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이고 우아하지만 심지가 강한 여성', '완벽한 밸런스로 우아하게 서 있는 다비드상'
남다른 표현력과 흥미로운 전개로 만화 '신의 물방울'은 2000년대 한국에 와인 붐을 일으켰다. '와인에서 그런 맛이 나냐'는 의심을 지닌 사람도, '정말 그런 맛이 날까'하는 궁금증을 지닌 독자들도 만화에 등장한 와인을 찾기 시작했다. 와인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와인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아기 타다시'라는 필명으로 신의 물방울을 집필한 가바야시 유코(61), 가바야시 신(57) 남매는 2011년 프랑스 와인을 전세계에 알린 공적을 인정받아 프랑스농사공로상을, 2018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남매가 10여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지난 29일 인천시 중구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한국 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44권의 본 시리즈와 10여권의 최종장에도 불구하고 만화 속 주인공들은 아직 궁극의 와인으로 불리는 '신의 물방울'을 찾지 못했다. 시리즈의 마무리를 위해 보르도 출장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남매는 1시간 반 동안 이어진 콘서트에서 '와인덕후'의 면모를 뽐냈다.
콘서트는 남매가 만화를 집필하는 현장에 잠깐 초대된 듯한 인상을 줬다.
지난달 29일 인천시 중구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신의 물방울`을 집필한 남매 작가 중 남동생인 가바야시 신(57)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제공=파라다이스시티 호텔>
'도멘 데 람브레이 클로 데 람브레이' 2001년산을 소개하면서 누나 유코는 "주말 농장에서 딸기를 따는 듯한 상큼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동생 유코는 "와인이 생산된 직후에는 낮은 등급을 받았으나 이후 이례적으로 그랑프리 등급으로 올라간 와인"이라며 "이성에게 선물하면 '격상의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남매는 이런 식으로 와인에 대한 서로의 인상을 나누다 신의 물방울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만화를 쓰기 전부터 오랜 와인 애호가였다는 둘은 '소년탐정 김전일', '탐정학원Q', '반항하지마' 등 만화를 집필하면서부터 거의 매일 밤 와인을 마시며 함께 일과를 마무리했다. 어느 날부터 남매는 '이 와인은 여성적인 느낌이 든다'와 같은 코멘트를 남기기 시작했고 이를 이미지화 하면서 신의 물방울이 탄생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와인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도 와인이 등장한다. 이런 점에 착안해 주인공들이 '12사도' 와인을 찾으며 경쟁을 펼친다는 콘셉트가 등장했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을 잡는 데는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12사도에 해당하는 와인 12종은 마셨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세계관이 비교적 뚜렷한 것들로 선정했다.
이들은 연간 와인을 1000병 이상 시음한다. 콘서트 중에도 남매는 끊임없이 와인을 홀짝였다.
유코는 "와인을 하루에 80종까지 먹어 혓바닥이 상한 적도 있다"며 "한국에서 3~4일 머물면서 매일 10병 이상 테이스팅을 했다"고 말했다.
남매는 독자들의 와인 평이 본인들의 것과 맞아떨어질 때 큰 기쁨을 느낀다. 남매는 "만화를 연재하면서 첫 번째 사도가 등장하기 전 한 독자가 편지로 와인을 맞췄을 때가 있었다"며 "이럴 때마다 우리가 느낀 와인 속 세계를 공유하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이 주는 기쁨을 누구보다 많이 누리고 있어서일까. 신은 한국에도 종량세가 도입돼 소비자들이 더 많은 와인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국세청은 맥주와 탁주에 대해서는 가격에 세금을 붙이는 '종가세' 대신 양에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와인이나 위스키까지 종량세가 도입될 지는 미지수다. 신은"일본에서는 저렴한 와인들이 한국에서는 세금 때문에 비싸진다"며 "종량세 등 제도가 개혁되면 와인 붐이 일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에 남매는 "한국의 전은 일본의 오코노미야키와 비슷해 어떤 와인과도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가장 페어링하기 어려운 음식으로는 김치를 꼽았다. 신은 이탈리아 산 와인이 김치와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도 고추나 마늘을 사용한 요리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가리오보와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을 섞은 '그라벨로'라는 와인이 잘 어울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주에서 나는 포도 품종인데, 포도밭이 바로 고추밭 옆에 있었다"며 "그런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라벨로는 신의 물방울에서 소개된 적 있는 와인으로, 2000년대 후반 백화점에서 명절 선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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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인천시 중구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신의 물방울`을 집필한 남매 작가 중 남동생인 가바야시 신(57)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사진제공=파라다이스시티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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