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美, 자금세탁 위반 금융사에 올들어 3조 벌금
입력 2019-06-13 17:36  | 수정 2019-06-13 19:56
1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인하우스카운슬포럼(IHCF) 주최로 열린 `자금세탁방지(AML) 아카데미`에서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지난 4월 이탈리아 최대 은행 유니크레디트는 벌금 13억달러(약 1조5427억원)를 내기로 미국 금융당국과 합의했다. 자회사인 하이포은행이 이란 선적회사에 미국 금융거래 제재 회피용으로 불법 자금이 오가는 통로를 열어줬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같은 달 영국계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SC) 역시 이란 석유회사 등 거래 제재 대상과 거래했다는 이유로 벌금 11억달러(약 1조3050억원)를 물게 됐다.
미국의 잇단 벌금 폭탄은 꼭 문제 되는 거래를 한 곳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제 2017년 뉴욕 금융감독청(DFS)은 '자금세탁을 막을 내부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구실로 NH농협은행에 100억원대 과징금을 매겼다. 국제 금융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자금세탁방지(AML) 규제를 강화하면서 당장 한국 금융사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농협은행 사태 이후 미국에 지점을 두고 있는 은행들이 부랴부랴 대응에 나섰다.
1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자금세탁방지 아카데미'에 참석한 법조·금융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우려에 공감하면서 자금세탁 이슈에 국내 금융사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포럼은 국내외 기업·공공기관 사내 변호사로 구성된 인하우스카운슬포럼(IHCF)이 주최했다.
주제 발표를 맡은 미국계 로펌 폴 헤이스팅스의 팔미나 M 파바 파트너 변호사는 "지난해 미국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지키지 못해 글로벌 금융사가 문 벌금만 30억달러(약 3조원)에 달한다"며 "특히 최근 미국 법무부(DOJ)가 기업 준법 감시 프로그램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가이드라인을 강화하면서 규제가 더 까다로워졌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전 세계 금융업체에 자금세탁과 금융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적용하는 대표적 규제는 은행보안규정(BSA)이다. 하지만 금융사가 의무적으로 내부에 만들어야 하는 자금세탁방지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송금을 규제하는 애국법, 형사처벌 규정이 담긴 자금세탁 관련법(MLCA), '미국의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해외부패방지법(FCPA)까지 각종 파생 규제가 적지 않다. 규제 대상도 은행 같은 전통적 금융사부터 통화 서비스 사업자, 송금 업체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최근 빠르게 늘고 있는 핀테크 업체도 대상이 된다.
여기에 올해 강화된 DOJ 가이드라인은 검사가 자금세탁 이슈로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할 때 금융사가 갖춘 준법 준수 프로그램의 상세한 내용과 이를 제대로 운영하는지를 따지도록 했다. 과거처럼 단순히 준법 조직을 갖췄다는 것만으로는 기소를 피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의장)은 "최근 FATF 상호 평가에서는 자금세탁 관련 제도 도입보다 실행 여부를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며 "이런 미국 규제에 대해 아프리카나 중동 국가와 거래가 많은 대형 유럽은행들이 반발했지만 이와 관계없이 규제는 더 강화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패널 토론에서 사회를 맡은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은 "국내 4대 은행 직원 수가 약 6만명인데 이 중 자금세탁방지 관련 인력은 다 합쳐도 200명이 안 되는 것으로 안다"며 "인력 보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함께 패널 토론에 나선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국내법에는 핀테크 등 새롭게 등장하는 기업이나 거래에는 적용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자금세탁방지 규제가 의심되는 모든 거래와 기업·개인을 막론하고 규제 레이더망 안에 두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만큼 적용 대상을 일반화하는 등 방법으로 미국 규제와 발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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