와 자동차, 트럭을 타고 올라온 전국 원주민 연맹(CONAIE) 소속 원주민 7000여명 등이 돌과 타이어 등으로 도로를 막고 화염병을 던지며 "모레노 대통령은 물러가라!"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출처=로이터

혼란은 에너지 보조금 폐지에 대한 원주민 반대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수도 키토 시내에는 전국 각지에서 오토바이와 자동차, 트럭을 타고 올라온 전국 원주민 연맹(CONAIE) 소속 원주민 등 7000여명이 돌과 타이어 등으로 도로를 막고 화염병을 던지며 "모레노 대통령은 물러가라!"면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EFE통신이 전했다. 에콰도르에서 원주민은 인구의 7%를 차지해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집단으로 꼽힌다.
40년만의 에너지 보조금 폐지는 에콰도르 정부 재정 긴축안 '엘파케타소(패키지 정책)'일환이다. 모레노 정부는 올해 초 국제통화기금(IMF)에 42억 달러 대가성 금융 지원을 받기로 하면서 2020년까지 재정적자를 올해 추정치(36억 달러)보다 대폭 낮춘 10억 달러 선으로 낮춘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산유국인 에콰도르에서는 지난 40년간 정부가 민간에 에너지 보조금을 주면서 총 60억 달러를 썼다. 보조금 폐지되면서 디젤·휘발유 가격이 최대 2배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엘파케타소는 정부 지출을 1억6000만 달러 줄이고 공무원 휴가를 15일로 단축해 정부 씀씀이를 아끼는 한편, 연간 수입이 1000만 달러 이상인 기업에 대해 3년간 특별 법인세를 매겨 세수를 늘린다는 내용도 담고있다. 정부와 민간이 허리띠를 졸라매 아낀 14억 달러는 빈곤층 주택과 교육·의료 부문에 재투자한다는 것이 모레노 정부의 계획이다.
다만 최근 IMF는 중남미 국가에 대한 차관 제공등 금융 지원에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라고 로이터통신 라틴판이 전했다. 에콰도르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도 재정긴축 탓에 가뜩이나 생활고를 겪는 시민들 불만이 날로 커지면서 정부가 정책 추진 동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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