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영화관 나들이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총리 취임 이후 공식 행보로 영화관을 찾은 것만 8번째다.
이 총리는 17일 저녁에는 서울 용산에 위치한 한 영화관을 찾았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화제작 '기생충'을 보기 위해서였다. '작품을 영화적으로 보고 싶다'는 뜻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학 전공 학생들과 교수진, 신인 영화감독과 배우들도 이 자리에 초청받았다.
이 총리는 실제로도 총리가 되고 나서 영화를 더 자주 보게 됐다고 말한다. 총리가 취임 이후 공개 석상에서 관람한 영화는 택시운전사, 1987, 아일라, 말모이, 항거, 생일, 노무현과 바보들이다. 대부분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이다. 그는 "영화를 고를 때 무엇을 다뤘는가를 중심으로 선택하기 때문에 영화 자체를 보겠다고 한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처음 봤다는 이 총리는 "상영시간이 2시간 10분인데 한눈 팔지 않고 봤다. 지독할 정도로 집요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관객을 내 손 안에 쥐고 한 번도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은 주제가 뭐냐 이전에 그 작가의 역량"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총리는 "봉 감독이 장르다는 말이 성립 가능할 것 같다"고도 했다.
영화 상영 이후 영화감독 지망생들과 마련된 간담회 [사진 제공 = 총리실]
이 총리는 관람 직후 가진 간담회에서 "굉장히 오랜만에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이제까지는 역사를 본 것 같았는데 영화를 본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현했다. 그는 "우발성이라는 게 계속 있다. 장면마다 논쟁을 유발하는데 성공했다"고 평했다.이어 "계급 문제를 다룬 것은 사실이지만 영화적 완성도가 계급 문제를 압도하고 있는 걸로 봤다"면서 "영화적 몰입도를 중요시 한 게 아닌가. 그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생명력이 굉장히 길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한 대학생은 "기정이(최우식 분)와 가까운 사람들이 아니라, 연교(조여정 분) 가족과 가까운 저희가 이 영화에 대해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하는 거에 대한 아이러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그에 대해 이 총리는 "봉 감독은 빈부 문제 하면 흔히 연상하는 그런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분 욕심은 영화 자체였지, 빈부 문제에 대한 고발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이러니였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누가 선이고 악이냐는 얘기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총리의 이 같은 '영화 정치' 행보는 대중과 미디어를 매개로 소통해온 기자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날도 이 총리는 영화의 긴장감을 언급하며 "21년 기자를 했다. 피처스토리식 기사를 쓰다보면 시작과 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전개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대형 시리즈를 맡아서 혼자 쓴 적도 있다. 그럼 매번 끝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길 것인가 고민했다"고 말했다.
[정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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