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오후 5시 30분. 세종정부청사 보건복지부 건물 3층 복도 끝에 있는 좁은 휴게공간으로 300여명의 복지부 직원이 모여들었다.
"오늘을 끝으로 보건복지부를 떠나시는 권덕철 차관님과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직원들은 모여달라"는 안내방송이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미 차관 인사발표 후 권 전 차관이 복지부내 모든 사무실을 돌며 악수를 나눈 뒤였지만, 직원들은 권 전 차관과 복지부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간직하고자 삼삼오오 모여들어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 차관
이날 권 차관은 공식적인 차관 이임식을 마다하고 직원들이 마련한 깜짝 고별식(?)으로 보건복지부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떠나보냈다. 기념촬영에 앞서 직원들이 직접 제작해 권 전 차관에게 선물한 헌정 영상에는 1987년 그의 공무원 임용을 알리는 총무처(1998년 행정자치부로 통합) 관보 문서부터 '30년 복지인'으로서 그가 걸어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겼다. "보건복지부 직원이 건강하게 일을 하면서 국민의 사람을 받는 게 제 로망입니다"라는 과거 인터뷰 영상이 나오자 일부 직원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한 직원은 휴대폰 화면에 하트를 그려 보이며 영상이 나오는 내내 손을 위로 흔들기도 했다.권 전 차관은 차관직을 수행하면서 아동수당 도입과 확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문재인 케어) 핵심인 필수의료 비급여의 급여화와 선택진료제 폐지까지 굵직굵직한 복지현안들을 매끄럽게 조정했다는 평을 듣는다. 메르스 사태 때는 중앙 메르스 관리대책본부 총괄 반장을 맡아 사태 수습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매일같이 언론 브리핑을 열어 공포에 떨고 있는 국민들의 눈과 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업무 능력 외에도 권 차관이 후배 공무원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이유는 인자하고 너그러운 성품 때문이라고 복지부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복지부내 대표적인 '덕장'으로 알려진 권 전 차관의 복지부 내 인기는 독보적이다. 한 서기관급 직원은 "늘 직원들을 품어주는 느낌이 있으셨다"며 "외부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우산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다소 완성도가 떨어지는 보고서를 올려도 호통을 치거나 나무라지 않고, 친절한 피드백으로 대신했다는 게 여러 관계자들 증언이다. 소통을 중시한 그는 2년 남짓한 차관 임기 동안 복지부내 모든 부서와 식사를 하며 직원들의 업무 애로사항을 경청하기도 했다.
24일 권 전 차관은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짤막한 퇴임 소감을 밝혔다. 그는 "복지부가 운영하는 많은 제도들은 국민들에 내는 세금으로 운영하다보니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할 게 굉장히 많다"며 "모든 힘들었던 상황에서도 즐겁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복지부 가족들이 잘 따라와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들 덕분에 매우 행복하게 30년 공무원 생활을 마감한다"고 덧붙였다. 아직 향후 거취가 정해지지 않은 그는 "어디로 가든 국민이 더욱 행복할 수 있도록 뒤에서 보건복지부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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