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물로 미국으로 향하려던 '징기스칸 말의 후예' 몽고 말이 결국 백악관 입성에 실패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칼트마 바툴가(Battulga Khaltmaa) 몽골 대통령이 방문 기념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셋째 아들인 배런 트럼프(13)에게 몽골 말을 선물했는데 정작 말이 미국 땅을 밟지 못했다. 미국 CNN방송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배런이 평생 빅토리를 탈 일이 있을 지 모르겠다"고 보도했다.
스테파니 그리샴 백악관 대변인은 31일(현지시간) "퍼스트 패밀리(트럼프 대통령 가족)는 시대의 전통인 몽골 말을 선물해준 몽골에 감사한다"면서 "말의 이름은 '빅토리(Victory)'로 지어졌으며 몽골에 남게될 것"이라는 트위터 게시글을 올렸다. 빅토리는 징기스칸이 타고 다닌 말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말 이름을 '승리'를 뜻하는 빅토리로 한 것은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셋째 아들 배런 트럼프.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몽골 말은 키가 120~140cm 정도로 작아서 조롱말이라고도 불린다. 작지만 잘 달려서 징기스칸과 함께 세계 정복에 나섰던 말로 유명하다. '징기스칸 왕조'를 탄생시킨 공신으로 꼽힐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선 제주마 조상으로도 유명하다. 몽골 말은 고려시대인 13세기 께 제주도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있다.몽골은 외교적으로 중요한 사람들에게 말을 선물해왔다. 말이 동물이다보니 실제로 선물로 받아가거나 가져가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몽골의 기억'으로 남는 정도다.
31일 트럼프 대통령도 기자들에게 "말 사진을 봤냐"면서 "나는 사진을 봤는데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올해 3월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몽골을 방문했을 때 우흐나 후렐수흐 몽골 총리에게 '솔롱고(몽골어로 무지개)'라는 이름의 몽골 말을 한 필 선물 받았지만, 솔롱고는 몽골에 있다. 후렐수흐 총리도 "이 총리는 솔롱고가 몽골이 있다는 걸 기억해달라"고 했었다.
미국에선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이 '몬타나(Montana)' 라는 몽골 말을 선물로 받았지만 몽골에 두고왔다. 이어 2005년 부시 대통령이 몽골에 방문했을 때 "내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임무를 하나 가지고 왔다. 럼스펠드 장관이 나에게 자신의 말 몬타나가 잘 지내는지 보고 오라고 했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조 바이든 부통령과 척 헤이글 국방부 장관도 각각 '셀틱(Celtic)'과 '섐록(Shamrock)'이라는 몽골 말을 선물로 받았다. 말들은 몽골에 있다.
유도 선수 출신인 칼트마 바툴가 몽골 대통령. [사진 출처 = 바툴가 대통령 트위터]
바툴가 대통령이 이번에 미국을 방문한 것은 몽골 대통령으로서는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 정부는 바툴가 대통령을 초청해 베이징과 모스크바에 미국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길 바라면서 동시에 몽골이 중국 외에 다른 옵션을 찾게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CNN이 보도했다. 몽골은 캐시미어를 비롯해 전체 무역의 90%가 중국을 통해서 이뤄진다.앞서 30일 바툴가 대통령은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대담에 참석해 미국과 북한 간 제3차 정상회담을 몽골에서 열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고 이날 미국의소리(VOA)가 전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싱가포르나 베트남 만큼이나 몽골도 북한이 참고할 만한 경제 발전 모델이 있다. 북한과 몽골은 수교한 지 70년이 넘은 가까운 나라"라면서 "미국과 북한, 중국과 북한 정상 간 만남을 눈여겨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과 몽골 대통령은 군사협력과 무역, 광물 투자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백악관은 밝혔다. 바툴가 대통령은 몽골 유도 선수 출신으로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해 같은 해 10월 취임했다.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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