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 음대를 휴학하고 있는 조하는 학교생활을 하며 많은 면에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조하를 성장하게 해준 버클리 음대와 유학 시절은 그에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가라고 하면 못갈 것 같아요.(웃음) 어떻게 겁도 없이 미국을 혼자 갈 생각을 했나 싶어요. 제 26년 평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즐거웠던 순간도 힘들었던 순간도 거기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 그늘 없이 혼자 하려니 모든 게 어려웠지만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배웠고 음악도 성장한 것 같아요.”
당차게 떠났던 유학이지만 타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을 터다. 음악을 배우고 싶었고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지만 조하에게 버클리 음대 생활이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언어의 장벽과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고3 올라가면서 버클리 입시를 준비하고 합격하고 나서 그 외에 서류작업을 하고 갔다. 2년 정도 시간이 있었어도 영어적인 부분에서 준비는 잘하고 갔던 것 같다. 장학금을 받고 갔는데 학비는 부모님이 해주셨지만 생활비 해결을 위해 알바를 3개씩 했었어요. 일을 하다보니 내가 미국에 음악 공부를 하러 왔는데 먹고 살기 급급해서 학업에 소홀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어가 그렇게 잘된 상태로 간 것도 아니라 부딪치면서 배웠어요.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과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었죠.”
재즈를 좋아해 재즈 피아노 전공을 선택했지만 버클리 음대에는 많은 천재들이 있었다. 조하는 어렵게 도전했지만 고민 끝에 작곡 전공으로 바꾸는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작곡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조하는 지금 저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었던 순간”이라며 긍정 에너지를 잃지 않고 있다.
제가 너무 재즈를 좋아했는데 곡을 만들 때 재즈 느낌을 조금만 넣었다고 생각해도 ‘너는 너무 재즈를 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나만의 색깔로 표현해야겠다 생각했고 그런 부분을 고민하고 있어요. 피아노를 치다가 작곡으로 전공을 바꾼 게 저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노래를 부르는 건 어릴 때부터 인디 음악을 좋아해서 많이 불렀어요. 그래서 멜로디는 대중적인 멜로디로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간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가 예전에 유희열 님의 단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그때 제 노래를 담아서 전해드린 적이 있어요. 그 때는 회사가 없을 때였는데 기대를 많이 품고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연락을 안주시더라고요.(웃음) 만나게 되면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는 꼭 나가고 싶어요.
가수로서의 길에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었다. 조하는 아티스트로 ‘내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구나에 뚜렷한 확신을 갖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앞으로 많은 이들에게 들려줄 음악은 듣는 이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며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이 될 것이다.
저의 음악에 대한 키워드를 생각한 게 위로와 공감이었어요. 음악이라는 게 대화라고 생각거든요. 제가 먼저 말을 던지고 들은 사람들이 댓글 같은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진짜 지치는 날 위로가 필요한데 혼자 삭힐 때 가장 가까이 있는 위로가 음악이라고 느끼거든요. 언제나 내 옆에 있고 정말 사람의 마음과 가까운 게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든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위로가 제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MBN스타 대중문화부 오서린 기자 dgill152@mkculture.com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가라고 하면 못갈 것 같아요.(웃음) 어떻게 겁도 없이 미국을 혼자 갈 생각을 했나 싶어요. 제 26년 평생을 돌아봤을 때 가장 즐거웠던 순간도 힘들었던 순간도 거기 있는 것 같아요. 부모님 그늘 없이 혼자 하려니 모든 게 어려웠지만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배웠고 음악도 성장한 것 같아요.”
당차게 떠났던 유학이지만 타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을 터다. 음악을 배우고 싶었고 꿈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길이지만 조하에게 버클리 음대 생활이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언어의 장벽과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고3 올라가면서 버클리 입시를 준비하고 합격하고 나서 그 외에 서류작업을 하고 갔다. 2년 정도 시간이 있었어도 영어적인 부분에서 준비는 잘하고 갔던 것 같다. 장학금을 받고 갔는데 학비는 부모님이 해주셨지만 생활비 해결을 위해 알바를 3개씩 했었어요. 일을 하다보니 내가 미국에 음악 공부를 하러 왔는데 먹고 살기 급급해서 학업에 소홀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어가 그렇게 잘된 상태로 간 것도 아니라 부딪치면서 배웠어요.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과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었죠.”
재즈를 좋아해 재즈 피아노 전공을 선택했지만 버클리 음대에는 많은 천재들이 있었다. 조하는 어렵게 도전했지만 고민 끝에 작곡 전공으로 바꾸는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작곡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조하는 지금 저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었던 순간”이라며 긍정 에너지를 잃지 않고 있다.
제가 너무 재즈를 좋아했는데 곡을 만들 때 재즈 느낌을 조금만 넣었다고 생각해도 ‘너는 너무 재즈를 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나만의 색깔로 표현해야겠다 생각했고 그런 부분을 고민하고 있어요. 피아노를 치다가 작곡으로 전공을 바꾼 게 저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노래를 부르는 건 어릴 때부터 인디 음악을 좋아해서 많이 불렀어요. 그래서 멜로디는 대중적인 멜로디로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싱어송라이터 조하가 데뷔 후 MBN스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어베인뮤직
데뷔 전부터 넘치는 에너지와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있던 조하는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기 전 아티스트이자 안테나의 대표 유희열을 만났었다. USB에 직접 만든 음악을 담아 전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해 웃음을 자아낸 그는 꼭 나가고 싶은 방송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꼽았다.”언젠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간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가 예전에 유희열 님의 단골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그때 제 노래를 담아서 전해드린 적이 있어요. 그 때는 회사가 없을 때였는데 기대를 많이 품고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연락을 안주시더라고요.(웃음) 만나게 되면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는 꼭 나가고 싶어요.
가수로서의 길에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었다. 조하는 아티스트로 ‘내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구나에 뚜렷한 확신을 갖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앞으로 많은 이들에게 들려줄 음악은 듣는 이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며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이 될 것이다.
저의 음악에 대한 키워드를 생각한 게 위로와 공감이었어요. 음악이라는 게 대화라고 생각거든요. 제가 먼저 말을 던지고 들은 사람들이 댓글 같은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진짜 지치는 날 위로가 필요한데 혼자 삭힐 때 가장 가까이 있는 위로가 음악이라고 느끼거든요. 언제나 내 옆에 있고 정말 사람의 마음과 가까운 게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언제든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는 위로가 제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MBN스타 대중문화부 오서린 기자 dgill152@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