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2억원의 재산 피해와 1696명의 이재민을 낸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에 대한 경찰 수사가 장기화되고 있다. 지난 4월 4일 산불 발생 이후 피해 주민들은 수사 결과 발표를 촉구하며 수차례 집회를 열고 있지만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산불이 난 지 128일, 한전 속초지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행한 지 넉 달, 관련자 조사가 마무리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사 발표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검·경이 한전의 과실 책임 등에 대한 입증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신중을 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강원지방경찰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정밀 감식 결과를 포함해 6000여 페이지 분량의 수사기록을 지난 6월 검찰에 보낸 뒤 현재까지 2~3차례 보완 수사 협의를 진행 중이다. 앞서 경찰은 고성·속초 산불의 원인으로 지목된 한전의 전신주 개폐기 유지·보수 업무와 관련해 과실 혐의가 드러난 10여명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이 중 4~5명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하는 등 수사가 속도를 내는 듯했다.
그러나 검찰은 한전의 과실 책임 등에 대한 입증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일부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면 구속 만기 전까지 최장 30일 이내 재판에 넘겨야 해 시간에 쫓길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신중을 기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결국은 한전의 업무상 과실 책임을 둘러싼 첨예한 재판을 염두에 두고 수사 단계부터 면밀하고 신중하게 처리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수사가 장기화되는 사이 막대한 산림 피해와 삶의 터전을 잃은 산불 피해 주민들은 넉 달째 애만 태우고 있다. 앞서 경찰은 산불 피해 주민들에게 "6월 초까지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속초·고성 산불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측은 "수사 결과 발표 없이는 손해사정사의 피해조사도 받을 수 없다"며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춘천 = 이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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