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주택공급 줄고 후분양은 늘어날 듯…시세보다 싸 로또청약 부추길 우려
입력 2019-06-06 17:57  | 수정 2019-06-06 20:20
◆ 아파트 분양가 규제 ◆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 통제 고삐를 세게 쥠에 따라 분양가가 낮아질 것이란 기대감 이면에 되레 주택 공급을 위축시켜 장기적으로 소비자에게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참여정부 때도 분양가를 강하게 통제하면서 수년 후 주택 공급이 대폭 줄어드는 일이 발생한 바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활, 안전진단규제 강화 등으로 이미 꽉 막힌 재건축단지들이 속속 후분양으로 돌아서 결론적으로 주택 공급을 늦추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HUG의 현충일 휴일 '기습 분양가 기준 강화'에 건설업계와 서울 주요 정비사업 조합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형건설사 H사 관계자는 "분양이 수개월 남은 예정 사업지의 수익성 분석부터 분양 전략까지 완전히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곳도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과 건설사들은 이번 제도 변경에 대해 사실상 민간분양에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했다는 반응까지 내놨다.

분양가상한제는 택지비·건축비에 시공사의 적정 이윤을 포함해 분양가를 산정한 뒤 그보다 낮은 가격에 분양하도록 정한 집값 안정화 제도다.
분양가상한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값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됐다. 현재 분양가상한제는 공공택지지구 분양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아파트는 주변 시세에 비해 20~30% 저렴한 곳이 많아 '로또 청약' 열풍을 일으킨 주요 배경이다.
물론 이번 HUG의 분양가 심사기준 변경이 주변 시세 대비 대폭 저렴하게 분양가를 낮추진 못하지만 주변 시세 수준까지만 분양가를 용인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상한제'로 일맥상통한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이로 인해 청약 경쟁률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청약통장을 가진 무주택자로선 내 집 마련을 값싸게 할 기회가 생긴 것"이라며 "이익이 줄어든 건설사가 각종 서비스를 유료 옵션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공공택지는 흥행에 성공했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분양가 덕분이다. 지난 4월 분양된 경기 하남시의 힐스테이트 북위례는 939가구 모집에 7만2570명을 모으며 77.28대1을 기록한 바 있다. 힐스테이트 북위례는 공공택지 내 분양가 공시항목을 확대 적용한 첫 단지로, 분양 당시에 '로또 아파트'로 주목받았다.
소비자로서는 분양가 인하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서울 분양가가 낮아지면 분양가 9억원 초과 시 적용된 중도금 대출 규제를 피하는 아파트 단지가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분양가 9억원을 상회하는 아파트가 한강 이북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대부분 서울 아파트가 중도금 대출 규제 대상이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이번 제도 변경으로 청약경쟁률이 더 치열해지겠지만 보다 값싼 아파트 분양이 많이 나와 현금이 부족한 무주택자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 "분양시장에서 가장 민감한 중도금 대출 규제를 피하는 아파트가 상당히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시장 가격 통제로 주택 공급 위축 등 역효과가 우려된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주택법을 개정해 분양가상한제를 민간 아파트를 포함해 전면 적용했다. 그러자 2007년 30만가구를 넘었던 전국 아파트 분양 물량이 2010년 20만가구 이하로 '뚝' 떨어졌다.
HUG가 휴일 기습적으로 '분양가 심사 기준 강화'를 발표한 배경에 대한 뒷말도 많다. 이재광 HUG 사장에 대해 몇 달 전부터 직원들이 채용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청와대까지 나서 직원들을 불러 조사하는 등 HUG 내부는 최근 어수선한 상황이다.
HUG 노조는 지난 5일 이 사장의 각종 의혹을 폭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사장이 부산관사의 가전가구 교체 비용으로 수천만 원을 사용하고 이 사장이 증권업계에 몸담았을 때 함께 근무한 동갑내기 지인을 개방형 계약직으로 뽑았다는 주장이다. 이러다 보니 이 사장에 대한 뒷말을 덮으려 발표 시기를 앞당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HUG 관계자는 "채용비리와 관련한 모든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강력 부인하고 있다.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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