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밴의 나라' 온두라스 대통령이 마약상으로 전락했다. 미국 뉴욕 연방 검찰이 지난 2일(현지시간) 후안 올란드 에르난데스 온두라스 대통령을 '마약 밀매' 혐의로 뉴욕 연방법원에 기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검찰 기소장을 인용해 "에르난데스 대통령이 2013년 당시 대선 선거 자금을 대기 위해 150만 달러(약 18억 2200만원) 규모 코카인 등 마약 밀수에 공모한 정황이 있다"고 3일 보도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진, 국무부 관료들은 에르난데스 대통령이 마약밀매와 싸우고 마약 밀매·폭력 조직들이 벌이는 살인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며 평가했지만 검찰이 이를 정면으로 부인한 셈이라고 WSJ는 전했다.
`캐러밴(caravan·중미 출신 이주민 행렬)` 으로 전락해 나라를 탈출하는 온두라스 시민들. [AFP = 연합뉴스]
뉴욕 검찰에 따르면 에르난데스 대통령의 동생이자 전직 변호사이던 후안 안토니오 토니 에르난데스가 마약 밀매를 주도했다. 검찰은 "에르난데스 대통령 등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마약 밀매를 일삼았다"면서 "대통령 동생인 토니는 폭력을 일삼으며 톤 단위로 코카인 등 마약을 밀매해온 마약상"이라고 기소장에 적었다. 토니 에르난데스는 밀매 외에 불법 무기 소지 혐의로도 미국 연방 법원의 선고를 앞두고 있으며,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부인하는 상태라고 WSJ는 전했다. 동생과 또 다른 마약상을 통해 마련된 불법 자금은 에르난데스 대통령이 당선을 위해 지역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주는 용도로 흘러들어갔으며 온두라스 내 최고위 권력층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온두라스 시민들이 수도 테구시갈파에서 "마약상 독재자는 물러가라"는 펫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3일 성명서를 내고 "나는 절대 마약 밀매에 연루되지 않았다"면서 "나는 미국 정부와 다른 동맹국들과 손잡고 마약 밀수를 뿌리뽑기 위해 전례없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온두라스 언론인이자 경제학자인 라파엘 델가도는 이날 WSJ 인터뷰에서 "온두라스는 마약의 나라(narco-state)"라면서 "고위층까지 마약 밀매를 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비난했다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4년 단임제 제한을 없애고 2017년 말 대선 부정선거를 통해 2018년 1월부터 집권2기를 시작했다. 미주기구(OAS)와 유럽연합(EU)은 "선거 절차와 진행이 비민주적이고 불법적"이라면서 재선거를 권고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온두라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경을 넘어들어온다며 비난해온 '캐러밴(caravan·중미 출신 이주민 행렬)' 나라다. 과테말라, 엘 살바도르와 함께 캐러밴 3국으로 꼽힌다. 극도의 가난과 살인 범죄에 노출된 시민들이 국경을 건너 나라를 탈출하거나 반(反)정부 시위를 연일 벌이는 중이다. 지난 2009년 6월 일어난 군사 쿠데타를 결정적인 계기로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전락했다. '폭력과 살인의 온상'이라는 악명을 떨치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중에서도 온두라스의 인구 1만명당 살인율은 4번째로 높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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