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이자 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경영 일선에 복귀하고, 언니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내년 초 열릴 한진칼 주주총회가 더욱 주목받게 됐다. 사내이사 임기 만료를 앞둔 조원태 회장의 재선임 안이 내년 주총 안건으로 오를 예정인 만큼 경영권을 두고 주요 주주와의 지분 싸움이 더욱 치열하게 됐다.
1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조 전무는 한진칼 전무 겸 정석기업 부사장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물컵 갑질'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대한항공 전무에서 물러난지 14개월 만이다. 한진칼은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이며, 정석기업은 한진그룹의 부동산과 건물을 관리하는 회사다. 조 전무는 앞으로 한진그룹에서 사회공헌활동과 신사업 개발 등을 담당한다. 그동안 수사를 받아온 각종 혐의에서 검찰로부터 무혐의와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은 만큼 회사에 복귀하는데 법적 문제가 전혀 없단 게 한진그룹 측의 설명이다.
조 전 부사장 역시 전일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집행유예로 구속을 면했다. 대한항공 국적기를 이용해 해외에서 명품가방 등을 밀수한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부사장에게 법원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480만원을 선고하고, 6300여만원 추징을 명령했다. 80시간의 사회봉사도 부과했다.
이에 따라 재계는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 시계가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필리핀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와 관련한 법원 선고가 남았지만, 당초 검찰이 벌금형을 구형한 만큼 재판 결과가 복직에 걸림돌이 되진 않을 거란 판단에서다. 대한항공을 포함한 한진그룹 계열사는 임원 자격에 위법 행위를 문제 삼는 규정이 없어 전과가 있더라도 구속 상태만 아니면 임원직 수행이 가능하다. 지난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회사·자회사와 관련해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이사는 이사직을 즉시 상실한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제안했지만 부결됐다.
대한항공 본사 [사진 제공 = 대한항공]
한진그룹이 이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경영권 때문이다. 한진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다수 보유해야 하는데, 故 조양호 회장의 사망으로 지분이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삼남매로 나눠지게 됐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로선 똘뚤 뭉쳐 경영권을 사수해야 하지만, 여동생들은 지분만 있을 뿐 회사에서 직함을 갖고 있지 않아 우호지분 확보 전략으로 조 전무부터 한진칼 임원에 선임했을 가능성이 높단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특히, 일명 강성부펀드로 불리는 KCGI가 대한항공 정상화를 내세워 빠르게 한진칼 지분을 늘리는 점이 한진그룹 총수 일가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KCGI의 한진칼 지분율은 최근 약 16%까지 높아졌다. 여의도 증권가에선 내년 정기 주주총회 전까지 KCGI가 20%대로 지분을 더 늘릴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총수 일가의 지분이 28.95%인 만큼 다른 주주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냐에 따라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무산될 수 있다. 이 경우 회장직에서도 물러나야 한다. 앞서 故 조양호 회장 역시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재선임 안이 부결돼 주주 손에 끌어내려진 첫 총수가 됐다.
지분 싸움에서 가장 확실한 전략은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지만 한진그룹 총수 일가로선 현재 여력이 없다. 26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경영권을 사수하려면 보유 주식을 처분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호 세력을 확보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반면 KCGI는 올해 들어서만 700억원 넘게 한진칼 주식을 사들이며 '쩐의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선 조 전무의 경영 복귀 등이 오히려 우호세력 집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단 지적도 나온다. 사회적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KCGI가 한진칼 주주들에게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반대를 적극 설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여전히 국민연금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올해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져 조 회장 사임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바 있다. 이후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국민연금은 올해 들어 지속적으로 한진칼 지분 비중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지분을 일부 보유해야 하는 국민연금으로선 더 이상 지분을 줄이기 어려워 지분율 4%대에서 한진칼 경영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진그룹 입장에선 총수 일가의 경영 복귀는 예정된 수순"이라며 "내년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치열한 표싸움이 예고된 만큼 결국 우호세력 확보와 국민연금 의중을 알기 위해 양측이 더욱 발빠르게 움직일 것"이라고 전했다.
[디지털뉴스국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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