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한전엔 눈감고 민간기업엔 도끼눈…국민연금 `갈지자 행보`
입력 2019-06-19 17:36  | 수정 2019-06-19 20:00
한국전력이 지난 18일 최대 2900억원 손실이 예상되는 여름철 누진제 완화안을 발표했지만 주요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아 민간기업과 공기업의 주주권 행사에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똑같이 주주가치가 훼손되고 주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성이 있는 기업이라는 이유로 주주권 행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국민연금 측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한전의 한시적 누진제 완화안에 대해서는 주주서한 발송 등의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한전 지분 7.19%를 보유하고 있다. 지분 51.4%를 들고 있는 정부에 이어 2대 주주임에도 한전의 적자를 확대시킬 수 있는 누진제 완화에 대해선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이다.
지난달 1일 국민연금은 한국가스공사가 천연가스 공급비용 조정을 생략하면서 사실상 원료비 인상분을 가스요금에 반영시키는 정책을 포기하는 와중에도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 당시 손실에 대한 우려로 주가가 하루 만에 7% 하락했지만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아무런 주주권 행사에 나서지 않았다.
기업의 영업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가격 정책에 대해 어떠한 의견도 개진하지 않는 것은 국민연금이 그간 강조해온 스튜어드십 코드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2011년 전기요금 현실화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소액주주들이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해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이 사표를 던진 사례처럼 전기요금 현실화는 한전의 주주로서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이미 올 초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기금 국내 주식 수탁자 책임 활동 가이드라인'을 통해 투자 대상 기업과 관련해 주주가치 제고 및 기금의 장기 수익성 제고에 따라 수탁자 책임 활동을 개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대한항공에 오너일가의 갑질 의혹 보도와 관련한 비공개 면담을 요청하기도 하고 남양유업과 현대그린푸드는 저배당을 이유로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인 한전과 가스공사의 정부 시책에 따른 요금 정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주권 행사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한전의 주가는 지난해 고유가 상황에서도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지지 않으며 계속 하향 추세다. 한전 주가는 1년 전 3만3000원에 비해 23% 하락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도 4000억원 평가손을 기록했다. 한전은 지난해 1조1745억원 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5000억원 순손실이 예상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관계자는 "대한항공에 주주서한을 보낸 것과 한전의 누진세 완화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다른 사안"이라며 "대한항공의 유류할증료 정책에 간섭하지 않는 것처럼 국민연금이 공공성이 있는 기업의 요금 정책에 간섭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나 항공사가 유류할증료를 통해 유가 상승분을 요금에 전가해 이익을 보전하는 것처럼 한전이나 가스공사도 유가가 오르면 요금을 올려야 적자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인데 최대주주인 정부의 요금 억제 정책으로 영업이익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국민의 생활비 부담을 덜기 위해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것은 좋은 일이나 이것은 한전 주주들의 부담이 아닌 정부 부담으로 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이 주주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는 요금 인하 같은 사안에 대해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주식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만 강화해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이 지분 7.57%를 가진 가스공사도 공급비 조정 지연에 따른 주가 폭락으로 주가는 1년 새 6만3000원에서 최근엔 4만2000원으로 3분의 1이 빠졌다. 1년간 국민연금이 본 평가손만 해도 1500억여 원에 달한다.
[김제림 기자 / 정슬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