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여름철 누진제 완화 개편안과 관련, 한국전력공사의 한 사이외사는 "정부가 한전의 손실 보전을 확실히 함으로써 이사들의 배임 가능성을 낮춰야 의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2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이 사외이사는지난 21일 한전 이사회가 예상 밖으로 정부의 누진제 개편안을 전기요금 약관에 반영하는 것을 전격 보류한 것에 대해 "공은 이제 정부에 넘어갔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전은 앞서 대형 로펌 2곳에 누진제 개편안을 수용하면 일부 소액주주들의 주장처럼 배임에 해당하는지를 자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임 부분은 한전이 올 1분기 6000억원 넘는 사상 최대 분기별 적자를 냈는데도 누진제 완화에 따른 부담을 연간 최대 3000억원가량 떠안는 것과 관련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로펌이 배임으로 결론 낸 것으로 알려졌다'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이 사외이사는 이에 대해 "지난 이사회 내용에 대한 비밀준수 의무 때문에 확인해줄 수 없다"면서도 "다만 그런 해석이 있다면 굳이 부정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배임 여부 자체가 아니라 배임 가능성이 높거나 낮다는 점"이라며 "배임 가능성이 높다면 당연히 낮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누진제 완화로 인한 한전의 적자 부담이 훤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전기요금은 일종의 소비재이기 때문에 유가 변동 등 연료비가 원가에 반영돼야 하며, 이용자 부담원칙에 따라 구입하는 만큼 돈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또 무더위에도 에어컨 냉방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 계층은 따로 복지정책을 통해 도와야지 한전에 그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론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 사외이사는 "무엇보다 정부는 최근 확정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2040년까지 에너지 수요를 18.6% 줄인다고 했는데 누진제 완화는 도리어 수요를 촉진하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전기 수요를 점차 줄여간다고 하는데 누진제 개편이 비록 여름철만 해당하는 것이지만 전기 소비를 늘리는 부작용을 가져와 결과적으로 정부 정책과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는 누진제를 완화한다고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정부 정책에 따라 누진제가 폐지될 수도 있다"며 "이래선 한전 입장에서 장기적 사업 전망을 세우기 어렵고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에 이사회 의결을 보류한 것도 좀 더 시간을 갖고 데이터에 기반해 전반적 논의를 하기 위한 것"이라며 가능한 한 이사회를 빨리 열어야겠지만 정부와 한전의 설득력 있는 대안 제시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디지털뉴스국]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