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게리 흄(57)이 잎사귀를 하나 들었다.
"이걸 간단하게 잎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다. 잎사귀에 대해 명상을 하면서 나라는 주체가 없어지고 진짜 잎이 뭔지 볼 수 있다. 그림 표면 뿐만 아니라 대상이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길 바란다."
그의 명상 결과물은 잎맥만 남긴 그린 '뜨거운 집(Hot house)'. 서울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열린 국내 첫 개인전에 걸린 이 작품의 형상은 얼핏 방패 같기도 하다.
그는 "잎몸을 떼어내면 뭐가 있을까, 지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면서 장난을 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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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번 개인전 주제가 '바라보기와 보기(Looking And Seeing)'. 그저 눈으로 보는 바라보기(Looking)와 대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보기(Seeing)의 차이를 강조했다.이번 전시에 고정관념을 깨고 대상을 새롭게 이해한 작품 16점을 전시했다. 높이 5.94m에 달하는 2010년작 '큰 새'는 그가 우주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그렸다고 한다. 새 윤곽과 눈, 부리 일부만 강조한 그림이다. 작가는 "이 새는 나를 이 세상과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존재다. 북극 무인도에 여행갔다가 새들이 무리 지어 사는 모습에 완전히 압도당해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 인간세계가 아닌 이런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그에게 그림은 새로운 여정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된다.
게리 흄 `Big Bird`. [사진 제공 = 바라캇컨템포러리]
전시작 '소파 위의 어머니'(2017)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담았다고. 그의 설명이 없었다면 사람이라고 짐작하기 어려운 형상이다.작가는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어머니를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고 슬펐다. 어머니와 이별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말했다.
기다란 새싹 3개가 그려진 신작 '무제'(2019) 역시 작가의 설명을 들어야 의미를 알 수 있다. 봄날 텃밭에서 올라오는 새싹을 보고 자연의 힘을 느꼈고, 같은 날 런던 템스강 위 폭발적인 불꽃놀이를 표현한 그림에 영감을 얻었다고. 그는 "강인함과 지나가는 것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작품이다"고 말했다.
전시장을 돌면서 그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미술관에 끌려와 그림을 보다 지친 아이를 유머러스하게 그린 회화, 미국 문화를 상징하는 치어리더 다리만 형상화한 조각, 2011년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 사망 뉴스로 축제 분위기가 된 미국을 그린 작품 등을 지나갔다.
게리 흄 `뜨거운 집(Hot House)` [사진 제공 = 바라캇컨템포러리]
미국 모하비 사막 고속도로 간이 화장실에서 총알이 통과한 구멍 3개가 남아 있는 문을 3개 원으로 표현한 그림 앞에서 작가는 "미키마우스(밝고 명랑한 애니매이션 캐릭터) 문화 안에 이런 부조리가 있는게 놀라워 그렸다"고 했다.그의 모든 작품은 조명에 반짝거린다. 알루미늄 판넬에 유광 페인트로 그려서다. 빛이 반사되고, 아름답게 흘러내려서 유광 페인트로 그림을 그린다고.
"유광 페인트가 화산 용암처럼 흘러내려서 그림 그리는 자체가 지각변동을 연상시킨다. 산업화 시대 유광 페인트로 자연을 그리는 것도 매력적이다. 자연과 산업이 지각변동을 통해 그림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날 동석한 앤드류 렌턴 골드스미스대 학과장은 "산업용 유광 페인트를 사용하면 (물감으로 이어진) 회화 역사와 끈을 끓을 수 있다"고 평했다.
게리 흄은 "내 그림이 미술사 어느 시점에 위치하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림 퀄리티만 고민해 자유롭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의 그림은 관람객을 비춰 거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는 "어느새 그림 안에 들어가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게리 흄은 1980년대 후반 런던 골드스미스에서 수학한 yBa( 브리티시 아티스트) 구성원 중에서도 중요한 예술가로 손꼽힌다.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 대표작가이자 명품 브랜드 스텔라 메카트니, 마르니 등과 협업한 인기 화가다. 전시는 8월 4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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