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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정의 직구리뷰]‘나랏말싸미’ 아름다운 역사가 전하는 위대한 여운
입력 2019-07-16 07:30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복숭아 속 씨앗이 하나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그 씨앗 속에 몇 개의 복숭아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랏말싸미 대사 중”
마찬가지다. 세종이 위대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의 위대함에 감춰진 노력과 진심 그리고 고통은 아무도 모른다. 위대한 역사, 그것을 가능케 한 더 위대한 세종의 숨은 이야기, 바로 ‘나랏말싸미다.
영화는 문자와 지식을 권력으로 독점했던 시대, 모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을 담는다. 가장 고귀한 임금 ‘세종과 가장 천한 신분의 스님 ‘신미가 만나 백성을 위해 뜻을 모은다. 이들의 불굴의 신념으로 탄생한, 그럼에도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 한글 창제의 숨은 이야기가 비로소 관객들을 찾아간다.
억불정책을 가장 왕성하게 펼쳤던 임금인 세종이 죽기 전 유언으로 신미 스님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 : 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분이라는 법호를 내렸다는 기록 그리고 김만중의 ‘서포만필에 있는 훈민정음과 불경을 기록한 문자인 범어(산스크리트어)와의 관계 등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감독은 이 같은 관계에 주목해 개인의 업적이 아닌 ‘모두의 성취였던 한글의 창제기를 온 진심을 담아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 속에는 지식을 독점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권력 또한 독점하고자 했던 유신들에 맞서 ‘모든 백성이 문자를 읽고 쓰는 나라를 꿈꾼 세종의 이상이 어떻게 현실로 구현됐는지, 임금과 스님의 긴장감 넘치는 협업 그리고 충돌의 과정, 이들의 중심에 있었던 비운의 소헌왕후 그리고 대군들의 관계가 그려진다.
이 드라마틱한 상황 속에서 감독은 과감히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세종의)위대한 임금으로서의 면모가 아닌 그 위대함이 있기까지의 고뇌와 상처, 그리고 실패에 주목한다. 황제의 나라인 중국에 대한 사대와 공맹의 진리를 빌미 삼아 왕권 강화를 견제하는 유신들의 압박에 시달리고 평생을 괴롭힌 질병에 고통 받는, 사랑하는 아내의 상처조차 걷어줄 수 없는 무기력한 남편, 한 인간으로서의 세종에 집중한다. 위인전 특유의 웅장함이나 작위적 장치와 변곡점, 진부한 각종 설정을 배제시킨 채 극도의 담백함으로 승부한다.
그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간 세종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주는 울림과 여운은 충분하다. 소리 글자인 한글의 탄생을 쉽고 흥미있게 풀어내는 한편 신미와 세종, 그리고 소헌왕후로 이어지는 인물 간 밀도 높은 감정선과 대사 역시 시종일관 가슴을 때린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툭툭 터져 나오는 소소한 웃음 코드들은 또 어떻고. 해인사 장경판전부터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까지. 위대한 역사가 깃들어 있는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는 탁월한 경험까지 선사한다.
그리고 역시나 정점은 더 이상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배우 송강호, 이에 전혀 뒤짐이 없는 존재감을 내뿜는 박해일,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그저 안타까운 고 전미선, 그 외 조연들까지 구멍을 찾을 수 없는 명품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특히나 ‘기생충으로 세계를 홀린 송강호는 이번에도 스스로를 뛰어 넘은 깊은 내공으로 대왕 세종의 이면을, 인간 세종을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욕심 부림 없이 오롯이 진심만을 담은 영화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지, 화려한 겉치레가 아닌 굵직한 알맹이 하나만으로 얼마나 큰 울림을 선사하는지를 증명한다. 누구에게든 선물하고 싶은, 성찰과 여운으로 가슴을 적시는 영화다. 오는 24일 개봉.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110분.

kiki2022@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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