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재활로봇 올림픽 `사이배슬론` 1년 앞으로…韓연구진 금메달 도전장
입력 2019-06-24 13:39 
지난 20일 대전 유성구 KAIST 본원 내 훈련시설에서 하체 완전마비 환자인 김병욱 씨가 보행용 전동 엑소스켈리턴(웨어러블 로봇) `워크 온`을 입고 경사면을 오르고 있다. [대전 = 송경은 기자]

지난 20일 대전 유성구 KAIST 본원 기계공학동 내 가설 훈련장. 보행 보조용 웨어러블 로봇 '워크온'을 입은 김병욱 씨(43)가 있는 힘껏 "화이팅!"을 외친 뒤 경사로를 성큼성큼 올라갔다. 1998년 뺑소니 교통사고로 하지 완전마비 판정을 받은 김 씨의 근력을 대신해 로봇이 그의 다리를 움직였다. 그는 20년 가까이 휠체어 생활을 하다 이 로봇을 입고 다시 걷게 됐다.
세계 각국의 장애인 재활로봇 기술을 겨루는 국제 대회인 '사이배슬론(Cybathlon) 2020'이 1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대회에 참가하는 한국 연구진들도 분주해졌다. 내년 5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개최되는 제2회 사이배슬론은 그동안의 기술 진보만큼 경기 규칙도 까다로워져 4년 전 첫 대회보다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이배슬론은 인조인간을 뜻하는 '사이보그(cyborg)'와 경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애슬론(athlon)'의 합성어로 '사이보그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스위스와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전 세계 25개국 70여 개팀이 참여한다. 스위스 국립로봇역량연구센터 주최로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대회는 장애인 선수가 로봇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6종목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 완전마비 환자가 로봇을 입고 두 다리로 걸으며 각종 장애물을 통과하는 전동 엑소스켈레톤(웨어러블 로봇) 경주, 하지 부분마비 환자의 근육에 전기 자극을 줘 자전거를 움직이는 기능성전기자극(FES) 자전거 경주, 뇌파로 컴퓨터를 조종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경주 등이다.
내년 대회에 참가하는 한국팀은 총 2개 팀. 워크온을 개발해 지난 2016년 김 씨와 함께 첫 대회 전동 엑소스켈레톤 경주에서 동메달을 딴 공경철 KAIST 기계공학과 교수(엔젤로보틱스 대표) 연구진은 이번엔 금메달을 목표로 같은 종목에 참가한다. 엔젤로보틱스는 2017년 공 교수가 워크온을 비롯한 웨어러블 장애인 재활로봇을 상용화하기 위해 창업한 회사다. 세브란스 재활병원, 영남대, 재활공학연구소, 산재연구소 등이 참여한다.

이번에 처음 사이배슬론에 도전장을 내민 신동준 중앙대 기계공학부 교수 연구진은 서울과학기술대,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FES 자전거 경주에 참가할 예정이다. 신 교수는 "현재 후보 선수를 모집해 훈련과 기술 개선을 병행하고 있다"며 "FES 자전거를 구동하는 소프트웨어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 교수 연구진도 24일 KAIST 본원에서 '사이배슬론 2020 출정식'을 갖고 "내년 대회에는 성능을 대폭 개선한 '워크온 4.0'으로 참가할 계획"이라며 "현재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후보 선수 7명을 대상으로 훈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 중 실제 대회에 참가할 선수 1명과 보궐 선수 1명을 오는 11월 최종 선발할 예정"고 밝혔다. 후보 선수는 김 씨와 정우진(52), 조영석(52), 이종률(48), 김상헌(36), 김승환(32), 이주현(18) 씨 등이다. 공 교수는 "궁극적인 목적이 재활로봇 보급에 있는 만큼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공 교수팀은 세브란스 재활병원 등과 함께 선수들의 관절을 X선으로 촬영해 몸에 꼭 맞는 워크온을 개발했다. 제자리에서 앉았다 일어서거나 경사로를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등 10여 개 동작을 할 수 있다. 특히 새롭게 개발된 워크온 4.0은 기존 워크온보다 기능은 향상되고 무게는 약 25㎏으로 5㎏가량 줄었다. 워크온은 고관절과 슬관절만 자동으로 제어했지만, 워크온 4.0은 발목 관절의 움직임과 각도까지 보행 상황에 맞게 자동으로 제어한다. 또 특수 목발(클러치)을 짚지 않고 양손이 자유로운 상태로 기립해 있을 수 있는 새로운 동작 모드도 추가됐다.
착용자는 가슴팍에 놓인 모니터를 보며 클러치 손잡이의 버튼을 조작해 동작 모드를 선택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공 교수는 "몸의 기울기 등을 측정하는 센서가 1초에 100번씩 착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인공지능(AI)이 그에 맞는 동작 모드를 자동으로 추천해 준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처음 로봇을 입고 걷게 됐을 때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고 하지 완전마비 환자들도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겼다"며 "하루 빨리 많은 이들이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웨어러블 로봇 스타트업 엔젤로보틱스가 개발한 하지 부분마비 환자용 웨어러블 로봇인 `엔젤 수트`를 입은 박채이 양(11)이 보행하고 있는 모습. 지난 3월 공개된 엔젤 수트는 현재 판매 허가 인증을 받고 국내 5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사진 제공 = 엔젤로보틱스]
엔젤로보틱스는 워크온을 비롯한 여러 웨어러블 재활로봇에 대한 상용화 연구도 추진 중이다. 지난 3월에는 미국 스코츠데일에서 열린 국제 웨어러블 로봇 콘퍼런스 '웨어라콘(WearRAcon) 19'에 참가해 하지 부분마비 환자용 웨어러블 로봇 '엔젤수트'를 공개했다. 상용 모델로 개발된 엔젤 수트는 무게가 7㎏ 정도로 가볍고 소아부터 성인까지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 가능하다. 공 교수는 "현재 판매 허가 인증을 받고 국내 5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베타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며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웨어러블 로봇 같은 수천만원대의 재활로봇이 실제 장애인에게 보급되려면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에는 아직까지 재활로봇에 대한 규정이 반영돼 있지 않아 건강보험을 통해 보조금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존 의지·보조기에 대한 보조금도 최대 200만원으로 2005년 한 차례 인상된 이후 14년째 동결된 상태다.
[대전 =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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