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올해 美·中·대만 두자릿수 올랐는데…한국만 하락 `왕따증시`
입력 2019-07-29 17:55  | 수정 2019-07-29 23:56
◆ 韓증시 나홀로 침체 ◆
미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데 반해 코스피는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대만 등 주변국들 역시 연초 이후 10%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코스피 '왕따 현상'은 유달리 두드러진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초 이후 미국 다우존스30은 16%, 나스닥지수는 25% 상승했다. 상하이종합지수 역시 지난해 말 급락을 딛고 올 들어 18% 상승했다. 대만 자취엔지수도 12%가량 올랐다. 경기 부양을 위한 전격적 금리 인하로 경기에 활력이 돌고 있는 인도의 센섹스지수는 5% 상승했다. 한국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종에 대한 보복에 나선 일본도 증시가 큰 폭 상승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연초 이후 8% 상승했다.
미국 중국 등 한국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 주가가 큰 폭 상승했음에도 코스피는 오히려 0.57% 내렸다. 미국 대표 지수인 다우가 코스피 대비 30배 가까이 상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코스피는 후퇴한 것과 다름없다는 평가다.
29일에도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78% 하락한 반면에 상하이와 닛케이지수는 각각 0.12%, 0.19% 하락하는 데 그쳤다. 앞서 26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 지수는 전일보다 0.19% 상승한 2만7192.45에 거래를 마쳤다. S&P500과 나스닥도 각각 0.74%, 1.11%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재차 경신했다. 경기 둔화 흐름은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닌 글로벌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증시에서만 제자리걸음 현상이 유독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한국은 미국 등 선진시장과 동조현상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며 "특히 코스닥시장은 나스닥 등 전 세계 주식시장과 동떨어진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에서는 한국과 글로벌 증시 간 괴리 원인으로 한국 경제 기초체력이 주변국 대비 취약하다는 점을 꼽는다. 최근 한일 갈등이라는 새로운 불확실성이 한국 증시 하락요인으로 대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서 확인되는 경제성장의 질적 저하가 보다 근본적 문제라는 것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데 국내 주식시장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갈등이라는 불확실성이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GDP 성장률 차이에서 확인되는 펀더멘털(기초체력)도 차별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박 연구원은 "미국 GDP 성장은 대부분 민간 소비에서 나왔으나, 한국은 정부 소비와 투자에 의존하고 있다"며 "정부에 의존한 성장은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민간소비 중심의 미국 성장률과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설비투자와 지식재산생산물 투자는 계속 증가하는 반면에 한국은 급감하거나 정체 상태에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과 미국의 산업 지형도가 다르다는 점도 양국 격차가 벌어진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은 IT산업 등 4차산업, 헬스케어 업종 등 향후 성장성이 높은 분야가 증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한편 한국은 반도체를 포함한 제조업 비중이 높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코스피 절반 이상을 제조업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 증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보다 높다"며 "투자자들의 기대가 쏠리는 분야는 IT 쪽이고, 무역분쟁으로 인해 타격을 받는 업종은 제조업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증시 타격이 유달리 큰 면이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기업 노동비용 부담 증가도 한국 증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 운영을 둘러싼 글로벌 환경이 거칠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 상승이 기업 수익성 부진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며 "대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타격을 다른 나라보다 많이 받았고, 여기에 더해 한일 무역분쟁과 노동비용 인상 등이 겹치면서 코스피가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증시 왕따 현상은 국내 역대 정권과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특히 과거에는 진보정권일수록 증시 오름세가 강했는데, 문재인정부에서는 이마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역대로 코스피는 진보정권이 보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다. 노무현정부 5년간 코스피는 무려 184.8% 올랐다. 김대중정부에서도 코스피는 19.3% 올랐다. 반면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는 각각 18.1%, 4.4% 상승하는 데 그쳤다.
김대중·노무현정부와 같은 진보정권인 문재인정부에선 코스피가 마이너스 상승률로 돌아섰다. 문 대통령 취임일인 2017년 5월 10일 2270.12를 기록한 코스피는 29일 2029.48로 거래를 마감했다. 2년2개월 동안 10.6% 하락한 것이다. 정부 출범일 642.68을 기록했던 코스닥도 29일 618.78로 장을 마쳤다. 문 대통령 취임 전인 2017년 4월 14일(618.24) 이후 최저치다. 중소·벤처기업 지원과 혁신성장 강화를 외치고 있는 진보정부에 시장이 무덤덤하게 반응한다고 평가받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진보정부에선 증시가 살아난다는 통념이 문재인정부에선 사라졌다"며 "대통령이 주식시장에 대한 보고를 자주 받고 코스닥·벤처 부양 정책을 키웠던 김대중정부 시절 이야기를 하는 시장 관계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미국발 신고립주의가 득세하자 각국의 증시 차별화가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김대중정부 당시 외국인에게 증시를 개방하면서 글로벌 증시가 코스피에 미치는 영향이 높아지기 시작했다"면서 "이후 노무현정부 때 중국을 비롯해 전 세계 경제가 좋아지면서 한국 증시도 폭발적으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내건 신고립주의 기조에 따라 글로벌 경제와 증시가 각자도생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며 "최근 중국 경제가 예전과 같은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면서 중국 의존도가 큰 나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국도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정승환 기자 / 홍혜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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