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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자극적 갈등 없이, 성실한 만듦새 [M+Moview]
입력 2019-07-23 13:01 
영화 ‘나랏말싸미’ 포스터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성실한 만듦새 안에 갈등을 무리하게 욱여넣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없다. 철저한 고증에 현대적 해석을 가미한, 성실하게 만들어진 착한 영화 ‘나랏말싸미다.

‘나랏말싸미는 모든 것을 걸고 한글을 만든 세종과 불굴의 신념으로 함께 한 사람들,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 창제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았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 ‘평양성(2010), ‘사도(2014)의 각본을 쓴 조철현 감독의 입봉작으로 배우 송강호와 박해일, 故 전미선은 이 작품을 통해 영화 ‘살인의 추억(2003) 이후 16년 만에 재회했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성군 세종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없이 익숙하다. ‘나랏말싸미는 여기서 몇 발자국 더 들어간다. 세종이 훈민정음 창제에 스님 신미의 도움을 받았다는 가설을 통해 지금의 한글까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다큐멘터리적으로 고증, 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세종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인간적인 세종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새로운 재미를 안긴다.

영화 속 세종(송강호 분)은 여러모로 파격적인 왕이다. 기우제를 지내는 첫 장면부터 심드렁한 얼굴로 등장하더니 우리말로 하라”는 어명을 내린다. 한자로 된 축문을 읽던 신하는 잠시 난감한 기색을 표하더니 세종의 명을 받들고, 이내 마른하늘에서 비가 쏟아진다. 왕의 덕이 부족하다는 내용이 담긴 축문을 우리말로 직역하라는 데서 어진 세종의 모습이 대번 눈에 띈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나랏말싸미라는 영화 자체도 극 중 세종의 모습과 같다. 어쭙잖은 갈등으로 눈가림을 할 생각은 애초에 차치하고 당초 설정한 목표를 향해 저벅저벅 내걷는다. 백성을 생각해 한글을 만들려는 세종이 비밀리에 스님 신미(박해일 분)에게 도움을 청하고, 두 인물의 협력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균열은 극의 긴장보다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는 데 힘을 보탠다. 이들은 뜻이 달라 잠시 서로를 떠난 와중에도 오직 하나의 목표점을 향한다. 누구 하나 억지를 부려 거짓 갈등을 만들지도 않은 점은 ‘나랏말싸미의 우직함이다.

오히려 긴장감을 만드는 쪽은 전미선이 연기한 소헌왕후다.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렸던 역사적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왕후의 생은 순탄치 않았고, 어렵사리 아버지의 넋을 기리고자 신하들 몰래 작은 불당을 모신다. 억불정책을 시행하던 유교국가 조선에서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지만 세종은 이를 눈감는다. 하지만 이는 곧 세종과 신하들 간 갈등으로 번지고 왕후와 세종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이처럼 세종과 신미가 훈민정음 창제를 위해 힘을 합치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인물도, 두 사람이 틀어지자 세종과 떨어져 죽음을 맞는 이도 소헌왕후다. 전미선은 세종을 성군으로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세종 못지않게 어질었던 소헌왕후를 주체적인 인간으로 스크린 가득 펼쳐냈다.

다만 텐트폴 영화가 쏟아지는 여름 극장가에 자극적인 갈등 없이 착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상업영화에서 극의 재미가 떨어지는 건 마이너스 요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꼼수 없이 전진하는 묵직함과 송강호, 박해일, 전미선의 연기 앙상블은 그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오는 24일 개봉.

MBN스타 대중문화부 김노을 기자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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