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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th 부산영화제①]불발된 신호탄…개막작 ‘말 도둑들’(리뷰)
입력 2019-10-04 07:30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그럴 듯한 신호였다. 그러나 발사하고 나니 멀리 가진 못했다. 부산영화제의 포부와 자부심을 한껏 담았지만 관객에겐 한 참 미치지 못했다. 마침내 영화가 끝난 뒤엔 격한 의구심만 샘솟는다. ‘왜, 어떻게, 이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됐을까에 대한 궁금증이다.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의 재도약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 ‘새 얼굴 발굴 등 야심찬 슬로건에 자격요건만 끼워 맞춘, 제24회 부산영화제의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이하 ‘말도둑들)이 베일을 벗었다.
영화제 시작을 알리는 얼굴이자 주제의식을 단적으로 담아내는 개막작인 만큼 기대가 쏠렸지만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엔 여러모로 역부족이다. 지난해에는 정상화를, 올해에는 야심찬 재도약을 선언한 만큼, ‘화려한 외피를 걷어내고 메이저 영화제다운 내실을 보여주겠노라라며 갖가지 의미를 부여했지만 열정이 너무 앞선 듯하다. 흥미도, 감동도, 그 의미도 기대치를 채우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개막작이다.
카자흐스탄 버전의 서부극으로 설명했던 ‘말 도둑들. 시간의 길은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이 마을 사람들과 말을 팔러 갔다가 말 도둑들을 맞닥뜨리며 시작된다. 지난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사말 예슬리야모바가 출연,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을 수상한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감독과 리사 타케바 감독이 공동 연출했으며, 2017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선정 작이다.
부산영화제에서 유난히 애정을 쏟은 신예 감독들의 작품, 일본(모리야마 미라이)과 카자흐스탄(사말 예슬라모바)이라는 두 아시아 배우들의 출연 등을 이유로 개막작으로 선정됐지만 정작 내실은 함량 미달이다. 형식적인 조건에만 부합할 뿐, 영화제의 간판이 될만한 킬링 포인트를 지니진 못한 것.
갑작스럽게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뒤늦게 등장한 또 다른 아버지. 그리고 다시 맞닥뜨리는 말 도둑들, 여운을 의도했지만 서운함만 남긴 결말까지. ‘서부극이라는 수식어가 민망할 수준의 긴장감 없는 액션과 어설픈 연기, 설정과 전개는 진부한데다 주제의식 또한 모호하다.
전통적인 휴머니즘이나 기발한 창의성, 날카로운 문제의식도 아닌, 흥미나 여운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전혀 없는, 낯선 국적의 도전 의식만 빛나는, 난데없는 신호탄. 기자회견을 통해 캐릭터를 둘러싼 전사나 함축된 의미 등을 어필했지만 완성된 작품에서 좀처럼 그 지점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앞서 부산영화제 측은 사회적 약자 배려, 그들의 문제에 공감하는 영화가 (국내 영화제에서는) 많지 않고, 영화제에서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가부장적이거나 남녀 차별적인, 다소 편향된 관점의 프로그래밍이 반복될 가능성을 개선하고 지양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부상할 것”고 강조했지만, 자신들이 설정한 이정표에 과도하게 몰입한 탓에 오히려 안일한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싶다. 유일한 미덕은 83분의 짧은 러닝타임.
한편, 올해 영화제의 개막 공연은 미얀마 카렌족 난민 소녀 완이화의 나는 하나의 집을 원합니다로 진행, 개막식 사회이자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이 함께 했다. 민족, 국가, 종교, 성, 장애를 뛰어넘어 하나 된 아시아로 도약하고자 한다”는 영화제의 취지를 담은 것.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2일까지 영화의전당, 롯데시네마센텀시티, CGV센텀시티 등 5개 극장 37개 스크린에서 초청 영화 303편을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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