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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규제 피하려 리모델링 추진하던 단지도 `상한제 폭탄`
입력 2019-08-15 17:31  | 수정 2019-08-15 23:21
최근 리모델링 사업계획승인을 받은 서울 용산구 이촌현대아파트 전경. 정부가 리모델링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조합원들이 혼란에 빠졌다. [매경DB]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강화된 재건축 규제를 피해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단지들이 최근 정부가 강행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란 폭탄을 맞게 됐다.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달리 일반분양을 할 수 있는 비중이 낮아 가뜩이나 수익성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입주민들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업 추진에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지방자치단체는 그간 리모델링 활성화를 위해 규제 완화와 제도적 지원을 추진해 왔다. 리모델링은 재건축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만큼 투기 목적이 아닌 실거주 입주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이 주목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으로 인해 가뜩이나 추진이 지지부진한 서울·수도권 리모델링 사업이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리모델링 사업에 대해서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제외하는 등 확실한 인센티브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발표된 후 용산구 이촌현대, 서초구 잠원동아, 강남구 청담건영 등 서울 주요 리모델링 조합에 상한제 적용 여부를 묻는 조합원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손몽호 이촌현대 리모델링조합 사무국장은 "아침부터 상한제 적용 여부를 묻는 조합원들의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일부 언론에서 리모델링은 재건축과 달리 상한제 적용을 피해 큰 수혜를 입는 것처럼 잘못된 보도가 나가 주민들의 불안감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송파구의 한 리모델링조합 관계자는 "아직 리모델링 단지에 어떻게 상한제가 적용되는지 명확한 지침이 없어 지도부나 조합 측에서 뾰족한 대책을 마련할 수조차 없다"며 "답답한 마음에 전전긍긍하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표된 분양가상한제는 입주자승인신청을 하는 모든 단지에 적용되기 때문에 재건축·재개발은 물론 리모델링 단지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기존 주택법 시행령 61조 2항에는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곳,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관리처분계획을 받은 곳은 분양가상한제에서 제외했지만 이번에 입법 예고된 시행령에는 이 같은 예외 조항이 삭제됐다.

현재 서울과 1기 신도시(분당 등)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단지는 39곳 2만8221가구다. 재건축 규제가 강화된 지난해부터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급증하면서 서울에서 추진위원회 설립을 준비 중인 단지만 줄잡아 30여 곳에 달한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 꼭대기 위로 2~3개 층을 더 올리는 '수직증축' 리모델링과 층고는 높이지 않고 옆으로 면적을 늘리는 '수평증축' 리모델링으로 나뉜다. 수직증축은 원래보다 가구 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일반분양 가구가 당연히 포함되며 수평증축도 따로 동을 세우는 별동 증축을 통해 일반분양 가구를 모집할 수 있다. 단 일반분양으로 모집할 수 있는 가구 수는 리모델링 전 기존 가구 수의 15%로 제한된다. 예를 들어 최근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이촌현대아파트 리모델링은 수평증축이지만 별동 건립을 통해 기존 653가구가 750가구로 증가하며 늘어나는 97가구를 일반분양할 예정이다. 이 단지는 당초 올해 3월 권리변동계획(재건축의 관리처분계획과 같음)을 세울 때 3.3㎡당 4300만원대에 일반분양을 할 예정이었는데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서 이보다 분양가가 크게 낮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만약 국토교통부가 밝힌 대로 당초 가격보다 일반분양 분양가가 70~80% 수준까지 떨어지면 가구당 수억 원씩 부담금이 늘어날 가능성이 생긴다.
분양가상한제로 인해 가뜩이나 지지부진한 리모델링 사업이 더욱 침체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2014년 4월 주택법 시행령 개정 이후 아파트단지 리모델링이 허용됐지만 5년이 넘는 동안 실제 착공이 이뤄진 곳은 개포우성9차 단지 1곳뿐이다. 이마저 일반분양 가구가 없는 수평증축 리모델링 단지로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착공한 곳이 단 한 건도 없다.
잠원동아아파트의 한 리모델링 조합원은 "리모델링은 사업성이 부족해 재건축이 추진되지 못한 단지들이 힘을 모아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선택한 차선책에 불과하다"며 "대부분 자비를 들여 살고 있는 아파트를 고치는 것이 목적인데 사업비에 약간이나마 보태기 위한 일반분양분까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밑에서 활발히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용산구 이촌동 일대 단지(강촌·한가람·이촌코오롱·한강대우·이촌우성 등)도 분양가상한제 발표에 먹구름이 깊어졌다. 이 일대는 지난해 5000가구 규모 통합 리모델링이 무산된 뒤 단지별로 각자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번 상한제 적용 여파로 사업 추진 동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촌동의 한 리모델링 추진위 관계자는 "이번 발표는 구축 단지로 인해 겪고 있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싶다는 집주인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정부의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 관계자는 "일반분양이 30가구 이하라면 분양승인 대상에서 제외돼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리모델링은 일반적으로 일반분양분이 적은 편이기 때문에 분양가상한제의 주 타깃이 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지성 기자 / 추동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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