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조이현 씨(27)는 지난달 생일을 맞이한 친구에게 '티모티콘' 한 벌을 선물로 건넸다. 티모티콘은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새긴 티셔츠를 일컫는다. 조씨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중 하나인 '라이언' 캐릭터 아래에 '볼수록 매력 있어'라는 글귀를 넣은 티셔츠를 카카오메이커스 홈페이지에서 주문했다.
조씨는 "스마트폰에서 날마다 보던 캐릭터들이라서 (티셔츠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전혀 낯설지 않다"며 "나의 메시지를 옷에 써서 줄 수 있다는 건 특별한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사촌동생이 졸업할 때 티모티콘을 한 장 더 주문할까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주문생산 기반 커머스 플랫폼 카카오메이커스는 지난 2월부터 티모티콘 서비스를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자신이 주문제작한 티셔츠를 입고서 '인증 사진'을 찍는 소비자들이 생겨났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티모티콘'을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만 430여 건이 나타난다. '야근 요정', '재주는 남편이 부리고 돈은 아내가 쓴다' 등 유쾌한 문구를 인쇄한 티셔츠가 눈길을 끈다.
서울 강남구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에 조성된 카페 '콰르텟'. [사진 제공 = 카카오IX]
이처럼 인형이나 문구 제품 등에 한정돼 있던 이모티콘 상품은 이제 '라이프 스타일' 영역까지 확장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회성 제품 구매를 벗어나 소비자의 오감을 자극하고 문화 체험을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지난해 11월 서울 강남에 문을 연 카페 '콰르텟'이 대표적이다. 카카오 자회사인 카카오IX가 카카오프렌즈 매장에 조성한 이 카페는 라이언 얼굴을 새긴 에그번 빵을 선보였다.
오븐 장갑과 소풍 가방이 팔리는 것도 흥미롭다. 카페 이용객의 동선을 따라 상품이 비치된 까닭에 빵을 오븐으로 직접 굽고 이를 포장해 야외로 놀러 나가고 싶다는 욕구를 고객에게 불어넣는다는 것이 카카오IX 측의 설명이다.
◆ 라인프렌즈와 방탄소년단이 함께 만든 ‘BT21
서울 용산구 이태원 라인프렌즈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인기 아이돌 그룹 `BTS(방탄소년단)`의 멤버가 직접 그린 `BT21` 캐릭터 `타타`의 도안이 전시돼 있다.
[사진 = 박동우 인턴기자]
모바일 메신저 ‘라인의 이모티콘으로 탄생해, 글로벌 캐릭터 브랜드로 성장한 라인프렌즈 측은 아이돌 그룹 BTS(방탄소년단)와 1년여에 걸쳐 공동 작업을 한 끝에 지난해 'BT21' 캐릭터IP를 선보였다. BTS의 인기와 더불어 외국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사진 = 박동우 인턴기자]
지난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라인프렌즈 스토어를 찾았을 때 매장은 40여 명의 고객들로 북적였다. 중국, 말레이시아, 그루지야 등 다양한 국적의 고객들이 상품들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기에 여념 없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왔다는 대학원생 앨리스 씨(30)는 이날 어머니와 함께 매장을 방문했다. 그는 "BT21의 일곱 캐릭터가 제각각 다양하고 디자인 또한 발랄하다"며 "BTS의 팬으로서 BT21을 좋아하고 아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라인프렌즈 관계자는 "통상적인 캐릭터 디자인은 내부 디자이너로부터 제작되는 것에 반해, BT21은 외부 아티스트가 직접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점이 특징"이라며 "밀레니얼 세대와 아티스트가 활발하게 소통하며 캐릭터 제작과 관련 콘텐츠 확장에 활발하게 참여한다"고 강조했다.
이태원 매장 내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BT21'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영상 시리즈 'BT21 유니버스'가 차례대로 상연됐다. BTS 멤버들이 출연해 BT21 캐릭터를 둘러싼 세계관을 들려주는 영상이었다. 라인프렌즈 측은 "지난 4월부터 2개월간 영상 9편이 유튜브 채널에 게시됐다"며 누적 조회 수 1600만 이상을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BT21이 탄생하기까지 이들이 초기 디자인 스케치를 비롯해 캐릭터의 성격 구현까지 일일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셜미디어에서 '챌린지' 이벤트를 수시로 열면서 대중들도 이모티콘을 활용한 콘텐츠 창작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362개의 그림을 그려달라"는 BTS 멤버의 요청에 화답한 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캐릭터를 그림 그려 SNS에 올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 이모티콘 그리는 요령 담은 책도 나와
이처럼 모바일 메신저에서 탄생한 이모티콘이 오프라인에서도 힘을 얻자 서점가에는 이모티콘을 직접 그리고 카카오톡, 라인, 네이버 밴드 등 이모티콘 유통 플랫폼에서 이모티콘을 등록하고 승인받는 노하우를 담은 학습서도 나왔다.
책 '된다! 귀염뽀짝 이모티콘 만들기'의 저자 정지혜씨는 본문에서 "아이디어만 있다면 단순하고 서툰 그림도 인기를 얻을 수 있다"며 "컴퓨터에 깔린 '그림판'만으로도 (이모티콘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책에서 저자는 이모티콘을 제작하는 요령으로 자신의 생활에서 그림 소재를 찾는 한편 마인드맵을 그려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이모티콘의 콘셉트를 구체화할 것을 조언한다. 특히 모바일 메신저의 '태그 검색' 기능을 활용하면 개별 콘셉트에 따라 이모티콘을 어떻게 그려야 할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 늘어난 1인 가구와 팬덤 문화가 견인
전문가들은 이모티콘이 일상에서 밀접하게 소비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1인 가구의 증가와 팬덤 문화에서 찾고 있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세종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해 펴낸 '키덜트 캐릭터 산업 현황 조사 및 발전 방안' 연구 보고서는 "1인 가구의 소비는 외로움 등의 심리적 요소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다"며 "심리적으로 지친 마음을 캐릭터 상품을 즐기면서 해소하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진단했다.
또 보고서는 "팬덤 문화의 팬들은 참여와 공유를 실천하는 문화의 주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팬덤은 과거와 달리 스스로 즐기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문화 운동에도 참여하는 적극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애초 이모티콘 속에는 자신의 감정과 개성이 깃들어 있었다. 지난 1982년 미국 카네기멜런대 스콧 엘리엇 팔만 교수가 키보드의 기호를 조합해 ':-)'과 ':-('를 만든 것이 이모티콘의 시초였다. 소비자들 일상으로 들어온 이모티콘의 오늘날 모습은 어쩌면 예견된 미래였을지도 모른다.
[디지털뉴스국 박동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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