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발이 먹고 싶었던 대학생 안대현 씨(21)는 괜찮은 제품을 찾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유튜브 앱을 켰다. 영상을 둘러보던 중 식품 리뷰 크리에이터 '참피디'가 올린 순살족발 제품 후기가 눈에 띄었다. 품질도 좋아 보이고 300g에 3900원이라는 가격에 이끌려 총 4세트를 구매했다. 제품에 만족했던 안 씨는 며칠 뒤 이 브랜드에서 새로 출시한 막창 제품까지 추가로 구매했다.
현재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는 20~30대는 안 씨처럼 '짧은 동영상을 모바일로 스트리밍'하는 데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즉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검색할 때 포털 사이트보다 유튜브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제품과 광고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내가 신뢰할 수 있는', '나와 취향이 비슷한' 크리에이터의 경험과 추천을 신뢰하고, 이에 따라 소비를 결정한다. 20대 후반의 한의사 유 모씨는 구독자 193만명을 보유한 푸드 크리에이터 '꿀키'를 8년간 응원해온 오랜 팬이다. 그는 꿀키에 대해 "먹는 거로 장난치지 않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 씨는 꿀키의 요리 레시피를 따라 할 뿐 아니라 그가 추천한 주방용품을 믿고 구매하기도 한다.
유통업계는 이러한 디지털 네이티브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MCN(Multi Channel Network) 기업과 손잡고 있다. MCN은 크리에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육성하고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일종의 기획사다. 국내에서는 CJ ENM이 2013년 설립한 '다이아 티비(DIA TV)'를 시작으로 후발 주자인 샌드박스, 트레져헌터까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다이아 티비는 사업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구독자 100만명 이상을 보유한 밀리언 창작자 62개 팀을 지원·육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푸드 크리에이터 꿀키는 지난 6월 직접 기획한 수제롤까스 제품을 출시했다. [사진 출처 = 유튜브 채널 `꿀키` 캡처]
MCN과 유통업계의 협업은 단순한 브랜드 PPL이나 홍보 모델에 그치지 않는다. 크리에이터가 제품을 직접 기획·판매하고, 자체적으로 스토리텔링을 구성해 토크쇼·버라이어티 등의 예능 콘텐츠를 진행한다. 사무직 권 모씨(23)는 최근 '꿀키의 수제롤까스 세트'를 구매했다. 꿀키는 식자재유통기업과 협업해 만든 냉동 돈까스 제품을 지난 6월 출시했다. 이는 꿀키 채널의 콘텐츠 중 14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한 치즈롤까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또 홈쇼핑 쇼호스트로서 직접 판매에 참여하기도 했다. 권 씨는 "평소 꿀키가 만든 음식을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터라 즉시 구매를 결심했다"고 말했다.롯데면세점은 뷰티 크리에이터 '씬님' 등이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 '냠다른 TV'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해외에 있는 지점을 방문해 상품을 직접 구매하고 평가하는 이른바 '쇼핑 하울'과 같은 예능 포맷으로 소비자와 소통한다. 구독자 112만명을 보유한 '엔조이 커플'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와 함께 쇼핑 서비스를 직접 체험해보는 콘텐츠를 선보이는 중이다. 다이아 티비는 "향후 중소기업과 연계해 크리에이터가 추천하는 제품들을 패키징해 판매하거나, '대도서관'이 쇼호스트로 등장하는 '대도쇼'와 같은 쇼핑형 콘텐츠 IP를 개발해 커머스 영역에 대한 파급력을 키워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처럼 크리에이터가 유통업계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자신만의 스토리와 진정성을 담은 콘텐츠로 팬들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대감을 악용한 허위·과장 광고 사례가 최근 잇따라 발생하면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유명 먹방 크리에이터 '밴쯔'는 자신이 판매하는 건강기능식품이 다이어트에 특효가 있는 것처럼 과장 광고한 혐의로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한국문화경제학회장)는 "1인 미디어는 자율적인 자정기능이 거의 없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라며 "최소한의 검증 장치 없이 빠르게 자극적으로 영상을 내보내다 보니 필터링 자체가 망가져버렸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미디어 플랫폼 사업자인 유튜브 등이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과학적인 자율 규제 시스템을 운영해야 하지만 현재는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며 "이용자 반응과 관련해 추천·평점 이외에 신뢰도와 의심 정도를 함께 측정하고, 플랫폼 데스크가 콘텐츠를 유형화해 어떤 패턴의 반응을 얻고 있는지를 적절히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거래를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안전정보과는 "올해 최초로 유튜브와 같은 SNS 크리에이터에 대한 모니터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며 "기존 표시·광고의 판단 기준과 마찬가지로 소비자 입장에서 허위·과장성을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뉴스국 김설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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