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탈취제에 대해 일본 생활용품 유통 업체가 구매 의향까지 보여 일본 판로 개척이 되나 싶었는데, 지난달부터 시작된 일본 수출 규제 여파 때문인지 바이어로부터 연락이 끊겼어요. 당분간 일본 쪽 사업은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23일 오후 서울광장에 설치된 한 매대 앞. 섬유·가죽·화장실용 탈취방향제가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인 채 찾아올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방향제 전문업체 오클레어의 이종원 이사는 지난달 초부터 시작된 일본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자사의 탈취제를 일본 생활용품 유통사로 수출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일본 업체들 쪽에서 수차례 샘플을 받아가 테스트를 거치고, 초도물량을 구매할 의향을 밝히는 등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가 시작된 이후 구매 움직임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이 이사는 "3년 정도의 기간 동안 도쿄 현지 전시화나 수출상담회에 참여해 바이어 확보에 공을 들일 정도로 일본은 방향제 업체에게 매력적인 시장인데 당황스럽다"며 "일본 수출 규제 이후 메일도 여러 차례 보냈지만 현지 업체 쪽에서 아예 읽지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일본 수출 규제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중소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날 서울광장 일대에서 개최한 'YES 중소기업 대박람회'에 마련된 수출상품전에서 만난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일본 수출 규제 시행 이후 대일본 수출길이 험난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까지 별다른 피해가 없는 상인들도 한일관계 냉각이 장기화될 때 예상되는 피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날 서울광장에 매대를 설치한 미용기기 전문 중소기업인 벨라니컴퍼니도 수출 규제 이후 일본의 통관 절차가 까다로워진 탓에 계약된 수출 물량 전부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평소엔 2~3일 정도면 통관이 완료됐는데 지금은 2주 이상 걸려 현지 업체 쪽에서 물량 인도 시기를 계속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임종숙 벨라니컴퍼니 대표는 "수출 규제 전 일본의 한 미용기기 판매 업체에서 얼굴 마사지 3000개 분량을 주문했지만 최근 2달간 수령을 미루고 있다"며 "이달 초에 1차로 300개 정도만 수령해 갔고, 이후 잔여 물량에 대해선 아직 소식이 없다"고 전했다. 이어 임 대표는 "통관이 지연되면 바이어 쪽도 손해기 때문에 남은 물량을 취소할까 걱정된다"며 "지난해부터 우리 회사 물건을 여러차례 사갔던 또 다른 일본 유통업체도 수출 규제 이후 소식이 끊긴 것도 불안한 점 중에 하나"라고 밝혔다.
일본 수출 규제 여파는 공산품에만 미치지 않았다. 경남 수산업계도 일본 검역당국의 절차가 전보다 까다로워진 데다 수출 물량 감소까지 겹치며 업황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라며 우려하는 분위기다. 경남 통영에서 이날 행사 참여를 위해 올라온 근해통발수협 관계자는 "통영에서 어획하는 장어의 60%가 일본으로 수출되는데, 지난해 여름에 비해 수출 물량이 현격히 줄어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수산시장 현장에서 만나는 수산업 중매인들도 일본에 나가는 물량이 거의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피해가 존재하진 않지만 한일갈등의 장기화로 수출 물량이 막힐까 노심초사 어민도 눈에 띄었다. 지난 22일 한국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파기로 인해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수산품까지 수출 규제 대상 품목에 오르지 않을지 걱정된다는 것이다. 전남 완도군에서 전복을 유통하는 상인 19곳이 소속된 남도전복연합회의 소성범 대표는 "일본으로 수출되는 전복량의 90%가 완도산"이라며 "현재까진 별 문제가 없지만 일본이 농수산물까지 규제 리스트로 올리거나 전세계 전복양식량 1위 국가인 중국으로 거래선을 바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걱정이 태산"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중소기업들의 가시적인 피해 발생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까지 발효가 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 뿐이라 중소기업들의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아직 접수된 바 없다"며 "오는 28일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발효가 예정된 만큼 지속적으로 피해 사례가 발생하는지 살펴볼 것"이라고 밝혔다.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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