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퇴근하는 시간이 밤 11시~12시다. 아예 밤새우는 날도 부지기수다. 밀려드는 가방 주문량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얼마나 바쁜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새 조차 없다. 아들 얘기가 나오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지는 엄마이면서 창업 한 지 1년이 채 안 된 새내기 CEO, 플리츠마마 왕종미(40·사진) 대표다.
요즘 패션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 플리츠마마 가방이 화제다. 강남 백화점 MD들은 "플리츠마마 가방을 안 산 사람은 있어도 한 개만 산 사람은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자기가 써보고 좋아 선물용으로 또 사거나 색깔이 너무 예뻐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사가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단숨에 '패피(패션피플의 줄임말)'들 사이 인기를 끈 비결은 무엇일까. 왕 대표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저는 제 스스로를 '어쩌다 CEO'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매일 어려운 일이 생기고요. 그래서 매일 시험보는 듯한 기분으로 살고 있죠(웃음)."
서울 홍대 근처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왕 대표는 플리츠마마 가방이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순전히 운이 좋았다"라며 겸손해했다. "시대 흐름과 잘 맞아 떨어졌다"고도 했다. 바야흐로 '친환경 시대','플라스틱 프리(Free)시대',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플리츠마마 가방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사진제공 = 플리츠마마]
플리츠마마 가방은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원사인 '리젠(Regen)'으로 만든다. 100%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실로 플라스틱 매립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플리츠마마가 리젠을 활용해 제작한 니트 플리츠백 1개에는 500㎖ 생수병 16개에서 추출한 실이 사용된다.리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복잡하다. 일단 버려진 페트병을 수거해야 하고, 수거한 페트병을 선별해 깨끗이 세척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잘게 쪼개 플레이크로 만드는데, 그 크기가 가로와 세로 모두 1mm에 불과하다. 이 플레이크로 우리가 흔히 아는 폴리에스터 칩을 만들면 여기서 바로 실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 때 실의 굵기는 머리카락보다 얇고 부드러우며 색깔은 하얗다.
국내에서는 효성티앤씨가 10년전부터 리젠을 만들고 있다. 가방 제작 과정 중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친환경적인 가방을 만들고자 했던 왕 대표는 비싼 가격에도 망설임없이 리젠을 택했다. "여기 저기서 사은품으로 받아 집안에 쌓여만 가는 말로만 '에코'인 에코백을 만들기는 싫었어요. 소재부터 제작방식, 소비경험까지 일관되게 친환경적인 가방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컸죠." 왕 대표가 말했다.
그는 플리츠마마를 창업하기 전에는 주로 내셔널브랜드의 스웨터 하청을 받아 생산하는 업체에서 일을 했다. 당시 울과 캐시미어 등으로 스웨터를 만들고 남는 실을 그냥 버려야 하는 게 너무 아까웠다. 비싼 수입 실도 많았지만 이미 쓰고 남은 자투리여서 마땅히 활용할 길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한 해에 버려지는 원사의 물량이 7~8억원에 달했다.
안타까웠다. 문득 폐원사로 평소 좋아하는 가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육아를 하며 실용적이면서 멋을 낼 수 있는 가방에 대한 욕구가 컸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면 주변 엄마들을 많이 만나게 되요. 그런데 매일 똑같은 가방을 들고 나가기는 싫더라고요. 그렇다고 에코백을 들자니 스타일이 무너지고요(웃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이지(EASY)백이면서 스타일을 살려줄 수 있는 가방이 필요했어요." 왕 대표가 솔직하게 말했다.
[사진제공 = 플리츠마마]
이왕이면 무채색의 옷차림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색깔의 가방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색깔만으로도 가방을 든 사람을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고민을 거듭했다. 왕 대표가 샛노란색부터 녹색, 파란색, 빨간색, 주황색은 물론 핑크와 민트색 등 30여개의 컬러로 플리츠마마 가방을 물들인 배경이다. 그리고 이는 '신의 한수'가 됐다.왕 대표는 "한 손님이 8개까지 색깔별로 주문하는 경우도 봤다"며 "가방 색깔에 따라 주는 느낌이 다르다보니 여러 개를 한꺼번에 구매하는 손님들이 많은 편이다"고 말했다. 가방 한 개의 가격은 4~5만원대.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 트렌드와도 딱 맞아 떨어졌고 그 결과 창업을 한 지 1년이 채 안 돼 1만 5000개 이상이 불티나게 팔렸다.
플리츠마마 가방은 니트 기법으로 제작된다. 이 역시 친환경 제품을 고민한 결과다. 니트는 제품을 만들면서 한 판으로 다 짠다. 가위로 자를 일이 없으니 자투리 원단이 생길 일이 없다. 그야말로 플라스틱병 16개가 1개의 가방으로 오롯이 변신하면서 환경 오염은 최소화 한 것.
친환경 가방이라고 해 고리타분한 디자인은 왕 대표와 맞지 않았다. 주름 디자인을 택했다. 가방 안에 다양한 것을 넣어도 결코 펴지지 않는 주름이다. 평평한 원단을 접어서 주름을 잡은 게 아니라 실에서 원단으로 짤 때 무늬처럼 짜 넣은 것이어서 펴질 수 없다고 왕 대표는 설명했다.
[사진제공 = 플리츠마마]
"저희 가방의 주름 디자인을 모방한 상품들이 시중에 쏟아져 어려움은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저희보다 규모가 더 큰 대기업에서 각종 마케팅을 통해 자신들이 오리지날 디자인이라고까지 주장하는데 안타깝고 분하죠. 하지만 플리츠마마가 오리지널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줘서 차분하게 대응하려고요."
현재 왕 대표는 특허심판원에 플리츠마마 디자인과 관련해 권리범위확인청구를 진행 중에 있다. 결과가 나오는대로 추가적인 법적 대응도 고려할 계획이다.
오는 7월 창업 1주년을 맞는 플리츠마마는 새로운 소재나 디자인 및 상품 라인업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친환경이란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꼭 패션 브랜드가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호텔, 관공서 등과의 협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 때도 중요한 것은 플리츠마마가 추구하는 친환경 가치다.
"최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과 협업을 진행 중인데요. 호텔이 추구하는 친환경적 가치 방향과 저희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이 잘 어우러져셔 의미있는 협업이 될 것 같아요."
'Look Chic, Be Eco'라는 플리츠마마의 모토처럼 멋스러우면서 친환경적인 그만의 스타일 변화를 기대해본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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