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화가 미르챠 텔레아거(30)는 지난 7일 한국에 왔다. 경주예술의전당 5층 전망대에 마련된 레지던시스튜디오에서 20여일간 천년고도 경주에서 받은 영감을 화폭에 풀어냈다. 과거 독재 정권에 의해 강제적으로 확장된 도시 풍경을 담아온 그는 한국 전통 사찰에 매료돼 열정적으로 붓을 댔다.
텔레아거를 비롯해 세계 11개국 작가 17명의 눈에 비친 경주는 어떤 모습일까. 한국수력원자력과 경주문화재단, 한국미술경연구소가 지난해 시작한 '경주국제레지던시아트페스타'가 올해는 '경주의 아침'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오늘의 시각으로 바라본 경주가 지닌 잠재적 가능성과 새로운 비전을 담아낸 조형 작품을 선보인다는 취지다.
주최측은 작가들의 작업 스튜디오를 일반인에 개방하고 있으며 24일 개막식부터 6월 2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실내외에서 작품 5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이 페스타는 '한수원아트페스티벌2019' 미술부문 행사로 평면과 입체,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 아트토크 등에 음악도 어우러진다. 초대 작가 국적은 핀란드,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대만, 중국, 영국, 한국 등 동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른다.
말레이시아 작가 사브리 이드러스(48)는 경주에서 본 까치를 나무와 메탈 등으로 조각하는 작품 'Embun(아침이슬)'을 다듬고 있다. 작품의 날개 길이는 약 10m 정도로 경주예술의전당 앞뜰 나무에 양 날개를 붙여서 비행중인 새처럼 연출할 예정이다.
이드러스는 "경주에서 지내는 요즘, 아침마다 눈을 뜰 때 햇살과 함께 먹을 것을 찾아 지저귀는 새소리가 나를 맞이해준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조류로 알려진 극락조 색깔과 한국 까치 색감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작가 알리안시아 카니아고(32)는 불국사에서 본 물고기 몸에 뿔 달린 용 머리를 지닌 동물에 영감을 받은 비디오 아트와 설치작품을 발표할 예정이다. 체코 프라하에서 온 작가 로마나 드르도바(32)는 한국 전통 천으로 경주 일상을 표현한 작품을 마무리하고 있다.
체코 초대작가 로마나 드르도바
대만 초대작가 시아우펑 첸
필리핀 목수 집안 출신인 조각가 리엘 힐라리오(43)는 현지에서 공수해온 목재로 경주 르불토(필리핀의 전통 동상) 한 쌍을 제작했다. 대만 화가 시아우펑 첸(43)은 한국적 색깔로 경주를 풀어내는 색연필 드로잉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한국 작가로는 경주 출신 조각가 오동훈(45), 중견 작가 김을(65), 사진 작가 고명진(52), 팝아트 작가 아트놈(48), 설치미술가 양정욱(37), 패브릭 드로잉(fabric drawing) 작가 정다운(32) 등이 참여했다.
24일 오후 5시 개막식에선 퓨전첼리스트 윤지원이 이번 행사 출품작들에 받은 인상을 담아 작곡한 연주곡을 들려준다. 전시와 연계된 시민참여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진행된다. 작가에게 작품 이야기를 들어보는 브런치와 티타임 프로그램인 'Happy Day, Art & Brunch(해피 데이, 아트&브런치)', 레지던시 스튜디오에서 작가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굿모닝 경주, 오픈스튜디오', 젊은 작가나 작가지망생들에게 유용한 팁을 전해줄 '성공적인 아티스트의 도전기', 레지던시 스튜디오 투어를 통해 초대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는 '행복충전 스페셜 아트투어', 초대작가와 어린이가 함께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와 함께 나도 미술가!' 등이 열린다.
김윤섭 미술경영연구소장은 "주한 외국대사관, 외국 한국문화원과 큐레이터·전시기획자들 추천을 받아 다양한 국적과 장르를 가진 작가들을 선정했다. 갤러리보다는 뮤지엄 아티스트에 초점을 맞췄고, 전통에 파묻혀있다는 경주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재해석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주예술의전당 레지던시 스튜디오
[전지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