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캠퍼스서 농사짓고 열매따는 대학생들 왜?
입력 2019-10-07 15:46 
지난 1일 찾아간 이화여대 '스푼걸즈'의 텃밭에는 심은 지 1주일 된 어린 새싹들이 자라 있었다. [사진 = 김설하 인턴기자]

지난 1일 저녁 7시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문화관 앞. 폭 1.6m·길이 5.8m 정도의 텃밭에는 심은 지 1주일 된 어린 새싹들이 뽀송뽀송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특히 화단에는 위로 자라는 작물인 상추와 쪽파가, 땅에는 아래로 깊이 뿌리를 내리는 알타리무와 얼갈이배추가 심어져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이 텃밭의 주인은 바로 교내에서 농사를 짓고 작물을 수확하는 동아리 '스푼걸즈'(이화여대)다.
학점 관리하랴 자격증 따랴 몸이 2개여도 모자랄 만큼 바쁜 요즘 청년들이지만, 그럼에도 취업이나 스펙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에 정성을 쏟는 대학생들이 있다.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텃밭을 가꾸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등 자연·동물과 함께하며 힐링하는 동아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최근까지 열풍이 불었던 창업·재테크 동아리와 같이 이른바 스펙 쌓기용이 아닌 '생명', '나눔' 등 자신들만의 가치를 찾아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 모였다.
◆이대-스푼걸즈·중앙대-중앙상추
"올가을엔 로메인 상추 심어서 샐러드 해 먹자", "실파랑 꽃 고추 재배에 한번 도전해볼까"
교내 텃밭 동아리인 스푼걸즈와 중앙상추(중앙대학교)는 매 학기 초만 되면 농부들이 할법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잡초를 뽑고 흙을 고른 후 직접 구매한 씨앗·모종을 심어 작물을 수확하기까지 땀을 흘린다. 두 동아리는 교내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작지만 소중한 텃밭을 일구는 농부들이다.
스푼걸즈는 매 학기마다 교내에 있는 텃밭 2곳에서 상추와 땅콩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이화여대 '스푼걸즈']
스푼걸즈는 "바쁘고 냉혹한 도시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자연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며 그동안 잊고 있던 공동체 의식을 되찾고자 노력한다"고 말했다. 스푼걸즈 부원 김 모씨(22)는 동아리에 가입한 계기에 대해 "텃밭 가꾸기는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는 활동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학기 스푼걸즈는 직접 심은 상추를 학교 구성원들이 마음껏 뜯어갈 수 있도록 텃밭을 개방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모씨(21)는 "하나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나눔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원 장 모씨(20)는 "대학생으로서 직면한 취업이나 학점 관리는 긍정적인 결과를 즉시 끌어내기가 어렵지만, 작물 재배는 결과물을 바로바로 볼 수 있어 좋다"고 귀뜸했다.
중앙상추는 다양한 작물과 꽃, 나무를 재배하는 '힐링' 동아리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중앙대 '중앙상추']
지난 2017년 설립된 중앙상추는 30명대였던 동아리 부원이 최근 60명대로 2배 가량 늘었다. 이번 학기에는 2평 남짓한 텃밭 8칸에 상추·실파·당근·노랑구절초 등 다양한 작물과 꽃, 나무를 심었다. 중앙상추에는 "도심 속 리틀 포레스트를 꿈꾼다" 며 가입한 부원도 있고, "식물을 좋아하는 동아리라면 착한 사람들만 모일 것 같다"는 소소한 생각에 함께하게 된 부원도 있다. 이처럼 화려한 스펙이 아닌 자연과 사람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모인 중앙상추는 "함께 나누며 힐링하는 동아리"라는 모토 아래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회장 이재근 씨(25)는 "조그만 텃밭이지만 관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도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또 수확 후 다 함께 나눠 먹는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흙냄새 맡으며 땀 흘리는 것이 즐겁다"며 활동 소감을 전했다.
◆연세대-연냥심
연냥심은 교내 길고양이들의 급식과 응급구조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김설하 인턴기자(왼쪽), 연세대 '연냥심'(오른쪽)]
'연냥심'(연세대 냥이는 심심해)은 연세대 교내에서 길고양이와 구성원 간의 공존을 위해 활동하는 동아리다. 처음에는 교내 건물에서 발생한 고양이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활동을 시작했지만, 현재는 신촌과 송도 두 개의 캠퍼스에서 고양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 2일 오전 9시쯤 찾은 연세대 학생회관 앞 도로 근처 잔디밭에 설치된 고양이 급식소. 다소 이른 시간이라 고양이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동아리 부원들이 직접 목재를 다듬어 지은 급식소에는 고양이들이 먹을 물과 사료 등이 마련돼 있었다. 연세대 전체 캠퍼스에는 이 같은 급식소가 12곳, 집사 45명, 고양이 약 60~70마리가 공존하고 있다.
연냥심 소속 집사들은 급식 배분 외에도 'TNR(Trap-Neuter-Return)' 사업에도 참여한다. TNR은 개체 수를 조절하고 영역다툼을 완화하기 위해 인도적인 방법으로 고양이를 포획한 후 중성화하는 것을 뜻한다. 이들은 또 부상 입은 고양이를 위해 응급 구조를 진행하고, 사료와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해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이처럼 고양이를 아끼는 순수한 마음 하나로 모인 연냥심 집사들은 바쁜 학교 생활 중에도 교내 길고양이들이 더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틈틈이 돕고 있다. 현재 4학기째 활동하고 있는 회장 민경준 씨(24)는 "연냥심은 취업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작은 활동이지만, 고양이들 입장에서는 '세계'가 바뀌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김설하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