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인터뷰] 정해인 "인간이 놓지 말아야 할 한 가지는 연애"
입력 2019-08-25 17:07  | 수정 2019-08-25 21:28
떨어지는 나뭇잎도 조심한다는 군대 병장 시기, 배우 정해인(32)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운전병 정해인이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을 달리고 있었는데, 차의 시동이 급작스럽게 꺼진 것이다.
"덤프트럭이 보이더라. 온몸의 털이 섰다.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시동이 꺼지면 무조건 뒤의 차가 들이받는다. 핸들을 꺾어서 갓길로 빠졌다. 삼각대를 설치하는 도중에도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
이 스토리는 정해인이 사후 수습을 침착히 해낸 공로로 포상받고, 해당 사고가 육군에서 운전병 교육 모범 사례에 뽑히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지난 23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교통사고 이후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바꿨다고 털어놨다. '늘 이 순간에 충실하자'를 좌우명으로 삼은 것도 사고 영향이 크다.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아마 자신에게 그런 일이 생길지 절대 몰랐을 거다. 그냥 집에서 양치하고 나왔겠지. '내일은 없다'고 되새기면서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멜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에서 그가 연기한 현우는 현실의 장벽에 거듭 부딪히면서도 미수(김고은)를 향한 사랑을 키워나가는 남자다. 정해인은 인간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연애는 놓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 주변엔 연애를 오래 쉬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빨리 연애했으면 좋겠다. 연애는 꼭 사람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다면 그게 연애다. 일을 좀 더 열심히 할 수도 있는 거고. 사랑은 좋은 거니깐."
극 중 현우는 청년의 불안을 지닌 인물이다. 지난해 방영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로 데뷔한 지 겨우 5년 만에 대세 배우가 된 정해인이 평범한 20대의 우울에 공감하긴 어렵지 않았을까.
"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배우 일을 시작했다. 스물여섯 살이었는데, 보통 대한민국 남자가 대학교 졸업해서 취업 원서 넣고 막 사회로 나아가는 나이잖냐. 연기를 '일'로 생각했기 때문에 늦었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뭔가 불안했다. 나보다 어렸을 때 시작한 친구들은 소속사가 있는데, 나는 회사도 없고."
언제든 자신을 붙들어줄 자존감을 다지려 노력했다고 한다. 특히 주변에 자신을 지지해줄 사람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자존감이 무너지면 안 된다. 신인 시절, 또 연기를 배우던 학생 때는 우울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뀔 때 가족과 친구들을 찾아갔다. 지금은 팬분들이 응원하며 지켜봐주고. 이번 영화에서도 자존감의 중요성이 계속 드러난다."
정해인은 수능을 마친 뒤 영화관에 놀러 갔다가 모델 에이전시 직원에게 명함을 받으며 연기자를 꿈꾸게 됐다. 용기를 얻어 준비한 방송연예학과 입학에 한 달 만에 성공한 것을 그는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마초 이미지의 남자 배우가 과잉된 한국 연예계에서 그는 상대를 배려하는 부드러운 미소와 차분한 목소리로 '국민 남친' '국민 남동생' '국민 연하남' 같은 수식어를 독점해갔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밥 잘 사주는…' '봄밤'은 멜로 스타로 그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든 대표작들이다. 그러나 그는 관객들이 찾아주는 이미지에 안주하진 않는다. 내년 개봉할 영화 '시동'에서 "질풍노도의 청춘 캐릭터로 상반된 이미지를 보여주겠다"고 예고했다.
배우의 남다른 주관이 전달되는 인터뷰였다. 본인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선 과거 경험과 예시까지 들어가며 상세히 설명하다가, 어떤 질문에선 "솔직히 그 주제는 관심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위급한 교통사고에서 살아남고, 단시간에 캐스팅 1순위 배우로 치고 올라간 비결도 그런 집중력에 있었던 건 아닐까.
[박창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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