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안 산 사람은 있어도 한 개만 산 사람은 없다"는 에코백 CEO는
입력 2019-05-16 13:47  | 수정 2019-05-16 16:31

일찍 퇴근하는 시간이 밤 11시~12시다. 아예 밤새우는 날도 부지기수다. 밀려드는 가방 주문량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얼마나 바쁜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새 조차 없다. 아들 얘기가 나오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지는 엄마이면서 창업 한 지 1년이 채 안 된 새내기 CEO, 플리츠마마 왕종미(40·사진) 대표다.
요즘 패션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 플리츠마마 가방이 화제다. 강남 백화점 MD들은 "플리츠마마 가방을 안 산 사람은 있어도 한 개만 산 사람은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자기가 써보고 좋아 선물용으로 또 사거나 색깔이 너무 예뻐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사가는 손님도 많다고 한다. 단숨에 '패피(패션피플의 줄임말)'들 사이 인기를 끈 비결은 무엇일까. 왕 대표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저는 제 스스로를 '어쩌다 CEO'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매일 어려운 일이 생기고요. 그래서 매일 시험보는 듯한 기분으로 살고 있죠(웃음)."
서울 홍대 근처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왕 대표는 플리츠마마 가방이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순전히 운이 좋았다"라며 겸손해했다. "시대 흐름과 잘 맞아 떨어졌다"고도 했다. 바야흐로 '친환경 시대','플라스틱 프리(Free)시대',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플리츠마마 가방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사진제공 = 플리츠마마]
플리츠마마 가방은 폐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원사인 '리젠(Regen)'으로 만든다. 100%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실로 플라스틱 매립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플리츠마마가 리젠을 활용해 제작한 니트 플리츠백 1개에는 500㎖ 생수병 16개에서 추출한 실이 사용된다.
리젠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복잡하다. 일단 버려진 페트병을 수거해야 하고, 수거한 페트병을 선별해 깨끗이 세척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잘게 쪼개 플레이크로 만드는데, 그 크기가 가로와 세로 모두 1mm에 불과하다. 이 플레이크로 우리가 흔히 아는 폴리에스터 칩을 만들면 여기서 바로 실을 뽑아내는 것이다. 이 때 실의 굵기는 머리카락보다 얇고 부드러우며 색깔은 하얗다.
국내에서는 효성티앤씨가 10년전부터 리젠을 만들고 있다. 가방 제작 과정 중 버리는 것 하나 없이 친환경적인 가방을 만들고자 했던 왕 대표는 비싼 가격에도 망설임없이 리젠을 택했다. "여기 저기서 사은품으로 받아 집안에 쌓여만 가는 말로만 '에코'인 에코백을 만들기는 싫었어요. 소재부터 제작방식, 소비경험까지 일관되게 친환경적인 가방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컸죠." 왕 대표가 말했다.
그는 플리츠마마를 창업하기 전에는 주로 내셔널브랜드의 스웨터 하청을 받아 생산하는 업체에서 일을 했다. 당시 울과 캐시미어 등으로 스웨터를 만들고 남는 실을 그냥 버려야 하는 게 너무 아까웠다. 비싼 수입 실도 많았지만 이미 쓰고 남은 자투리여서 마땅히 활용할 길이 없었다. 그런 식으로 한 해에 버려지는 원사의 물량이 7~8억원에 달했다.

안타까웠다. 문득 폐원사로 평소 좋아하는 가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육아를 하며 실용적이면서 멋을 낼 수 있는 가방에 대한 욕구가 컸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면 주변 엄마들을 많이 만나게 되요. 그런데 매일 똑같은 가방을 들고 나가기는 싫더라고요. 그렇다고 에코백을 들자니 스타일이 무너지고요(웃음).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이지(EASY)백이면서 스타일을 살려줄 수 있는 가방이 필요했어요." 왕 대표가 솔직하게 말했다.
[사진제공 = 플리츠마마]
이왕이면 무채색의 옷차림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색깔의 가방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색깔만으로도 가방을 든 사람을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고민을 거듭했다. 왕 대표가 샛노란색부터 녹색, 파란색, 빨간색, 주황색은 물론 핑크와 민트색 등 30여개의 컬러로 플리츠마마 가방을 물들인 배경이다. 그리고 이는 '신의 한수'가 됐다.
왕 대표는 "한 손님이 8개까지 색깔별로 주문하는 경우도 봤다"며 "가방 색깔에 따라 주는 느낌이 다르다보니 여러 개를 한꺼번에 구매하는 손님들이 많은 편이다"고 말했다. 가방 한 개의 가격은 4~5만원대.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 트렌드와도 딱 맞아 떨어졌고 그 결과 창업을 한 지 1년이 채 안 돼 1만 5000개 이상이 불티나게 팔렸다.
플리츠마마 가방은 니트 기법으로 제작된다. 이 역시 친환경 제품을 고민한 결과다. 니트는 제품을 만들면서 한 판으로 다 짠다. 가위로 자를 일이 없으니 자투리 원단이 생길 일이 없다. 그야말로 플라스틱병 16개가 1개의 가방으로 오롯이 변신하면서 환경 오염은 최소화 한 것.
친환경 가방이라고 해 고리타분한 디자인은 왕 대표와 맞지 않았다. 주름 디자인을 택했다. 가방 안에 다양한 것을 넣어도 결코 펴지지 않는 주름이다. 평평한 원단을 접어서 주름을 잡은 게 아니라 실에서 원단으로 짤 때 무늬처럼 짜 넣은 것이어서 펴질 수 없다고 왕 대표는 설명했다.
[사진제공 = 플리츠마마]

"저희 가방의 주름 디자인을 모방한 상품들이 시중에 쏟아져 어려움은 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저희보다 규모가 더 큰 대기업에서 각종 마케팅을 통해 자신들이 오리지날 디자인이라고까지 주장하는데 안타깝고 분하죠. 하지만 플리츠마마가 오리지널이라는 것을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줘서 차분하게 대응하려고요."
현재 왕 대표는 특허심판원에 플리츠마마 디자인과 관련해 권리범위확인청구를 진행 중에 있다. 결과가 나오는대로 추가적인 법적 대응도 고려할 계획이다.
오는 7월 창업 1주년을 맞는 플리츠마마는 새로운 소재나 디자인 및 상품 라인업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친환경이란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꼭 패션 브랜드가 아니라 생각지도 못한 호텔, 관공서 등과의 협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 때도 중요한 것은 플리츠마마가 추구하는 친환경 가치다.
"최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과 협업을 진행 중인데요. 호텔이 추구하는 친환경적 가치 방향과 저희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이 잘 어우러져셔 의미있는 협업이 될 것 같아요."
'Look Chic, Be Eco'라는 플리츠마마의 모토처럼 멋스러우면서 친환경적인 그만의 스타일 변화를 기대해본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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