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고 사용자에게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예방·대응 체계를 갖추도록 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지난 1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성희롱 등 성적 수치심을 주는 행위도 포함된다.
직장인 유새빛(예명) 씨는 본인이 직장에서 실제로 겪었던 성희롱과 신고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구성된 책을 쓰고 있다. 다음달 출간 예정인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100일간의 기록을 담은 책 '꽃이 아니라 신입사원입니다'는 성희롱 사태를 극복한 과정을 전함으로써 올바르고 건강한 회사 문화 정착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이 목표다. 그는 책을 통해 '괴롭힘 금지법 시행도 좋지만, 피해자 주변인의 공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피해자의 생생한 아픔이 담긴 이야기를 펼쳐낸 유 씨와 지난 18일 오전 메일 인터뷰를 진행해 책의 자세한 이야기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신고 진행했지만…"을이 참아라"
"이런 거로 미투 하지 마"
불과 입사 11개월 차였던 유 씨가 회식 자리에서 들은 말이었다. 그는 11개월간 총 세 번의 성희롱을 겪었다. 같은 팀 차장이 허벅지를 만지거나 무릎에 손을 올리는 일은 예사였다.
신고는 세 번째 성추행 때 이뤄졌다. 새롭게 배치된 조직에서의 회식 당시, "너는 우리 조직의 꽃이다", "이런 말 했다고 미투하지 말라"고 말했던 옆 팀 차장이 옆자리에 앉아 허리와 팔 안쪽을 만지고, 어깨동무를 했다고. 이는 심지어 사내 성희롱 예방교육 기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유 씨는 "누군가는 '이게 신고까지 할 만한 일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큰 스트레스였다"고 회상했다.
유 씨는 스스로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불쾌함에 신고를 감행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직책자에게 상황을 알리고 심의위원회가 열리기까지 주변 사람에게 "그 정도 스킨십은 할 수 있다", "소문이 나도 괜찮나" 등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직장 내에서 을이 갑에게 괴롭힘을 당했을 때는 참아야 한다는 인식이 만연함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유 씨는 가해자를 감싸는 주변인의 말들이 2차 가해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 "주변인 태도가 바뀌어야"
유 씨는 "조직 문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해 신고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내'가 참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행위인·참고인 조사를 진행했고, 곧 회사 내에서 심의위원회가 열렸다고. 가해자는 성희롱 사실이 인정돼 정직 1개월에 인사이동이라는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유 씨도 부서를 이동하게 됐다. 가해자가 속한 부서에 피해를 주었다는 죄책감과 함께,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유 씨는 책에서 피해 사실을 알고 있는 직장 동료, 즉 주변인의 반응을 지속적으로 다룬다. 책 속에는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이도, 근거없는 비난을 하는 이도 있다. 유 씨는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인의 역할이라 믿고 있다. 개정법이 시행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조직 구성원이 납득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유 씨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가 아닌 주변인일 것"이라며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따뜻한 지지를 보내는 주변인이 있어야 직장 내 괴롭힘이 공론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예방 교육 중요"
유 씨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관련 법이 시행되는 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성희롱 피해를 입었을 경우 회사 내 신고 절차가 원활히 진행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현재 남녀고용평등법에 성폭력, 성희롱 등 성적 괴롭힘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있지만, 이번에 시행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도 이를 명시해둠으로써 회사 내에 성희롱 사건이 신고된 경우 조사를 거쳐 행위자에 대한 조치를 취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법 시행에 앞서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 교육이 성희롱 예방교육처럼 의무교육으로 지정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것.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성희롱 예방 교육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그 심각성을 인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 씨는 "실제 직장 내에서 벌어졌던 사례들을 데이터화해 공유하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직장 내 괴롭힘 방지교육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황이다.
유 씨는 현재 새로운 부서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노동법을 공부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법률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다"라며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더 없었으면 한다"며 인터뷰를 맺었다.
[디지털뉴스국 최서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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